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브 스토리’ 사랑의 아이콘… 실제 삶은 영화 같지 않았다

박은주 기자 2023. 12. 11. 04:24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박은주의 이 사람의 길]
8일 별세한 배우 라이언 오닐
라이언 오닐(왼쪽)과 알리 맥그로 주연의 영화 ‘러브 스토리’(1970) 중 가장 유명한 눈싸움 장면. 라이언 오닐(왼쪽)이 지난 8일(현지 시각) 세상을 떠났다. 프란시스 레이 음악감독이 만든 OST ‘눈장난(Snow Frolic)’은 지금도 사랑받는다. 러브 스토리는 아카데미 음악상을 받았다. /에버렛컬렉션

“스물다섯 살에 죽은 여자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녀는 모차르트와 바흐, 비틀스 그리고 나를 사랑했다.”

1970년 12월 16일 미국에서 영화 ‘러브 스토리’가 개봉했다. “극장에 손수건을 등장시킨” 영화는 당시 미국 역대 흥행 3위를 기록했다. 1969년 히트작은 무법의 미학을 칭송한 ‘내일을 향해 쏴라’, 남창과 사기꾼 이야기 ‘미드나잇 카우보이’였다. 히피 문화, 저항주의의 ‘아메리칸 뉴 시네마’가 정점으로 치달을 때 ‘역행’이 일어난 것이다.

열풍은 한국에 그대로 수입됐다. 1971년 12월 15일 서울 국제극장에서 영화 ‘러브 스토리’가 개봉하자 24만명 관객이 몰렸다. 당시 수입가는 7만달러, ‘외화 낭비’를 지적하는 기사까지 났다. 그래도 “터무니없이 잘생긴” 라이언 오닐의 인기가 치솟았다.

라이언 오닐과 알리 맥그로가 출연한 1970년 영화 '러브 스토리'. 영화 속 하버드 로스쿨 재학생 올리버는 금발 미녀가 아닌 '똑똑한 여자' 제니를 사랑한다.

배우 라이언 오닐(O’Neal)이 지난 8일(현지 시각) 82세로 세상을 떴다. 아들 패트릭은 부음을 전하며 이렇게 회고했다. “가장 잘생겼고 가장 매력적인 사람, 치명적인 조합(lethal combo).” 오닐은 2001년 만성 백혈병, 2012년 전립선암 진단을 받았다.

영화에서 제니가 올리버에게, 올리버가 아버지에게 말한다. “사랑은 미안하다고 말하지 않는 것.” 이 대사는 수없이 패러디되며 그를 ‘사랑의 아이콘’으로 만들었지만, 실제 삶은 액션 활극이나 불륜극에 가까웠다.

1941년 로스앤젤레스 할리우드에 사는 시나리오 작가 아버지와 연극배우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오닐은 어릴 적 복싱 선수와 인명 구조대 활동을 했다. 1964년 드라마 시리즈 ‘페이턴 플레이스’에서 존재감을 드러냈다.

“로미오와 줄리엣을 리부트(재시동)한 작품”이라고 원작자 에릭 시걸이 밝힌 ‘러브 스토리’가 인생을 바꿔줬다. 보스턴 명문가의 하버드 로스쿨생인 올리버 배럿 4세와 래드클리프 음대에 다니는 가난한 제니 카발리에리의 사랑과 죽음. 가난하고 똑똑한 여학생에게 부잣집 미남이 쏙 빠진다는 내용에 대중이 열광했다.

라이언 오닐

패러마운트사 사장은 각본을 읽자마자 히트를 예상하고, 자기 아내이자 31세 배우 알리 맥그로(MacGraw)에게 ‘25세 제니’ 역을 맡겼다. ‘의식 있는 배우’ 존 보이트가 배역을 거절해 다른 배우로 결정하기 직전, 맥그로가 오닐을 강력히 추천했다.

‘러브 스토리’는 소설과 영화 모두 크게 성공했지만, 아카데미에서는 홀대 받았고 미 영화연구소(AFI) 선정 ‘가장 로맨틱한 영화 10편’에 들었다. 1978년 나온 후속작 ‘올리버 스토리’는 안 찍는 게 좋았겠다는 혹평을 들었다.

오닐은 이후 9세 딸 테이텀(아카데미 여우조연상 최연소 수상)과 함께 출연한 코믹 영화 ‘페이퍼 문’(1973),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배리 린든’(1975년), 2차 대전 연합군의 작전을 그린 ‘머나먼 다리(1977년)’에 출연하며 연기 폭을 넓혔다.

배우 라이언 오닐과 그의 평생 사랑이었던 파라 포셋. 1985년 아들 레드몬드 오닐을 낳았지만 둘은 결혼은 하지 않았다.

80년대부터는 격렬한 사생활로 존재감을 알렸다. 여배우 조애나 무어, 리 테일러 영과 결혼해 1녀 2남을 얻었지만, ‘미녀 삼총사’의 배우 파라 포셋(Fawcett)과 불륜 관계를 오래 지속했다. 포셋이 ‘육백만불의 사나이’ 리 메이저스(84)와 부부였던 시기인 1979년부터 만났다 헤어졌다 또 만났다. 2009년 포셋이 사망했을 때도 그가 옆에 있었다.

라이언과 리 테일러 영 사이의 아들인 패트릭은 부음에서 포셋을 언급했다. “이제 그들이 다시 만난다. 파라와 라이언. 아버지는 그녀를 몹시 그리워했다.” 라이언은 포셋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은 수영복 입은 핀업걸로 기억하지만, 그녀는 진짜 예술가의 영혼을 가졌다. 그 어떤 영화보다 그녀가 좋다.”

사건 사고가 많았다. 스무 살 때 폭행으로 구금, 1986년 보트 난폭 운전으로 동승했던 친구(프랜시스 코폴라 감독 아들) 사망, 2007년 부지깽이를 휘두르는 아들 그리핀에게 총기 발사. 딸 테이텀은 “어릴 적 아버지가 학대했다”고 비난했다.

라이언 오닐은 ‘올리버’가 아니었고, 그럴 이유도 없었을 것이다. 그가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나는 경솔하다. 그게 내 매력 중 하나다.”

2022년 5월 21일 라이언 오닐(왼쪽)이 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 TV 장내 아나운서인 아들 패트릭 오닐(오른쪽)과 찍은 사진. 오닐의 아들 패트릭은 인스타그램을 통해 아버지가 12월 8일 사망했다고 밝혔다./AP 연합뉴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