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툼한 외투는 벗어던져요...싱그러움이 온몸을 감쌀 테니

지유리 기자 2023. 12. 10.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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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속 초록] 대전 한밭수목원 열대식물원
맹그로브·다육식물 등 380여종 식재
10m 넘는 거대식물 사이로 유유자적
공중산책로서 내려보면 또다른 느낌
‘어린 왕자’와 바오바브나무 아래서 찰칵
추위에 움츠렸던 어깨가 활짝 펴지네

겨울의 색을 고르자면 흰색이 아닐까. 풍성했던 나뭇잎이 몽땅 떨어지고 흰 눈이 소복이 쌓이는 계절이다. 그 멋도 충분하지만 싱그러운 초록이 그립기도 하다. 그렇다면 떠나자. 온실만 있다면 계절을 뛰어넘어 봄을 만날 수 있으니. 전국 곳곳의 온실을 찾아 무성한 숲속을 거닐어보자. ‘팜 투 테이블(농장에서 식탁까지)’로 입으로 초록을 즐기는 방법도 있다.

계절을 뛰어넘어 녹음 짙은 대전 한밭수목원 열대식물원. 한 방문객이 가벼운 옷차림으로 싱그러운 열대식물을 감상하며 거닐고 있다.

‘이불 밖은 위험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으슬으슬 날이 추워지면 따뜻한 이부자리에서 빠져나오기 어렵다는 걸 재밌게 표현한 말이다. 겨울 한기가 몸을 움츠리게 하는 때가 왔다. 찬 바람에 길거리 가로수 잎이 황량하게 떨어져 괜히 마음마저 울적하다. 기분 전환하러 어디론가 떠나고 싶지만 멀리 가기가 부담스럽다면 가까운 수목원에 가보자. 1년 365일 싱그러운 초록빛을 뽐내는 온실이 있다.

2004년 완공돼 대전시가 운영하는 공립 한밭수목원은 자연의 푸르름을 만끽할 수 있는 도심 속 휴식공원으로 도시민에게 사랑받아왔다. 수생식물원·생태숲·암석원 등 다채로운 테마공원이 있는데, 그중 열대식물원은 날이 추워질수록 더욱 사랑받는 곳이다. 별관으로 지어진 다육식물원 183㎡(55평)를 더해 온실규모는 모두 2427㎡(734평)로 소박한 편이지만 볼거리는 꽤 많다. 380여종의 식물이 야자원·맹그로브원·열대화목원·열대우림원 등 4가지 주제 공원에서 초록을 뽐낸다.

한편엔 전체 풍경을 내려다볼 수 있는 공중산책로가 있다.

열대식물원에 입장해 오솔길을 걸으면 곧장 울창한 숲이 나온다. 키가 족히 10m가 넘는 거대 식물이 길을 따라 줄지어 섰다. 한아름이 넘는 굵은 줄기와 어른의 몸을 다 뒤덮을 만큼 큰 이파리를 보며 감탄을 쏟아내는데, 자세히 살펴보니 모양새가 제법 익숙하다. 여인초라 불리는 부채파초, 극락조와 이레카야자처럼 주변에서 흔히 봐왔던 식물인 것. 이들은 본래 열대기후에서 자라는 관엽식물인데 사계절이 뚜렷한 우리나라 집·사무실에선 일정 크기 이상 크지 못한다. 하지만 온실에선 연중 18∼20℃에서 햇빛을 듬뿍 받는 덕에 무럭무럭 자라는 것이다. 김선아 한밭수목원 연구사는 “천장 높이가 15m인데 그보다 높게 자라 가지치기를 한 식물도 꽤 많다”고 설명했다. 십수년 만에 훌쩍 커버린 초등학교 동창생을 만나면 이렇듯 반가울까. 눈에 익은 이름을 하나씩 외며 걷느라, 짧은 길이 꽤 길게 느껴진다.

