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판 獨 가격공세·음해 이겨냈다...‘레드백’ 호주 수출, 피말랐던 4개월

노석조 기자 2023. 12. 9. 06:46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노석조의 외설]
한화는 어떻게 전차 군단 독일을 꺾었나
한화 직원들이 털어놓은 수출 뒷이야기

뉴스레터 ‘외설(外說)’ 구독하기 ☞ https://page.stibee.com/subscriptions/275744

지난 7월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궤도형 보병전투 장갑차 ‘레드백’은 호주 육군의 역대 최대 규모 획득 사업인 ‘랜드 400′ 3단계 사업의 ‘우선협상대상자’에 선정됐습니다. 당시 많은 언론이 ‘다 된 것’처럼 샴페인을 터뜨리는 기사를 쏟아냈습니다.

전차·장갑차 강국인 독일의 방산업체인 라인메탈의 장갑차 ‘링스’를 일단 제치고 유리한 고지에 오른 건 사실이니 기뻐할 일은 맞았습니다.

하지만 진짜 수주 전쟁은 이때부터 펼쳐졌다고 합니다. 한화에어로 관계자들이 지난 8일 호주와 3조 1500억원 규모의 레드백 129대 계약이 최종 체결했다고 발표된 이후에야 사석에서 마음 편히 털어놓은 이야기입니다. 그 스토리를 전하고자 합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레드백(왼쪽)과 독일 라인메탈사의 링스(오른쪽) 장갑차. /각 사 제공

한화에어로와 수주전에 참여한 정부 관계자 등에 따르면, 라인메탈은 ‘독거미(레드백)’ 이 자신들의 ‘스라소니(링스)’를 누르고 우선협상대상이 되자 전방위적인 로비전을 펴며 대(大)역전극을 시도했다고 합니다. 한화에어로와 호주의 협상 과정에서 서로 제시한 목표치가 맞지 않으면 언제든 결렬될 수 있었습니다.

이에 라인메탈은 호주 측에 “링스를 선택해라. 레드백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에 제공해주겠다”며 가격 경쟁력을 내세웠습니다. 천하의 방산 강국 독일이 한국 장갑차를 상대로 성능이 아닌 가격 우위로 승부를 보려 한 것입니다.

라인메탈의 ‘작품’인지는 확인이 되지 않습니다. 아니길 바라지만, 호주 방산업계와 호주군 안팎에서는 갑자기 “레드백 성능이 검증되지 않았다” “한화가 계획대로 사업을 완수하지 못할 것이다”는 악성 루머가 돌았다고 합니다. 한화에어로는 지난 2010년 호주 육군 자주포 사업 우선협상대상 장비로 K-9자주포가 선정돼 기뻐했다가 2년 만인 2012년 갑자기 협상이 갑자기 중단되는 ‘악몽’이 있었습니다.

이번에 또 그런 악몽이 재현되지 말라는 법이 없었습니다. 경쟁 상대는 독일이었습니다. 지난해 5월 호주 정권이 자유당·국민당 연합에서 노동당으로 교체된 상황도 협상을 어렵게 했습니다. 노동당 정부는 이 사업 규모를 아예 줄이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이로 인해 실제 예상한 것보다 레드백 공급 대수는 많이 줄어들었고, 그래서 타결된 게 129대라고 합니다.

‘한화’의 국제적 인지도가 상대적으로 낮고 영어로 발음하기가 어려워 ‘한화’를 중국 업체 ‘화웨이’로 잘못 아는 일도 벌어졌다고 합니다. 화웨이는 미국, 호주 등에서 ‘스파이 장비를 운용해 미 동맹국의 안보에 위협이 되는 업체’라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었습니다.

한화에어로 관계자는 “지난 7월 우선협상대상으로 선정됐을 때 겉으로는 웃었지만, 이후 4개월간 속으로는 협상이 결렬될까 마음 졸이는 나날이 계속됐었다”고 말했습니다. 독일은 최근 폴란드 등 다른 수주전에서도 K방산에 밀렸던 만큼 이번 ‘호주 대첩’에서는 어떻게든 이기려 했다고 합니다.

분위기 반전은 이런 상황을 파악한 정부가 국가안보실을 중심으로 국방부, 외교부, 국정원, 그리고 육군까지 나서 대대적인 판세 굳히기 작전에 돌입하면서 이뤄졌다고 합니다.

현 정부 들어 호주가 포함된 오커스, 쿼드 등 안보 협력체와 협력을 강조하는 정책을 편 것도 협상 과정에서 힘 있는 카드로 활용됐습니다. 특히 육군은 호주 육군에 접촉해 레드백의 강점을 어필하고 양국 간 군사 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측면 지원을 했습니다. 선정 과정에서 직접 운용할 호주 육군의 의견이 결정적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국방부 관계자는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이후에도 정부는 리처드 말스 부총리 겸 국방 장관, 팻 콘로이 방위산업 장관 등 호주 주요 인사와 깊은 신뢰 관계를 구축하고 계약 체결을 적극 지원했다”고 전했습니다.

