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나무에 마음을 뺏긴 뒤로 [반려인의 오후]

안희제 2023. 12. 9. 0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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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은 2019년 가을이었다.

그날 나는 처음 본 작은 나무들에 마음을 홀랑 빼앗겼고, 한 손바닥 안에 거대한 자연을 올려둔 것만 같은 기분을 느끼며 나무들을 집에 들였다.

자갈처럼 생긴 흙 사이사이로 빈약하게 뿌리를 내린 분재와, 고운 흙에 단단히 자리 잡은 나무들까지.

그때 들인 나무 중 남아 있는 것은 그리 많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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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이 되는 동무’. 반려라는 단어에 담긴 의미입니다. 고양이, 개, 식물 등 짝을 이뤄 함께 살아가는 반려인들의 단상을 담았습니다.
“무엇이 식물들과 함께 잘 사는 것일까? 여전히 모르겠다.” ⓒ안희제 제공

시작은 2019년 가을이었다. 아버지는 몸이 아주 아팠던 나에게 기분 전환을 시켜준다며 서오릉 화훼단지로 갔다. 그날 나는 처음 본 작은 나무들에 마음을 홀랑 빼앗겼고, 한 손바닥 안에 거대한 자연을 올려둔 것만 같은 기분을 느끼며 나무들을 집에 들였다. 자갈처럼 생긴 흙 사이사이로 빈약하게 뿌리를 내린 분재와, 고운 흙에 단단히 자리 잡은 나무들까지.

그때 들인 나무 중 남아 있는 것은 그리 많지 않다. 아니, 몇 개 없다. 식물과 함께한 시간 중에서 어떤 날은 과도하게 그것들을 걱정하며 돌봤고, 어떤 날은 같이 살지도 않는 것처럼 소홀하게 지나쳤다. 과도한 걱정과 돌봄은 때로 과도한 물주기 즉 과습이나 과도한 비료 즉 과비로 이어졌고, 소홀함은 바싹 마른 흙과 누렇게 변한 이파리 끝으로 이어졌다. 땅이 아니라 화분에 사는 식물은 생각보다 취약하고, 때로 하룻밤 만에 갑자기 세상을 떠나기도 했다.

무엇이 식물과 함께 잘 사는 것일까? 반려식물에 대해 적지 않은 글들을 써왔지만, 여전히 모르겠다. 다만 하나 마나 한 이야기, 무엇이든 적당해야 한다는 것뿐. 관심도, 물도, 비료도, 환기도 적당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그 적당함이란 흙과 화분과 그 집의 환경과 반려 인간의 생활 패턴까지도 얽힌 채 만들어지는 하나의 조건이며, 나보다 취약한 존재와 함께 살기 위해 섬세히 응답해야 한다는 책임이자 윤리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렇게 글을 쓰는 오늘도, 나는 2년째 함께해온 바질이 조금씩 죽어가는 걸 보았다. 비료를 너무 많이 준 것일까? 아니면 화분이 작은 걸까? 그러나 그것은 바질에게 내어줄 수 있는 가장 큰 화분이고, 집에는 더 큰 화분을 들일 수 없는데. 처음으로 겨울을 함께 보낸 바질은 1년 동안 천천히 우리 곁을 떠나고 있다. 그 옆에서는 친구에게 선물받은 이탈리아 출신 바질 씨앗들이 싹을 틔우고 그새 꽤 자라났다.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대학교 3학년 때까지 함께한 강아지를 떠나보내고 나서, 나는 몇 달 동안 고개를 45도쯤 숙이고 문턱을 살피고, 혹시나 그 아이가 금세 싼 오줌이 있지는 않은지 조심하며 걸었다. 대학원 졸업을 준비하고 있는 지금까지도, 우리는 우리보다 일찍 죽는 동물을 집에 들이지 못했다. 식물은 다르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식물의 촉감도, 식물의 모습도, 마음속에 쌓인다는 사실을 시간이 갈수록 알아간다. 이래서 내가 식물들과 산 지 몇 년이 지난 지금도 초보인가 싶지만.

이제 더 이상 분재를 집에 들이지 않기로 했다. 분재 자체에 반대할 생각은 없지만, 아무래도 분재는 우리 가족에게는 맞지 않는 것 같다. 아름다움과 연약함을 일정하게 유지하도록 하면서 분재를 관리하는 일보다 오래오래 줄기가 굵어지고 가지를 뻗어낼 수 있게 식물을 돌보는 일이 더 좋다. 식물을 집에 들인 이상 이미 사람 손에 길들기 시작하는 것이지만, 그럼에도 그 사이에서 예상치 못한 모습으로 자라나는 걸 보고 싶다.

나무들과 사랑에 빠진 첫날에 데려온 파키라는 곧 나보다 키가 커질 것 같다. 지금도 우리 집의 거실을 지키고 새잎을 틔워내고 있다. 우리 가족은 종종 그 잎을 쓰다듬는다. 그의 별명은 수호신이다. 누가 누구를 돌보는 것인지 알 수 없다. 그렇게 오래오래 함께하고 싶다.

안희제 (작가)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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