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사기 피해자에 고작 전세 대출…특별법은 반쪽짜리도 못 되는 법”
국민의힘에 탈당서 제출한 이유
[주간경향] 지난 6월 1일부터 ‘전세사기피해자 지원 및 주거안정에 관한 특별법(특별법)’이 시행 중이다. 전세사기특별법 제정 당시 6개월마다 전세사기의 유형·피해 규모 등을 검토해 법의 미비점을 보완하기로 여야가 합의했다. 6개월이 지난 지금 피해자들은 특별법이 실질적인 지원이 되지 못하고 있다며 법 개정을 요구하고 있다. 현행 특별법으로는 피해자로 인정받는 요건이 까다롭고, 전세보증금 반환채권을 공공이 매입하는 ‘선(先)구제 후(後)회수’ 방안 등도 포함돼 있지 않다고 지적한다. 특별법은 경·공매 유예 및 정지, 피해자에게 경·공매 우선매수권 부여, 무이자 혹은 저리대출 지원 등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금융지원 대부분은 전세자금 대출인데, 사실상 정부가 대출을 지원해줄 테니 전세보증금 손실은 피해자들이 오롯이 감당하라는 뜻이기도 하다.
특별법 제정 6개월을 앞두고 당시 심상정 정의당 의원, 허종식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야당을 중심으로 피해자들의 요구사항을 반영한 전세사기특별법 개정안이 발의됐다. 반면 특별법 제정 당시부터 피해자들 핵심요구인 ‘선구제 후회수’에 반대의 목소리를 내왔던 정부·여당은 법 개정 요구에도 미온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지난 11월 28일 정태운 전국전세사기대책위원회 대구위원장(32)이 탈당신고서를 들고 국민의힘 당사를 방문했다. 정 위원장은 “어릴 때부터 TK(대구·경북) 지역에서 살면서 국민의힘 당원으로 살아왔다. 탈당신고서가 작성되기 전에 한번만 만나 달라”며 김기현 대표와의 면담을 요청했지만, 끝내 답을 듣지 못하고 돌아가야 했다. 지난 12월 4일 정태운 위원장을 전화로 인터뷰했다.
“피해자로 결정돼도 막상 도움받을 수 있는 건 하나도 없었다. 전세자금 대출 지원이 대부분인 셈인데 지금 전국 전세사기 피해자 중에서 다시 전세 들어갈 사람이 몇이나 되겠나. 실제 인천 피해자 한 분은 또 전세사기를 당했다.”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사기···아무도 책임 안 져”
정태운 위원장은 대구 북구 침산동에서 발생한 전세사기 사건의 피해자다. 블루하임 건물의 20개 가구 중 17개 가구가 전세사기 피해를 입었다. 정 위원장이 전세사기 피해 사실을 알게 된 건 지난 5월이었다. 그보다 먼저 3월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에서 각 세대를 방문했다. 임대인이 수성세무서에 체납이 있어 압류돼 공매를 진행한다는 안내였다. 캠코는 임대인의 ‘지방세 압류’ 시점이 2022년 9월이므로 입주민들은 그보다 선순위여서 보증금을 돌려받는 데는 문제가 없다고 설명했다. “캠코에서 보증금을 돌려받을 수 있다고 하니 뭐 어렵겠나 싶었다. 그래도 계약서와 등기부등본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발견됐다. 소유주가 신탁회사였다. 신탁에 대해 아는 것이 없어 찾아보니 신탁은 거의 담보신탁을 한다고 하더라. 말 그대로 부동산을 담보로 돈을 빌린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대출이 있어야 하는데 등기부등본은 깨끗했다. 캠코 담당자에게 물어봤더니 근저당이 없으니 문제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정 위원장은 캠코의 말을 믿고 안심했지만, 상황이 급변했다. 5월 8일 신협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자신이 이 집의 소유주이며, 권한 또한 자신에게 있다는 것이었다. 정 위원장은 등기부등본에 근저당이 없고 캠코도 이를 확인했다고 답했지만, 신협은 캠코 공매도 곧 취소될 것이라고 전했다. “등기부등본에는 안 나왔지만, 임대인은 이 집을 담보로 24억원을 빌린 상태였다. 17개 가구 세입자들의 계약은 무효가 됐다. 캠코에서도 몰랐던 신탁을 우리가 어떻게 알았겠는가. 세입자 중에서 누구도 확인을 못 했다. 누구도 피할 수 없었던 사기였는데 어느 누구 하나 책임지지 않는다.”
