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거 사다리, 다시 세우겠다” 새 국토장관 후보자의 약속[황재성의 황금알]
2: 국토부 출범 후 30년 간 장관 23명 거쳐
3: 박상우 후보자, 국토 행정 전문성에 방점
4: 주거 안전망 구축과 교통혁신에 강한 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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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지난 4일 6개 부처 장관을 교체하는 중폭의 개각을 단행했습니다. 이 가운데에 국토교통부도 포함됐습니다. 장관 후보자는 박상우 전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장이었습니다. 김대기 대통령실 비서실장은 이날 인사발표 브리핑에서 “후보자가 풍부한 정책 경험과 현장 경험을 두루 겸비하고 있어 국민들의 주거안정을 강화하고, 모빌리티 혁신도 이끌 수 있는 적임자라고 판단했다”며 이같이 소개했습니다.
여론의 평가도 대부분 이를 수긍하면서 긍정적인 반응입니다. 복잡하게 꼬인 국토부 현안을 해결할 수 있는 적임자라는 것입니다. 박 후보자는 1983년 행시 27회로 옛 건설부에 첫발을 내딛으며 공직에 입문했습니다. 이어 2014년 5월까지 30년 이상 국토부에서만 근무하며 내공을 쌓은 국토 행정의 전문가입니다.
그의 후보자 지명에 대해 여론 만큼이나 국토부 내부 반응도 호의적입니다. 그가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쳐 정식으로 임명된다면 권도엽 장관(재임기간·2011년 6월~2013년 3월) 이후 10년여 만의 내부 출신 장관이 되기 때문입니다.
사실 국토부는 꽤 높은 업무 전문성이 요구되는 정부 부처입니다. 행정안전부의 정부기구도표에 따르면 국토부는 본부와 15개 지방청 등에 모두 4124명(2023년 3월 말 기준)을 거느리고 있습니다. 또 정부 전체 1년 예산(2024년 세출안 기준)의 9%가 넘는 막대한 자금을 사용합니다. 이는 61개에 달하는 정부 부처 및 각종 위원회 가운데 5번째로 큰 규모입니다.
업무도 국민 실생활에 밀착한 것들이 대다수입니다. 주거 안정부터 국토 균형, 도시 개발, 도로·철도·공항 등 각종 국가기간시설(SOC)의 건설 및 운영 등 결코 쉽지 않은 문제들입니다. 최근에는 우리나라의 미래먹거리가 될 것으로 기대되는 모빌리티 관련 산업 육성에도 깊숙하게 관여하고 있습니다.
이런 사업 대부분은 구상에서 계획 수립을 거쳐 실행에 이르기까지 평균 10년 이상이 필요합니다. 사업 규모가 큰 만큼 이해관계도 복잡하게 얽혀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국토부에서 하급직 관료로 출발해 잔뼈가 굵은 경우가 아니면 관련 업무를 파악하는 데 최소 6개월 이상이 필요하다는 말도 있습니다.
게다가 잘하면 본전이고 잘못하면 티가 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대표적인 게 주택 정책입니다. 정책을 제대로 펼쳐 시장이 안정되면 당연한 일입니다. 반면 집값이나 전세금이 크게 오르거나 떨어지고, 관련 시장이 불안해진다면 국토부는 물론 정권의 실패로 평가받기 일쑤입니다. 지난 문재인 정부가 이를 극단적으로 보여줬습니다.
이는 국토부 장관이 결코 영예로운 자리로만 여겨질 수 없음을 시사합니다. 실제로 과거 역사를 보면 정치적인 이유나 부적절한 행동 등으로 인해 장관직에서 불과 15일 만에 하차하는 등 불명예 퇴진자가 적잖았습니다. 박 후보자에 큰 기대를 거는 이유입니다.
● 장관 평균 재직 기간 1년 3개월…15일 단명 장관도
이후 2008년 2월 이명박 정부는 ‘국토해양자원 관리와 경제 인프라 지원 기능을 결합해 국토의 가치를 높인다’는 명목으로 건설교통부를 해양수산부와 합친 뒤 문패를 ‘국토해양부’로 바꿔 달았습니다. 이어 2013년 2월 출범한 박근혜 정부는 국토해양부에서 해양수산부를 다시 떼어냈고, 이름도 ‘국토교통부’로 교체해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며 30년간 23명의 장관이 배출됐습니다. 이들을 유형별로 보면 15명이 관료 출신이 가장 많았고, 나머지는 정치인(6명)이거나 교수(2명) 출신이었습니다.
관료 출신 가운데에서도 사무관 때부터 국토부 업무를 익혀온 내부 출신 장관은 4명에 불과합니다. 강동석(재임기간·2003년 12월 29일~2005년 3월 28일) 추병직(2005년 4월 6일~2006년 11월 19일) 정종환(2008년 2월 29일~2011년 6월 1일) 권도엽(2011년 6월 2일~2013년 3월 11일) 전 장관 등입니다.
