극장 개봉 한 달이면 OTT로 본다…영화산업 옥죄는 ‘홀드백’ 붕괴

김은형 2023. 12. 11. 14:4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개봉 뒤 OTT 방영 간격 늘리는 ‘홀드백’ 법제화 논의
프랑스는 15개월 법제화…국내 점점 홀드백 짧아져
개봉한지 3개월 여만에 넷플릭스에 공개된 ‘콘크리트 유토피아’. 넷플릭스 화면 갈무리

오티티(OTT) 플랫폼인 쿠팡플레이는 지난 4월 개봉한 ‘존윅4’를 두 달 뒤인 6월에 사흘간 유료회원들에게 무료 공개했다. ‘비공식작전’은 지난 9월 개봉 한 달여 만에 같은 방식으로 방영했다. 지난해 쿠팡플레이는 ‘한산: 용의 출현’과 ‘비상선언’을 개봉 한 달 만에 기간 제한 없이 무료 공개했다. 극장 산업의 위기를 가속한다고 지적되는 이른바 ‘홀드백’ 붕괴를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영화산업에서 ‘홀드백’은 극장 개봉 뒤 영화가 주문형 비디오(VOD)나 유료 케이블 채널, 오티티 등으로 넘어갈 때까지의 기간을 말한다. 홀드백은 배급사와 각 상영 창구 간의 계약을 통해 정해지지만 업계에서 암묵적 합의처럼 지켜지던 기간이 코로나 이후 급속도로 줄었다. 올여름 개봉한 한국영화 대작들이 넷플릭스, 디즈니플러스 등 오티티 서비스로 가는 데는 평균 4개월이 걸리지 않았다. 오티티가 개봉작들을 빠르게 흡수하면서 아이피티브이(IPTV)나 유료 케이블 채널의 방영 시기도 당겨졌다. 2022년 ‘범죄도시2’는 개봉 두 달 만에 브이오디 서비스를 시작했지만 올해 개봉한 ‘범죄도시3’은 개봉 한 달 만에 브이오디로 직행했다. 개봉 뒤 한두 달만 기다리면 집에서 상대적으로 저렴하게 볼 수 있게 되면서 극장업계뿐 아니라 제작환경까지 위축된다는 게 영화계의 주장이다 .

2022년 여름 개봉한지 한달 만에 쿠팡플레이에서 공개한 ‘한산: 용의 출현’

지난 8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영화산업 재도약을 위한 홀드백 법제화 토론회’에는 제작·배급·극장 산업 관계자와 연구자들이 모여 열띤 논의를 벌였다. 이날 참석자들은 외국과 달리 엔데믹 이후에도 좀처럼 회복되지 않는 극장 관객 수 증가를 위해서 홀드백 강화가 시급하다는 데 입을 모았다.

이날 발제자로 나선 노철환 인하대 연극영화과 교수는 “넷플릭스의 올해 추정 구독 매출액과 광고 수익을 합하면 지난해 극장 총매출액 1조1600억원에 달하는 수준”이라며 “넷플릭스의 한국 시장 연착륙과 성장에 기여한 건 한국 영화인데도 프랑스 등 다른 국가들과 달리 대응책이 없어 극장과 한국영화의 위기로 이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프랑스의 경우 넷플릭스는 15개월이 지나야 방영할 수 있도록 법으로 규정돼 있다. 이 기간은 지난해에 절반으로 줄인 것으로, 프랑스 정부는 홀드백을 줄인 대신 넷플릭스가 3년간 연매출액 4%를 프랑스나 유럽 영화 10편 이상에 투자하도록 의무 조항을 만들었다. 한국에서는 극장 티켓값의 3%를 영화발전기금으로 부과하지만 넷플릭스에는 영화계 지원을 위한 과금을 전혀 하지 않고 있다. 법제화하지는 않았지만 일본 역시 1년 가까운 홀드백을 유지하고 있다. 지난 3월 국내 개봉한 ‘스즈메의 문단속’ 브이오디 서비스가 최근에야 나오고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개봉 1년이 가까워지지만 아직 극장에서만 볼 수 있는 이유다.

8일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영화산업 재도약을 위한 홀드백 법제화 토론회’

홀드백 법제화의 길은 녹록지 않아 보인다. 홀드백을 정상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하나지만 극장과 배급사, 제작사가 처한 입장은 제각각인 탓이다. 이날 토론자로 참가한 이현정 쇼박스 영화사업본부장은 “극장 개봉도 흥행이 되는 일부 영화에 쏠림 현상이 크기 때문에 극장을 잡기 힘든 작은 영화들은 브이오디 시장 의존도가 높다. 구독료 형식인 에스브이오디(SVOD)의 시장 잠식은 막아야겠지만 단품 결제 후 시청하는 티브이오디(TVOD)시장은 활성화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홀드백을 법으로 강제하는 건 자충수가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지난 8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영화산업 재도약을 위한 홀드백 법제화 토론회’

코로나 이전부터 영화업계 스스로 홀드백을 단축해온 점, 제작비 회수를 위해 오티티 의존도를 높여온 점에서 영화업계의 자기반성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전영문 영화진흥위원회 공정환경조성센터장은 “법제화 이전에 영화 산업 내 협력 구조를 회복하고 홀드백의 범위에 대해서도 합의를 통한 적정선을 만드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영진위는 지난 6월 ‘한국영화 위기극복 정책 협의회’를 만들어 주요 의제 중 하나로 홀드백 문제를 논의하고 있다. 또 문화체육관광부는 내년부터 운영하는 영화 제작 모태펀드의 지원 조건에 업계가 합의하는 홀드백 기간을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글·사진 김은형 선임기자 dmsgud@hani.co.kr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