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교란 브라운송어, 소양강에 번성하는 이유? [갈색 이방인]①

고순정 2023. 12. 10.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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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운송어'를 아십니까? 브라운송어는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이 지정한 세계 100대 악성 침입 외래종입니다. 그런데 강원도 소양강에 이름도 낯선 이 이방인이 지속적으로 출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점차 그 서식 범위를 넓혀가고 있습니다. 이에 KBS 특별취재팀은 브라운송어를 시작으로 소양강의 생태교란종 서식 실태를 10달 동안 추적했습니다. 그 결과를 4차례에 걸쳐 보도합니다.

[기사 연재 순서]
①생태교란종 브라운송어, 왜 소양강에 정착했을까?
②브라운송어 시식지 확대·연중 산란 가능성 확인
③외래종 퇴치 왜 안될까? 오락가락·주먹구구 환경정책
④영혼을 갈아 넣은 10달…취재 뒷이야기

‘브라운송어 낚시의 성지’가 된 강원도 춘천 소양강

"여기가 성지죠, 플라이 낚시꾼들의 성지."
"주말마다 와요. 평일에 휴가 내고도 오고. 비행기 타고 미국이나 유럽에 가야 잡을 수 있는 브라운 송어가 여기에 나오니까. 대한민국에서 여기에만."

칠흑 같은 어둠을 뚫고 황금빛 동이 터 오를 무렵, 가슴장화 차림에 긴 낚싯대를 손에 든 낚시꾼들이 하나 둘 소양강에 모습을 드러냅니다.

잔잔한 수면 위에 파문이 일며 동심원이 퍼져 나갑니다. 물고기가 먹이 활동을 할 때 나타나는 현상, '라이즈'입니다. 파문이 이는 방향으로 재빨리 미끼를 던집니다. 릴을 감아올리고, 또 같은 자리에 다시 던지길 몇 차례, 낚싯대를 쥔 손에 묵직한 떨림이 전해집니다. 릴을 감는 손길이 빨라지고, 낚싯대는 크게 휘어 포물선을 그리는 찰나의 사투 끝에 어른 팔뚝만 한 커다란 물고기가 펄떡거리며 낚여 올라옵니다.

대한민국에서 오직 소양강에서만 잡을 수 있다고 알려진 물고기, 브라운송어입니다.

유럽에 사는 브라운송어가 어떻게 소양강에?

브라운송어는 원래 한국에 서식하지 않던 유럽산 연어과 물고기입니다. 1m까지 자랄 만큼 덩치도 크고 손맛도 좋아 세계적으로 인기 낚시 어종입니다. 이 브라운 송어가 소양강에 출현하기 시작한 것은 10년쯤 전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특별한 손맛'을 찾는 낚시꾼들에게 입소문을 타면서 소양강은 '브라운 송어 낚시터'로 명성을 얻게 됐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브라운송어가 어떻게 소양강에 흘러들어오게 됐는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점입니다. '누군가 몰래 수입해다 소양강에 풀어놨다.', '근처 양어장에서 키우다 사업성이 없어 소양강에 풀어줬다.' 혹은 '외국산 송어 알에 섞여서 들어왔다.' 등 여러 방향으로 추측이 난무하지만, 공식적인 수입 기록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낚시꾼들에게는 인기 어종이지만, 생태계 입장에선 그렇지 않습니다. 브라운송어는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이 지정한 세계 100대 악성 침입 외래종입니다.

이 때문에 환경부는 소양강의 브라운송어 서식 실태를 조사하였습니다. 브라운송어가 소양강댐 하류 특정 수계에서 자체 번식을 하며 집단 서식하고 있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2021년 '생태계 교란 생물'로 지정했습니다.

브라운송어는 덩치가 크고 포식성도 좋아 다른 물고기들을 도태시킬 수 있다는 점, 그리고 소양강 수계에 사는 멸종위기종(가시고기, 열목어 등)의 생태에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점 때문입니다. 특히 같은 연어과인 토종 열목어의 사이에서 교잡종이 나올 가능성이 있다는 게 환경부의 설명입니다.