신협은 정 위원장 등 블루하임 17개 가구의 임대차 계약이 소유주인 자신의 사전승낙 없이 이뤄졌기에 무효라며 퇴거를 요청했다. 퇴거에 응하지 않자 세입자들을 내보내기 위한 명도소송을 제기했다. 정 위원장은 “신탁사기의 경우 특별법에 적시된 ‘경·공매 유예 및 중지’도 적용되지 않았다. 임대차 계약이 무효로 간주돼 임차인 자격이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오는 12월 15일 신협이 명도소송에서 이기면 17개 가구 피해자들은 쫓겨나야 한다. 지난 12월 5일 열린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전체회의에서는 이에 대해 정부가 보완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심상정 정의당 의원은 “신탁사기 피해 주택의 채권자이자 명도소송을 진행하는 대구 신협 관계자를 만나봤는데, 이분들은 당장 채권을 회수하려는 목적보다는 배임 혐의에 걸리지 않기 위해 소송을 한다고 했다”면서 “명도소송 중지 명령이 떨어지면 배임을 걱정하지 않고 명도소송을 중지한다고 하니, 정부가 결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무료법률상담지원 신청해도 3~4주 기다려”
정 위원장은 현행 특별법이 피해자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지 못하고 사각지대가 넓은 “반쪽짜리, 아니 100분의 1짜리 법안”이라며 법 개정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특별법에 따른 정부 지원을 받은 피해자 비율은 17%에 불과하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대부분이 경·공매 유예 및 정지나 저리 대출을 받는 정도다. 나도 피해자로 결정되고 난 후 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 기대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막상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건 하나도 없었다. 전세자금 대출 지원이 대부분인 셈인데 지금 전국에 있는 전세사기 피해자 중에서 다시 전세를 들어갈 사람이 몇이나 되겠나. 실제로 인천 피해자 한 분이 그래도 일어나보겠다고 다시 전세를 들어갔는데 또 사기를 당했다.” 긴급생계지원금이나 무료법률상담지원도 유명무실하다. “한 달에 150만원 미만으로 벌어야 긴급생계지원금을 받을 수 있다. 풀타임 노동자 중 월 150만원을 못 버는 노동자가 과연 몇 명이나 될까. 하다못해 무료법률상담지원도 신청해봐야 3주 후에나 받을 수 있다. 지금 당장 일이 터져서 알아보고 싶은데 3~4주를 기다려야 한다. 피해자가 돈을 내고 법률상담을 받거나 본인이 공부를 해야 한다. 지금 전세사기 피해자들이 이제 다 전문가가 돼 있다.”
“선구제 후회수’ 방안이 필요하다. 국가가 전세보증금 채권을 매입하고 추후 권리를 행사하라는 것이다. 경·공매 들어가고 낙찰자 나오고 명도소송 들어가면 피해자들은 버틸 수가 없다. 전세사기는 법률의 허점 때문에 생긴 문제다.”
이들은 무엇보다 ‘선구제 후회수’의 방안이 담긴 특별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정부가 피해자의 보증금 반환 채권을 매입해 먼저 보상하고, 이후 전세사기 주택을 경·공매해 매입비용을 회수하는 방안이다. “국가가 전세보증금 채권을 매입하고 추후 권리를 행사하라는 것이다. 지금 경·공매 들어가고 낙찰자가 나오고 명도에 들어가면 피해자들은 버틸 수가 없다. 전세사기는 법률의 허점 때문에 생겨난 문제다. 주택임대차보호법, 신탁법, 등기부등본 표시 제도 등 전세사기로 드러난 제도의 문제를 다 고쳐야 한다. 정부는 선구제 후회수로 피해자들이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하고 법을 바꿔 다음 피해자들이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지난 9월 25일 발의된 허종식 민주당 의원 법안과 11월 21일 발의된 심상정 의원의 법안에는 ‘선구제 후회수’가 명시돼 있다. 심상정 의원은 12월 5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주택도시보증공사의 대위변제가 5조원 이상인데 이것이 선구제 후회수 방식이다. 공공기관도 이렇게 하고 있다”며 “피해주택 전세보증금 평균이 1억3000만원인데 2조원 정도면 3만명의 피해자가 구제되는 거다. 재원은 은행에서 마련하면 된다”고 말했다.
