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삶을 관통해온, ‘소라에게’[리뷰]

이다원 기자 2023. 12. 11. 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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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이소라, 사진제공|에르타알레



누구에게나 삶을 관통해온 아티스트가 있다. 유년 시절 사춘기 감성을 홀리고 막막한 청춘일 땐 위로를 건넨 그의 노래. 마흔살 이후엔 전주만 들어도 추억을 펼치게 하는 인생의 뮤지션, 가수 이소라가 내겐 그랬다.

그런 그가 데뷔 30주년을 맞아 ‘2023 이소라 콘서트 - 소라에게’(이하 ‘소라에게’)로 또 한번 기억에 남을 근사한 겨울을 선물했다. 10일 오후 서울 동대문구 경희대학교 평화의전당에서 ‘소라에게’를 열고 3층 객석까지 가득 채운 팬들과 2시간 여 잊지 못할 아름다운 시간을 만들었다.

가수 이소라, 사진제공|에르타알레



이날 검은 드레스를 입고 무대에 등장한 이소라는 핀조명을 받은 채 정중앙에 앉아 여덟번째 앨범 ‘8’ 수록곡 ‘운 듯’으로 공연을 시작했다. 차분한 음성으로 읊조리듯 가사를 전달하던 그는 ‘난 행복해’부터 ‘너무 다른 널 보면서’ ‘처음 느낌 그대로’ ‘제발’까지 대중의 마음을 앗아버린 명곡들을 이어 불렀다. 어떠한 코멘트도 없었다. 곡과 곡 사이 침묵도 마치 하나의 마디처럼 그의 공연을 빼곡하게 채웠다. 관객들은 숨죽인 듯 무대만을 바라봤고, 작은 기침 소리 조차 내지 않았다.

공연 시작 단 10분 만에 그의 진가는 반짝거렸다. ‘이소라’가 곧 악기였고, 장르였다. 리얼 밴드 사운드만으로 큰 무대를 채우기 쉽지 않을 뿐더러 그 어떤 움직임 없이 한곳에만 앉아 노래부르는 것 또한 수백명의 눈과 귀를 집중시키기에 어려웠을 텐데, 그는 아주 능숙하고도 완벽하게 해냈다. ‘가수는 그 존재를 오롯이 노래로만 입증한다’는 기본을 아주 충실하고 묵묵하게 이행했다. 그의 노래에 객석에 앉은 누군가는 눈물을 닦아냈고, 누군가는 눈을 감고 고개를 살랑거렸다.

잠시 불이 꺼지자 무대 뒤 스크린에선 1996년 ‘이소라의 프로포즈’ 1회 엔딩 장면이 흘러나왔다. ‘1996년 이소라의 프로포즈 1회, 아직도 잊지 못하는 끝곡’이라는 자막과 함께 당시 MC 이소라가 불렀던 빛과 소금의 ‘내곁에서 떠나가지 말아요’ 전주가 흘러나왔다. ‘2023년의 이소라’는 ‘1996년의 이소라’를 등 뒤에 두고 담담히 노래를 불러나갔고, 둘 사이 ‘30여년의 시간’은 객석에도 또 다른 여운을 안겼다.

가수 이소라, 사진제공|에르타알레



그의 세트 리스트엔 ‘쉼’은 없었다. ‘별’ ‘듄’ ‘티어스’ ‘트랙11’까지 내달렸음에도 호흡은 일정했고, 목소리엔 여전히 힘이 있었다. ‘트랙11’이 끝나고서야 그가 처음으로 관객에게 말을 걸었다. “안녕하세요, 이소라입니다”란 첫마디에 팬들은 반가웠던 마음만큼 큰 박수로 환호했다.

“이제 제 노래 중 몇 안 되는 가볍고 밝은 노래를 부를 거에요. 같이 불렀으면 해요. 혹시 히트 안 해서 몰라요? 알면 같이 해요, 제발.”

