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엄마의 엄마가 되다…하지만 ‘독박 돌봄’은 어떡하나요? [주말엔]

김현민 2023. 12. 10.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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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보는 이들도 돌봄이 필요하다."

지속 가능한 돌봄을 위해선 '자기 돌봄'도 중요하다는 말인데요.

에너지 소비가 많은 환자 보호자도 '쉼'이 필요합니다.

70대 치매 엄마를 직접 돌보고 있는 요양보호사 이은주 씨를 만나봤습니다.

■ 딸이 된 엄마

일본 유학 후 번역가로 일하며 요양보호사 자격증까지 딴 이은주 씨.

요양보호사가 된 특별한 계기는 없지만, 천성이 남을 잘 돌보는 성격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올해 어머니가 치매 진단을 받게 되면서 갑작스럽게 '엄마의 요양보호사'가 됐습니다.

70대 후반의 어머니 최정애 씨는 치매로 인해 점점 소녀가 되어갔습니다.

매일 나가자고 조르는 엄마. 이은주 씨는 "엄마의 엄마가 됐다"고 말합니다.


■ 엄마의 배회

하루는 딸의 집에 놀러 온 엄마가 갑자기 밖으로 나간 후 사라졌습니다.


CCTV로 확인해 마지막 행적을 찾아 헤매던 중 누군가의 신고로 겨우 여덟 시간 만에 엄마를 찾았습니다.

이후 노인 팔찌도, 목걸이도 거부하는 엄마 곁에 24시간 붙어있겠다고 다짐했습니다.

■ 독박 돌봄? 숨 막혀요

엄마에게 더 많은 시간을 쏟게 된 이 씨. 돌봄에 소질이 있다던 요양보호사 딸에게도 '독박 돌봄'은 힘들었습니다.

요양병원에 가지 않겠다는 엄마의 뜻을 따랐지만, 번역과 글을 쓰는 일이며 사회생활 대부분이 힘들어진 그녀는 가족들에게 부탁합니다.

"돌봄의 민주화를 실천하자, 나도 살아야지. 너희들도 할머니의 가족이니까 함께하자."


■ 회복 탄력성

링 위에서 한판 대결하기 위해선 코너에서 잠시라도 쉬어야 하는 것처럼, 좋은 돌봄을 위해선 쉬는 시간을 통한 자기 돌봄이 필수라고 이 씨는 말합니다.

가족들과 교대하는 주말엔 엄마 곁을 떠나 온전히 쉬며 자신을 돌볼 수 있게 됐습니다.

또,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비슷한 처지의 다른 사람들과도 소통하며 서로를 격려하고 있습니다.


엄마가 침대 위에 실례를 연속으로 해 이불 빨래를 두 번 하고, 라이터를 갖고 놀다 불을 지를 뻔한 날도 그랬습니다.

엄마를 미워할 대상으로 보지 않게 자신을 회복해야 했던 이 씨는 휠체어를 끌고 호프집으로 향했습니다.

"어머님도 맥주를 드세요?" 묻는 호프집 사장님에 "기분 좀 내 보려고요"라고 대답한 이 씨.

떠들썩 한 곳에서 엄마와 각자 안주를 하나씩 시켜놓고 먹다 보니 오히려 많은 위로를 받게 됐다고 전했습니다.

■ 돌봄 부담, 자유시간이 필수

국립중앙의료원 중앙치매센터의 '대한민국 치매 현황 2022'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국내 65세 이상 인구 중 추정 치매 환자가 100만 명에 이를 전망입니다.

점점 돌봐야 할 사람은 많아지는데 돌봐줄 사람은 적은 현실.

권순재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보호자의 행복을 위해서나 돌봄의 질을 위해서도 하루에 자유시간을 몇 시간씩 가져야 한다고 말합니다.

끝이 없는 돌봄에 '쉼'이 없다면 정신적으로 체력적으로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각 지역의 치매 안심센터를 이용하는 것도 방법입니다.

치매 안심센터를 이용한다면 치매 조기진단을 받을 수 있고 사례 관리를 통해 치매 환자들에 대한 보호자 교육 등을 받을 수 있습니다.

또한, 노인 장기요양보험 등급 신청을 한다면 돌봄 재가 급여, 방문요양 서비스, 가족 요양비 등을 받을 수 있으니 적극적인 자세로 지원을 알아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 효심 보다 예의

이은주 씨는 어머니를 효심 때문에 돌보는 게 아니라고 말합니다.

효심이라면 감정이 과하게 섞여 돌봄의 질도 낮아졌을 거라며, 나를 낳아준 엄마 대한 '예의'라고 설명했습니다.

때로는 아이가 된 엄마의 말에 상처받고 끝이 없는 돌봄에 지치기도 하지만 그녀는 다짐했습니다.

"매일 나는 회복해야겠다. 난 엄마보다 더 강할 거야."


돌봄에 지치다보면 스스로가 갇혀 있다는 생각이 든다는 이 씨.

잠시 앞치마를 풀어놓고 자신만의 '회복의 순간'을 만들라고 말합니다.

스스로를 돌보며 매일 회복하는 그녀처럼 이 시대의 수많은 보호자들도 자신을 돌보며 지치지 않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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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민 기자 (hnm@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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