현직인 원희룡 장관(2022년 5월 21일~현재)를 제외한 전체 22명의 장관의 평균 임기는 452.2일로, 15.1개월(1년 3개월여)에 해당합니다. 유형별로 보면 관료 출신이 461.1일(15.4개월)로 학자(419.5일·14개월)나 정치인(438.6일·14.6개월)보다 길었습니다. 다만 내부 출신 국토부 장관은 720.3일(24개월)로 평균을 크게 웃돌아 눈길을 끌었습니다.
여기에는 이명박 정부 시절 3년이 훌쩍 넘는 1186일 동안 맹활약했던 정종환 전 장관의 공로가 큽니다. 하지만 나머지 3명도 모두 평균 기간 이상 장관으로 재직했습니다.
반면 정치인 출신 장관의 임기는 길지 못했습니다. 재임 기간만 1285일로 역대 최장수 국토부 장관 타이틀을 거머쥔 김현미 전 장관(2017년 6월 21일~2020년 12월 28일) 덕분에 평균 기간이 늘어났지만 1년 이상 재직한 장관은 드뭅니다.
원희룡 장관과 이정무 전 장관(1998년 3월∼1999년 5월)만이 1년을 넘겼을 뿐입니다. 특히 오장섭(2001년 3∼8월) 김용채(2001년 8∼9월) 두 전 장관의 임기는 6개월을 넘기지 못했습니다. 특히 김 전 장관은 취임(8월 22일)하고 15일 만인 9월 6일에 하차했습니다. 당시엔 민주당과 자민련이 연합해 정권을 잡은 뒤 장관 자리를 자민련 몫으로 배정했습니다. 그런데 이 연정이 깨지자 자리에서 물러난 것입니다.
두 명에 불과한 학자 출신 장관 임기가 상대적으로 짧아진 데에는 변창흠 전 장관(현 세종대 교수)이 큰 몫을 차지합니다. 박근혜 정부 출범과 장관에 오른 서승환 전 장관(현 연세대 총장)은 2013년 3월 11일부터 2015년 3월 13일까지 2년 넘게 활동했습니다.
반면 변 전 장관은 2020년 12월 29일 임명장을 받은 뒤 불과 108일 만인 2021년 4월 16일 낙마합니다. 여기에는 그가 심혈을 기울여 2021년 2월 4일 발표한 수도권 주택시장 안정대책(‘공공주도 3080+’)에서 핵심 사업이었던 광명·시흥 신도시가 빌미를 제공합니다.
정부 발표 직후인 3월 2일 참여연대와 민변 등 시민단체들은 LH 직원들이 신도시 후보지에 대한 사전정보를 입수하고 토지투기를 했다는 의혹을 제기했습니다. 그런데 직전 LH 사장이었던 변 전 장관이 이들 직원을 두둔하는 발언을 한 게 문제가 됐습니다.
이는 걷잡을 수 없는 여론의 반발을 불러왔고, 변 전 장관은 3월 12일 사의를 표명합니다. 한 달 뒤에 있을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4·7 보궐선거’)에 미칠 악영향을 우려한 문재인 정부는 이를 수용하기로 방침을 정하고, 한 달여 뒤인 4월 16일 사표를 수리했습니다.
● 전문성 앞세워 안정적인 국토교통 정책 추진 기대
여기에는 크게 몇 가지 요인이 작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우선 김대기 비서실장의 설명에서 언급됐듯 박 후보자가 지닌 국토 행정 분야의 전문성입니다. 그는 국토부에서도 핵심 보직으로 알려진 주택정책과장-토지기획관-건설정책관-국토정책국장-주택토지실장-기획조정실장 등을 두루 거쳤습니다. 국토부 내부에서도 이런 경력을 쌓기가 결코 쉽지 않습니다.
퇴직한 이후에도 국토부 관련 업무와의 인연을 이어갔습니다. 퇴직 직후 대한전문건설협회 산하 대한건설정책연구원장을 거쳐 박근혜 정부 후반기인 2016년 3월 LH 사장이 됐습니다. 이듬해인 2017년 5월 문재인 정부로 정권이 바뀌었지만, 그는 3년 임기를 완주했을 정도로 전문성을 인정받았습니다.
LH 사장으로 재직하는 동안에는 이자 발생 부채를 20조 원 가까이 줄였고, 문 정부 국정과제인 ‘주거복지 강화’를 주도했습니다.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2018년 문재인 정부가 123개 공공기관 및 기관장을 대상으로 진행한 첫 번째 공공기관 경영실적 평가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은 우수 기관장 2명 가운데 한 명으로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박 후보자는 관련 분야에 대한 이론 무장에도 적극적이었습니다. 그 결과 1995년 미국 조지워싱턴대학교 대학원에서 도시계획학 석사, 2007년에는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에서 지역계획학 석사를 받았습니다. 2015년에는 가천대학교 대학원에서 도시계획학 박사학위를 따냈습니다.
