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기 신도시 천지개벽?…들썩들썩 하기엔 아직 이릅니다 [부동산 이기자]

이희수 기자(lee.heesoo@mk.co.kr) 2023. 12. 9.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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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이기자-17]
낡아가는 1기 신도시 재정비 위한
‘노후계획도시 특별법’ 한 눈에 보기
안전진단 면제·용적률 인센티브 눈길
“단지별로 혜택 다를 수 있어 주의”
서울 아파트 단지 전경 [사진출처=연합뉴스]
대한민국은 ‘아파트 공화국’으로 불립니다. 아파트에 대한 선호도가 높은데다 워낙 많기 때문입니다. 아파트가 본격적으로 지어지기 시작한 건 1980년대부터입니다. 1970년대 고도 성장기에 많은 인구가 수도권으로 몰리며 주택난이 심각해지자 아파트 개발 바람이 불었거든요. 1980년에는 아예 대단지 아파트를 공급하기 위한 택지개발촉진법도 만들어졌습니다.

그럼에도 주택난이 계속되자 노태우 정부는 1988년 대규모 주택건설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나섰습니다. 당시 주택 공급 목표치가 무려 200만호였습니다. 정부가 개발을 밀고 나간 결과 경기 성남 분당, 고양 일산, 군포 산본, 안양 평촌, 부천 중동에 새로운 도시가 속속 생겨났는데요. 이 도시들이 바로 1기 신도시입니다.

1기 신도시 특별법 나온 배경은?
1기 신도시는 주택 부족 문제를 해결하는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다만 너무 주택 위주로만 지어진 게 30여년이 지난 지금에는 또 다른 문제를 낳고 있죠. 자족기능이 없는 베드타운이 된 데다 주차난이 상당하고 편의시설도 부족한 탓입니다. 노후 단지 재건축 연한이 한꺼번에 도래하는 것도 풀어야 할 숙제입니다.

윤석열정부는 이에 지난해 ‘1기 신도시 특별법’을 만들겠다고 밝혔습니다. 재건축을 쉽게 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나선 겁니다. 올해 2월에는 특별법 초안도 내놓았습니다. 그런데 명칭이 ‘노후계획도시 특별법’으로 좀 달라졌습니다. 1980~1990년대 대규모로 조성된 주택 단지가 전국 곳곳에 있다 보니 “왜 1기 신도시만 특혜를 주냐”는 반발이 나왔기 때문입니다. 이로 인해 적용 대상 지역이 늘어나게 됐어요.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과 1기 신도시 관련 지방자치단체장들이 지난해 간담회를 개최했다. [이충우 기자]
노후계획도시 특별법 제정안은 지난달 국회 상임위원회 문턱을 넘었습니다. 12월 8일 국회 본회의 의결을 거치면 내년에 본격적으로 시행이 됩니다. 도대체 어떤 내용이 담겼기에 재건축 단지들의 관심이 높은지, 특별법의 주요 내용을 하나하나 뜯어보겠습니다.
‘노후계획도시 특별법’ 주요 내용은?
이 법은 조성된 지 20년이 넘는 100만㎡ 이상 택지를 대상으로 합니다. 1기 신도시뿐만 아니라 1980년대 대규모 아파트촌이 세워진 서울 양천구 목동, 강남구 수서, 노원구 상계·중계·하계, 도봉구 창동 등에도 적용될 수 있는 겁니다.

인접한 2개 이상 택지를 합친 면적이 100만㎡ 이상이어도 적용됩니다. 서울 강서구 가양과 등촌 택지지구를 합한 경우가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이런 조건을 갖춘 택지지구가 1기 신도시를 포함해 전국에 51곳 있다고 밝혔습니다.

법이 적용되는 지역에선 지방자치단체가 재건축 가이드라인으로 볼 수 있는 기본계획을 세우게 됩니다. 기본계획에 따라 대상지가 여러 블록으로 나뉘어져 특별정비구역으로 지정됩니다. 특별정비구역으로 정해지면 각종 지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특별정비구역 개발 예시도 [사진출처=국토교통부]
재건축 안전진단 면제가 대표적입니다. 안전진단 비용을 모금하는 데 길게는 수년이 걸린다는 점을 고려하면 상당한 혜택입니다. 사업성을 결정짓는 용적률을 완화하는 것도 큰 인센티브입니다. 공공성을 채우면 3종 일반주거지역이 준주거지역으로 용도가 오를 수 있는 겁니다. 법정 상한 용적률이 300%에서 500%로 뛰는 셈입니다.

원활한 사업 추진을 위해 각종 법령에서 요구하는 인허가도 한 번에 모아 처리합니다. 이를 위해 각 지자체에는 통합심의위원회가 구성될 예정입니다. 많은 재건축 단지가 한 번에 사업을 진행하는 경우 난개발이 될 수 있는데 이를 막기 위해 총괄사업관리자 제도도 도입했습니다. 총괄사업관리자가 사업의 모든 단계를 효율적으로 관리하도록 한 겁니다.