특유의 느릿느릿한 농담에 객석은 웃음으로 물들었다. 그는 ‘데이트’로 분위기를 달궜고, ‘랑데뷰’ ‘해피 크리스마스’ ‘첫사랑’까지 신나는 리듬의 노래들로 듣는 이의 어깨를 들썩거리게 했다. 리드미컬하면서도 소울풀한 그의 가창력이 흥겨운 노래와 맞물려 ‘연말 분위기’를 한껏 끌어올렸다. 그러자 봉인해제된 여성 팬들이 “소라 언니, 사랑해요” “귀여워요”라고 외쳤고, 이소라는 아주 익숙하다는 듯 코끝을 찡긋거리며 “30년이 지나도 여성 팬들이 제일 먼저 저렇게 외치네요”라고 받아쳤다. 장내가 웃음소리로 가득찰 때 누군가 외쳤다.

“소라야.”

‘소라에게’ 마지막 공연을 위해 찾아온 깜짝 게스트는 바로 이문세였다. ‘잊지 말기로 해’ ‘슬픈 사랑의 노래’로 두번이나 듀엣곡을 맞췄던 그는 이소라의 등 뒤에서 나타났고,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이소라는 벌떡 일어나며 놀란 마음을 부여잡았다. 지금껏 한차례도 게스트 출연이 없었던 터라 이문세의 방문은 이소라에게도 선물 같았다. 이문세는 “이소라가 ‘이문세쇼’에서 데뷔를 했다. 당시 그룹 낯선사람들에서 노래를 불렀는데 이소라만 눈에 띄었고 ‘저 사람, 크게 될 가수다’라고 했었는데 정말 크게 됐다”며 “아까 관객들이 많이들 울던데 그건 ‘이소라와 노래들이 나와 같이 함께 잘 살아왔구나’란 생각이 들어서가 아닌가 싶다. 이 험하고 어려운 세상 잘 이겨내서 여기까지 왔다는 서로를 향한 위로이자, 내 자신에게 다독거리고 서로 안녕하냐고 물어보는 느낌 아닐까. 만감이 교차한 것 같다”고 팬에게 있어 ‘가수 이소라’의 존재 의미를 되짚어줬다. 이어 신혼여행 대신 ‘소라에게’를 보러 왔다는 신혼부부를 위해 이소라와 함께 ‘잊지 말기로 해’를 들려주기도 했다.

이문세가 퇴장한 이후 ‘소라에게’는 끝을 향해 달려갔다. 말미엔 이소라도, 팬들도 모두가 하나였다. ‘트랙3’에선 밴드 멤버들이 돌아가며 목소리를 들려줬고, ‘바람이 분다’로 한껏 달아오른 분위기가 정점을 찍었다. “세상은 어제와 같고/ 시간은 흐르고 있고/ 나만 혼자 이렇게 달라져 있다”란 후렴구를 부를 땐 누군가의 떨리는 목소리가 귓가를 울리기도 했다. ‘봄’과 앵콜곡 ‘청혼’까지 더해지며 공연장은 감동과 여운으로 가득찼다.

이소라는 그런 팬들을 보며 마지막으로 아주 담담한 몇 마디를 전했다.

“같은 마음으로, 같은 생각으로, 같은 곳에 있다면 싸우지 않게 된다고 믿어요. 관객들이 노래하는 사람을 위해 온 힘 다해 박수쳐 주고, 노래하는 사람도 그런 관객들을 위해 온 힘을 다해 노래하잖아요. 저는 그런 순간이 좋아요. (사이) 잊혀지고 싶지 않아요. 여러분도 잊지 말고 어딘가에서 또 보게 되면 절 생각해주세요. 아는 척 해주세요.”

이소라가 오랜만에 건네는 ‘프로포즈’에 관객들은 모두다 ‘예스’를 외쳤다. 그리곤 돌아가는 발걸음이 아쉬워 관객 대다수가 뒤돌아보고, 또 무대를 돌아봤다. 여운이 길어 콧노래를 흥얼거리기도 했다. 절대 잊혀지지 않는 ‘소라에게’, 다시 듣고 싶은 다음 이야기를 기약하기라도 하는 듯.

이다원 기자 edaon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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