이처럼 경험과 이론을 겸비한 전문가였기에 그는 2014년 공직에서 물러난 이후 좌우 정부를 가리지 않고 개각이 진행될 때마다 국토부 장관 하마평에 꾸준하게 이름을 올렸습니다. 그만큼 준비된 ‘장관 후보자’라는 뜻입니다.
현재 국토부 두 명의 차관이 국토부 현안을 다루기에는 전문성과 무게감이 떨어진다는 평가도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큽니다. 역대 국토부 차관은 모두 36명인데, 대부분은 국토부 출신으로 채워졌고 외부인은 4명에 불과합니다. 그만큼 국토부 행정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이들이 임명됐던 자리입니다.
3선 국회의원 출신 원희룡 장관이 보여줬던 정치적 행보에 대한 피로감도 정통 관료 출신 후보자에 무게를 실어줬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원 장관은 재직 기간 대부분의 휴일을 반납하고 각종 현장을 누비며 왕성한 활동을 펼쳤습니다. 그 결과 일 많이 하는 ‘셀럽(유명) 장관’이라는 긍정적인 평가를 얻었습니다.
반면 뚜렷한 성과 없이 자신의 홍보에만 매달린 ‘사상 최초의 장관 유튜버’라는 냉소적인 평가도 나옵니다. 국토부가 원 장관 취임 이후 9일까지 ‘장관동정’이라는 제목으로 내놓은 보도자료만 221건입니다. 이는 재임기간이 원 장관보다 2배 이상 긴 김현미 전 장관(144건)보다 50% 이상 많은 것입니다.
● 장관 후보자의 입에 모아진 관심
우선 주거 안전망 구축과 출퇴근 교통혁신에 대한 강력한 의지 표명입니다.
박 후보자는 지난 4일 후보자 지명 직후 국토부 출입기자단에 보낸 소감문을 통해 “지난 30여 년간 국토부와 LH(한국토지주택공사)에서 근무하면서 국민들께서 일상에서 경험하시는 주거 문제, 출퇴근 문제와 함께 지속 가능한 국토와 도시의 발전 방향 등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해왔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장관으로 취임하게 된다면) 촘촘한 주거 안전망 구축과 주거 사다리 복원을 통해 국민들의 집 걱정을 덜어드리고, 출퇴근 교통혁신을 통해 평범한 직장인의 하루의 시작과 끝을 보다 편안하게 만드는데 최우선 순위를 두겠다”고 덧붙였습니다.
그는 유관 산업에 대한 발전 지원과 적극적인 소통 행정 노력도 강조했습니다.
그는 소감문에서 “우리 경제의 활력이 다시 살아날 수 있도록 건설교통 관련 산업이 건전하게 발전해 나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의지를 다졌습니다. 이어 “지역 균형발전, 저출산 대응 등 현안이 산적한 부처인 만큼 세심히 챙겨나가겠다”면서 “(이 과정에서) 현장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언론, 전문가들과 끊임없이 소통함으로써 국민들이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정책을 만들어나가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관심도가 높은 주거정책과 관련해서는 인구 감소와 고령화라는 흐름을 감안해 “아파트 중심 사고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화두를 던져 관심을 불러 모았습니다.
이는 그가 5일 정부과천청사에 마련된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로 출근하는 길에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 내놓은 것이었습니다. 그는 “주택 수요가 굉장히 다양하게 변화하고 있고, 거기에 맞는 다양한 주택들이 제대로 공급될 수 있도록 정부가 정책 방향을 (잡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전날 첫 출근길에서 밝혔던 “오랫동안 갖고 있던 아파트 중심의 사고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비아파트 중심의 주택 정책 의지를 다시 한 번 강조한 것이었습니다.
박 후보자는 이같은 정책의 필요한 이유로 인구 감소와 고령화를 꼽았습니다. 즉 “과거 40년과 달리 인구가 줄고 고령화되는 시절이 다가오고 있다”며 “(아파트 중심으로 주택 공급이 이뤄진) 40년이 지나고 새로운 30년, 20년이 오기 때문에 거기에 맞는 주택 정책을 해야 한다는 뜻”이라는 것입니다.
최근 우려되고 있는 급격한 공급 감소에 따른 집값 불안 우려에 대해서도 그는 “우려를 극복하기 위해 3기 신도시를 조기에 착수해 빨리 공급한다든지 재건축·재개발 사업 중 지체되고 있는 것들을 빨리 진행시킬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하고 정부가 지원하는 전통적인 방법과 더불어 공급 형태를 다양화하겠다”는 의견을 내놨습니다.
이어 공급 형태에 대해서는 “도심에서 소규모로 다양한 형태의 주택들이 빠른 시간 내에 공급될 수 있도록 정부와 지자체가 협력하는 방안을 찾아보겠다”고 덧붙였습니다. 이에 따라 시장에서는 그동안 정부 정책에서 소외됐던 오피스텔, 다세대, 연립주택 등과 관련한 특단의 조치가 취해질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습니다.
황재성 기자 jsonh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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