무엇보다 한화에어로가 호주 수출을 목표로 최초 기획 단계부터 호주군 요구를 최대한 반영해 개발된 ‘맞춤형 장갑차’라는 것이 호주의 마음을 샀다고 합니다. 레드백 탑승 인원은 승무원 3명, 보병 8명으로, 최고 속도는 시속 65㎞, 항속 거리는 500km 이상입니다. 1000마력급 K9 파워팩(엔진+변속기)이 적용됐습니다. 30mm 주포, 대전차미사일, 12.7mm 원격 사격 통제 체계(RCWS)로 무장했습니다.

호주에 서식하는 맹독성 거미인 '붉은등 과부거미(Redback spider)'. 레드백은 특히 호주라는 특정한 해외 국가로 수출하는 것을 목표로 삼아 최초 기획 단계부터 설계, 공급 계획까지 ‘특정국 맞춤형’으로 진행한 첫 사례다. 새로운 형태의 ‘K방산 수출 시스템’을 시도해 성공한 것이다. 레드백이란 이름도 호주에 서식하는 맹독성 거미인 ‘붉은등과부거미(Redback spider)’에서 따왔다. 이 거미는 거미줄이란 ‘네트워크’를 활용해 뱀은 물론 자신보다 수배 큰 동물도 잡아먹는 세계에서 가장 강한 독거미 중 하나다. 이에 한화에어로는 전차와 ‘네트워크’를 구성해 적진을 누비는 강력한 장갑차란 이미지를 심어주려고 이런 작명 아이디어를 냈다고 한다. 앞서 수출한 K-9 자주포의 호주형 이름인 ‘AS9 헌츠맨(Huntsman)’도 거미줄을 치지 않고 사냥하는 현지 거미 이름이어서, 이번 레드백과 이름 면에서 잘 어울린다. 반면 경쟁 대상인 ‘링스’는 유라시아 지역 고양잇과 동물인 스라소니의 영문명이다.

전투기에 적용되는 최첨단 센서와 레이더(AESA), 차량 내부에서 특수 헬멧을 쓰면 고글 화면을 통해 전차 외부 360도 전 방향을 감시할 수 있는 기능 등을 탑재했습니다. 모두 한국군 장갑차에는 없는 기능입니다. 라인메탈은 가격 경쟁력을 앞세웠는데, 호주가 결국 더 비싼 레드백을 택했다는 건 레드백의 ‘성능’이 라인메탈의 ‘링스’보다 우수하다는 걸 말해줍니다.

한화에어로는 이번 계약에 따라 호주 빅토리아주 질롱시에 K9 자주포 생산을 위해 건설중인 H-ACE 공장에서 2028년까지 129대의 레드백 장갑차를 생산해 순차적으로 공급할 계획이라고 했습니다.

방산업계 관계자는 “영미권 정보 공동체인 파이브 아이스(미국·영국·캐나다·호주·뉴질랜드) 회원국 중 한 곳인 호주에 또 한 번 K방산이 진출하면서, 다른 자유민주 진영 동맹국에 대한 방산 수출에도 ‘그린 라이트’가 켜졌다”고 말했습니다.

재미교포 강춘강씨. /일러스트=이철원

지난달 1970년 국방과학연구소(ADD) 창립 멤버였던 재미교포 강춘강(80)씨가 K방산 수출 소식을 듣고 감동해 평생 모은 연금 저축 100만 달러 전액을 ADD에 기부한 소식이 전해졌는데요. 이런 가운데 레드백 수출로 K방산이 ‘오커스(AUKUS·미국, 영국, 호주 안보 동맹)’라는 선진 시장에까지 본격적으로 진입하게 돼 더욱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내년에도 K방산이 약진(躍進)하길 기대하고 응원합니다.

☞뉴스레터 ‘외설(外說)’은

미번역 외서(外書)를 읽거나, 취재해놓고 신문에 미처 담기지 못한 각종 뉴스의 뒷이야기[說]를 들려 드리는 조선일보의 뉴스레터입니다. 일주일에 최소 1번(매주 수요일) 외설을 전하고 있습니다.

휴대폰으로 간단하게 받아보시려면 https://page.stibee.com/subscriptions/275744 로들어가셔서 이메일을 남겨주시거나 제 이메일 stonebird@chosun.com이나 휴대폰번호 010-2922-0913에 여러분의 이메일 주소를 남겨주세요. 뉴스레터 ‘노석조의 외설’을 보내드리겠습니다.

◇지난 ‘외설’ 다시 보기

●‘방울 성직자’는 무슨 책 읽나? 美 베셀 ‘그녀 목소리’ 강추

https://www.chosun.com/politics/politics_general/2023/12/06/2BJCVGXU65CGRA2XDJ4A4RAORE/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