“‘얘들(브라운)이 자연적으로 열목어 서식처로 들어갈 수 있다.’라고 생각하는 것보다는 ‘사람에 의해서 인위적으로 옮겨져서 이게 서식처로 침입할 수 있다.’라는 우려가 가장 큰 거죠. ‘소양강 일대에 있다.’라고 하면, 여기 와서, 여기서만 하시면 좋은데, 이거를 이제 내 거주지랑 좀 가까운 좋은 그런 곳들에다가 이렇게 옮기게 되면, 만약에 옮기게 되면, 얘들이 거기서도 적응을 할 수 있게 되고, 그러면은 이제 어떻게 얘들이 확산이 될지를 저희가 가늠할 수가 없어요.” -김수환 박사/ 국립생태원 선임연구원

'생물다양성 보전 및 이용에 관한 법률'에 따라 환경부는 국내 생태계의 균형을 교란할 수 있는 외래종을 '생태 교란 생물'로 지정해 관리하고 있습니다. 수입·사육·재배·보관·운반·유통 등이 모두 법으로 금지되며 위반할 경우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 원 이하의 벌금을 물립니다.

현재 우리나라의 생태계 교란 생물은 모두 38종류. 이 중 물고기는 이미 교란 종으로 잘 알려진 배스와 블루길, 그리고 브라운송어까지 3종류뿐입니다. 소양강은 이 생태교란종 물고기 3종이 모두 함께 서식하는 것이 확인된 국내 유일의 하천이 됐습니다.

■ 소양강댐이 만든 '특별한' 환경 때문에 … 방송 사상 최초 댐 방류구 수중촬영으로 확인

따뜻한 물에서 살지 못하는 냉수성 어종인 브라운송어가 사계절이 뚜렷한 대한민국에서, 산간 깊은 계곡도 아닌 소양강에서 정착할 수 있게 된 이유는 바로 소양강댐 때문입니다.

소양강댐은 물이 담기는 댐 구조물의 높이만 100 미터가 넘는 대형 댐입니다. 물이 깊어지면 심층부에는 햇빛이 닿지 않기 때문에 깊이에 따라 물의 온도가 달라집니다. 소양강댐의 경우 중층수가 연중 7~8도 사이를 유지하는데, 이 중층부의 찬물이 전기 발전을 위해 매일 댐 아래로 방류됩니다.

KBS 취재진은 소양강댐 관리처인 한국수자원공사의 협조를 받아 방송 사상 최초로 소양강댐 방류구에서 수중 생태 촬영을 시도했습니다. 이곳은 국가보안시설이기에 일반인의 출입이 엄격히 금지돼 있습니다.

수중 촬영이 이뤄진 시기는 6월, 여름의 초입이었습니다. 바깥 날씨는 25도 안팎이었습니다. 그런데 수심 20여 m까지 직접 들어가 확인해보니, 물속 온도는 8℃에 불과했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곳을 브라운송어가 장악하고 있었습니다. 유영하는 브라운 송어 말고 다른 물고기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었습니다.

소양강댐 방류구 수중 촬영

"발전방류구 쪽에 브라운송어 개체가 유어부터 성어까지 약 40개체 정도 각각 독립적으로 그렇게 따로따로 개별적으로 이렇게 생활하고 있는 것을 오늘 볼 수가 있었고요. 10cm 조금 넘어가는 유어부터 시작해서 가장 큰 개체는 70cm. 그 정도 큰 브라운송어까지, 다양한 개체가 서식하고 있는 걸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 차순철 / 수중촬영 전문가

인공위성으로 봤더니, 댐 하류 '1년 내내 냉수대 유지'

취재진은 브라운송어와 소양강댐의 연관성을 입증하기 위한 좀 더 객관적인 자료를 찾아보기로 했습니다. 위성 데이터 분석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NASA와 미국 지질조사국이 발사해 운영 중인 지구관측위성, Landsat 8이 1년 동안 기록한 소양강댐 하류의 열화상 데이터를 분석했습니다.


분석 결과, 소양강 하류에는 일 년 내내 영상 6도에서 16도 사이로 유지되는 냉수 영역이 존재하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한겨울에도 영하로 내려가지 않아 얼음이 얼지 않고, 한여름에도 소름이 돋을 정도로 낮은 수온이 유지됩니다.

냉수성인 브라운송어가 제 고향을 떠나 소양강으로 넘어와 정착하게 된 이유가 결국 인간에게 있었던 것입니다. 인간이 만든 댐과 전기 생산을 위한 발전 방류로 만들어진 환경이 브라운송어의 서식 환경을 조성해 준 셈입니다.

(2편에 계속)

[연관 기사]
1. 생태교란종 판치는 소양강…낯선 어종 DNA까지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7837909
2. 교란종 수매 ‘주먹구구’…줄줄 새는 혈세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7837911

[ 프로그램 다시보기]
유튜브 2023.11.28 소양강댐 50주년 기념 KBS 특별기획 '갈색 이방인'

https://youtu.be/mfPa7k3c2tE

KBS 홈페이지 '갈색 이방인' 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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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순정 기자 (flyhigh@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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