열대식물원의 백미는 맹그로브원이다. 맹그로브는 물에서 자라는 나무를 통틀어 일컫는 말로, 동남아시아엔 맹그로브숲이 흔하다. 인공호수 가장자리에선 바링토니아·소네라티아 같은 낯선 식물이 자라고 있다. 기둥 주위로 짧은 막대기가 삐죽 솟아났는데, 이것이 뿌리다. 기둥에서 뻗어 나와 물속으로 잠수한 뿌리도 있다. 맹그로브의 호흡근이 이국적인 풍경을 만든다.

물가 근처에 놓인 작은 다리로 올라섰다. 금세 우거진 우림에 갇힌 듯 주변이 온통 초록이다. 잠시 서서 눈을 감았다. 멀리 인공폭포에서 나는 물소리가 들린다. 숨을 깊이 들이마시자 젖은 풀 내음과 흙냄새가 가슴에 가득 찬다. 수변을 둘러보면서 한참 걷는 새 양손이 무거워졌다. 두툼한 외투를 벗어 든 탓이다. 실내 온도는 그리 높진 않지만 습도가 높아 조금만 움직여도 몸이 달아오른다. 시린 바람 횡횡 불던 겨울이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소설 ‘어린 왕자’에 등장하는 바오바브나무는 단연 인기 있는 식물이다. 대전=김병진 기자

온실 한편에 마련된 공중산책로도 빼놓지 말아야 한다. 건물 2층 높이에 올라 밑을 내려다본다. 키가 10m 넘는 교목이 많아 밑에서 보는 풍광과 위에서 보는 풍광이 확연히 다르다. 유리천장에서 쏟아지는 햇빛을 받은 야자수 꼭대기가 별처럼 빛난다.

낯선 열대식물 천지인 곳이라 어디든 ‘포토존’이지만 가장 인기 있는 곳을 꼽자면 단연 바오바브나무가 있는 자리다. 프랑스의 소설가 생텍쥐페리가 쓴 ‘어린 왕자’에 나오는 나무로, 주말이면 줄 서서 사진을 찍어야 할 정도다. 어린 왕자 조형물이 있는 벤치에 앉아 목이 꺾어져라 고개를 쳐들었다. 흰 기둥을 따라 초록 이파리가 보인다. 늘씬하고 키가 큰 바오바브나무 아래 앉아 잠시 쉬었다.

본실 옆에 작은 열대화목원이 딸려 있다. 바나나·파파야 같은 열대과일나무가 가득하다. 녹음 짙은 본실과는 다른 분위기다. 김 연구사는 “어린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곳”이라면서 “파인애플이나 바나나 같은 과일이 어떤 나무에서 열리는지 배우면서 즐거워한다”고 전했다. 좋아하는 이가 비단 아이들뿐일까. 유실수 옆에 자리한 하와이안무궁화·칼리안드라·새우풀 등 알록달록한 꽃은 바쁜 일상에 지친 어른들을 위로하기에 충분하다.

한시간 남짓 열대식물원을 돌아보는 사이 추위에 굳은 어깨가 말랑말랑해졌다. 처진 기분은 한결 나아지고 자연의 색을 감상하면서 눈의 피로가 싹 가셨다. 이불 밖으로 나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 곳곳엔 겨울에도 초록을 감상할 만한 실내 명소가 적지 않다. 춥다고 움츠리지 말고, 겨울이 깊어질수록 소중해지는 초록을 만나러 떠나보자.

 
◇맹그로브=열대와 아열대 해변이나 하구 습지에서 자라는 나무를 통틀어 맹그로브라고 한다. 호흡근(사진)이라 부르는 뿌리로 호흡하는데, 여러 갈래가 수면 위로 나와 있는 모습이 마치 문어 다리 같다. ‘지구의 탄소 저장고’라고 불릴 만큼 중요한 자원이며 해양생태계의 보고로, 유엔(UN·국제연합) 유네스코에서 7월26일을 ‘국제 맹그로브 생태계 보존의 날’로 지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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