또한 정부와 지자체가 이주대책을 주도적으로 세워줍니다. 이 역시 그동안은 주로 조합의 몫이었습니다. 체계적인 이주 대책을 마련할 수 있어 재정비 과정에서 주택 시장에 미치는 불안이 적을 것으로 보입니다.

빠른 재건축 정말 가능할까?
하지만 세상에 공짜는 없습니다. 특별정비구역에 다양한 혜택이 집중되는 만큼 공공기여를 받아 갈 가능성이 높습니다. 공공주택이나 도로, 공원 등으로 기부채납을 받겠다는 게 정부의 기본적인 생각입니다. 지자체가 공공기여로 어떤 시설을, 얼마나 요구하느냐에 따라 주민 반발이 나올 수도 있는 겁니다.

특별법에 제시된 혜택이 모두에게 적용되는 것도 아닐 겁니다. 특히 ‘용적률 최대 500%까지 상향’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김제경 투미부동산컨설팅 소장은 “1기 신도시에는 용적률이 200% 가까이 되는 단지가 많다. 용적률 500%가 적용되면 인구가 2배 이상으로 늘어나는 것”이라며 “도시 인프라가 이를 견딜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경기 고양 일산 아파트 전경 [사진출처=연합뉴스]
기반시설 정비 없이 인구만 늘면 교통난과 일조권 침해 등 각종 문제가 생기겠죠. 이에 업계에선 역세권 위주로만 종상향 혜택을 줄 것이란 전망이 나옵니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용적률 상향 등의 인센티브가 단지별로 얼마나 적용되는지는 아직 정해진 게 없다. 막연하게 법만 통과되면 미래가 탄탄대로일 것이란 기대는 주의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높은 금리와 갈수록 오르는 공사비도 부담입니다. 이 연구위원은 “지금 정비업계의 관건은 조합원들의 자금 여력”이라며 “추가 공사비를 얼마까지 낼 수 있느냐가 사업을 좌우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송승현 도시와경제 대표 역시 “재건축 분담금이 전반적으로 커진 상황”이라며 “선뜻 돈을 내는 게 쉽지 않을 것”이라고 예측했습니다. 송 대표는 이어 “자족 기능을 얼마나 넣을 수 있는지도 현재로선 좀 의문이 든다”고 덧붙였습니다.

“10~20년 긴 호흡으로 바라봐야”
국토교통부와 1기 신도시 지자체들은 이미 재정비 기본방침과 기본계획을 각각 수립하고 있습니다. 보통 정부가 기본방침을 먼저 세우면 지자체가 이를 참고해 지역별 기본계획을 나중에 수립하는 것과는 사뭇 다릅니다.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기본방침과 기본계획이 동시에 수립되고 있습니다.
[사진출처=국토교통부]
정부는 내년 중 구체적인 기본방침을 발표하고 노후계획도시 가운데 가장 먼저 정비사업을 시행할 선도지구를 뽑을 계획입니다. 아무래도 기본방침이 먼저 나오는 1기 신도시 가운데서 지정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광역 단위로 재정비하는 최초의 시도인 만큼 새로운 개념의 도시계획을 주변에 확산할 수 있는 곳을 눈여겨 보고 있다고 합니다.

가령 미래 인구구조 변화와 4차 산업혁명, 기후변화 등을 담아내는 새로운 도시계획이 가능한가를 살필 예정입니다. 자족 기능과 함께 도심항공교통(UAM), 자율주행차, 로봇, 드론 등 첨단산업을 구현할 곳을 선도지구로 정한다는 겁니다. 선도지구 개수는 아직 구체적으로 정해진 바가 없습니다. 여러 도시에서 동시에 진행될 수도 있죠.

경기 성남 분당 아파트 전경 [사진 출처=연합뉴스]
이를 고려하면 짧게는 10년, 길게는 20년 이상 긴 호흡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제 시작이라 남겨둔 절차가 많기도 합니다. 기본방침, 기본계획 선정 이후에도 조합설립인가, 사업시행계획인가, 관리처분계획인가 등 인허가 절차가 줄줄이 있습니다.

2026년 지자체장 선거와 2027년 대선도 변수입니다. 특별법이 제대로 적용되기 전에 득표 전략을 앞세운 각종 공약으로 법이 흔들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형평성 논란과 부동산 시장 과열 등 부작용이 생기면 속도 조절론도 나오겠지요. 결국 단기 수익에 급급한 투자 전략은 성공하기 어렵다는 것을 명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부동산 이기자는 도시와 부동산 이야기를 최대한 쉽게 풀어주는 연재 기사입니다. 어려운 용어 때문에 생긴 진입 장벽, 한번 ‘이겨보자’는 의미를 담았습니다. 초보 투자자도 이해할 수 있게 기초부터 차근차근 다루겠습니다. 기자페이지를 구독하시면 더욱 다양한 소식을 접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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