“말로만 처벌 강화···언론플레이로밖에 안 느껴”
정부·여당은 특별법 개정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며 전세사기범 처벌을 강조하고 나섰다. 지난 11월 30일 경기 고양시에서 열린 제3차 국정과제 점검회의에 참석한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전세사기 대책을 묻는 말에 “앞으로 전세사기가 발생한다면 20년간 감옥에 갈 것”이라며 “피해액을 합산해 가중처벌하는 특별법을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10월 30일 윤석열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국회에서도 약자들을 대상으로 한 악질 범죄가 반복되지 않도록 다수를 대상으로 한 범죄의 피해액을 피해자별로 합산해 가중처벌하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개정을 서둘러 주기를 부탁한다”고 말했다. 지난 4월 유상범 국민의힘 의원이 발의한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 개정안은 국회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정태운 위원장은 “언론플레이밖에 안 느껴진다”고 말했다. “지금 대구 블루하임 건도 사기죄로만 입건돼 있다. 말만 하고 적극적인 추진이 없다. 전세사기특별법도 마찬가지다. 전세사기특별법 개정안 요구 서명운동을 하거나 시위를 하고 있으면 사람들이 와서 ‘특별법으로 다 지원받지 않았냐’고 묻는다. 대부분의 피해자가 하나도 지원받은 게 없는데, 정부·여당이 반쪽짜리도 아니고 100분의 1도 안 되는 법안을 만들어놓고 떠드니까 다른 국민이 봤을 때는 정부가 열심히 하고 있는 것처럼 비쳐지고 있다.”
“15년을 죽기 살기로 2억3000만원을 모았다. 150 대 1을 뚫고 청약에 당첨됐다. 2024년 입주 시기에 맞춰 결혼 계획도 잡고, 잔금 치를 비용으로 전세를 들었다. 그 잔금이 사라졌다. 앞으로 내 인생이 어떻게 될지 잘 모르겠다.”
국민의힘 권리당원이었던 정 위원장은 지난 11월 28일 국민의힘에 탈당서를 제출했다. 오랫동안 당원으로 활동하고 지지했던 국민의힘에 배신감을 느꼈다. 전세사기 피해를 입고 지역구 국회의원인 양금희 의원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연락을 보냈지만, 답변 하나 없다. 대구시청에 홍준표 대구시장과 피해자들 간의 간담회를 요청했지만, 마찬가지였다. “내가 투표를 한 게 참 아깝구나, 차라리 투표하지 말 걸 하는 생각도 많이 들었다. 다른 지역구의 국민의힘 의원을 만나 도와달라고 했지만, ‘선구제 후회수’를 정부·여당이 반대하는 상황에서 자기도 말하기 어렵다고 하더라. 공천도 받아야 하고 정치생명도 유지해야 한다며 어쩔 수 없다고 했다.”
정 위원장은 고등학교 1학년인 17세 때부터 일을 하며 돈을 모았다. 어린 시절부터 ‘우리 집’이 없었기에 ‘내 집 마련’은 그의 소중한 꿈이었다. 그렇게 15년을 일해 2억3000만원의 돈을 모았다. 열심히 일하고 안 쓰고 아끼며 죽기 살기로 모은 돈이었다. 2021년에는 150 대 1의 높은 경쟁률을 뚫고 청약에 당첨됐다. 드디어 내 집 마련의 꿈에 한 발 가까이 다가간 순간이었다. 입주 시기인 2024년 10월에 맞춰 오랜 기간 함께해온 여자친구와 결혼 계획도 잡았다. “예쁜 아기를 낳고 예쁜 가정을 꾸리며 살고 싶다”던 그의 꿈은 전세사기 피해자가 되면서 불투명해졌다. “청약에 당첨되고 계약금 등으로 1억1000만원이 들어갔다. 남은 돈 1억2000만원 중 1억원으로 전세를 얻었다. 잔금 치를 비용이었는데 그 잔금이 없어져 버리고 말았다.” 마이너스프리미엄을 붙여 분양권을 팔려고 해도 미분양이 속출하는 대구 부동산시장에선 팔리지 않는다. 시행사에 상황을 이야기하고 해법이 없는지 묻자 신용불량자가 되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나중에 입주 시기가 되면 잔금과 함께 이자를 내야 하는데 이자를 3개월 미납하면 신용불량자가 된다고 하더라. 그러면 계약포기권이 생겨 이자와 위약금만 내면 입주 포기가 된다고 했다. 이자가 2400만원, 위약금이 1000만원 정도인데 그럼 나는 전세사기로 보증금 1억원을 잃고 이미 계약금 등으로 넣은 1억1000만원에 추가로 3500만원을 더 잃고 나서 신용불량자가 된다. 32세 청년이 15년간 죽기 살기로 모았던 돈이 한순간에 싹 날아가는 셈이다. 이걸 구제받을 수 없다면 앞으로 내 인생은 도대체 어떻게 된다는 건지 잘 모르겠다.”
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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