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세금으로 소맥 49병 ‘폭음 회식’… 카드 영수증 조작으로 은폐
지난해 6월, 당시 김형근 인천지방검찰청 부천지청장과 검찰 직원들이 국민 세금인 업무추진비로 ‘음주 회식’을 벌인 뒤, 업무추진비 카드 영수증의 구매 내역을 조작해 이를 은폐한 것으로 확인됐다. 문제의 회식 자리에서 김형근 지청장과 검찰 직원들이 세금으로 마신 술의 양은 소주와 맥주를 합해 모두 49병이다.
뉴스타파 등 9개 언론·시민단체의 협업체인 <검찰예산검증 공동취재단(이하 공동취재단)>에 참여 중인 인천·경기지역 독립언론 ‘뉴스하다’가 당시 부천지청의 회식비 카드 영수증 원본을 확보했고, 이를 통해 검찰의 업무추진비 영수증 조작 사실이 드러났다.
검찰, 카드 영수증 조작… 소주·맥주 49병 ‘세금 술 파티’ 은폐
애초 부천지청이 결제한 회식비 카드 영수증 원본에는 소주 15병, 맥주 34병 등의 술을 마신 내역이 기재돼 있었다. 그런데 부천지청은 회식비 영수증을 재발행하는 수법으로 소주와 맥주 49병을 마신 내역을 통째로 없애고, 술 없이 고기만 먹은 것처럼 업무추진비 영수증을 조작했다.
또한 공동취재단의 취재 결과, 부천지청은 이날 ‘음주 회식’ 비용이 50만 원을 넘자, 48만 원과 23만 3천 원으로 금액을 쪼갠 뒤, 두 장의 카드로 ‘분할 결제’까지 했다. 이런 ‘금액 쪼개기’와 ‘카드 쪼개기’ 행위는 검찰 내부에서도 ‘예산 집행 매뉴얼’을 통해 업무추진비 부적정 사용 사례로 분류하고 있다.
공동취재단, 부천지청 업무추진비 ‘카드 영수증 원본’ 첫 입수
지난해 6월 28일, 김형근 부천지청장은 인사 발령이 나 서울고등검찰청으로 떠나기 전 검찰 직원들과 저녁 회식을 가졌다. 장소는 부천 시내의 한 스페인 흑돼지 구이점이었다. 회식비는 검찰 업무추진비에서 집행됐다.
공동취재단은 이날 부천지청이 회식비로 결제한 ‘카드 영수증 원본’을 입수했다. 이 영수증 원본에는 부천지청이 먹칠로 숨기고자 했던 정보, 즉, 지청장과 검사들이 세금으로 회식을 하면서 뭘, 얼마나 먹고 마셨는지 상세 내역이 숨김없이 나온다.
부천지청, 국민 세금으로 소주 15병, 맥주 34병 ‘폭음 회식’
이날 회식비로는 모두 71만 3천 원이 나왔다. 당시 김형근 지청장과 검찰 직원들은 스페인 흑돼지 특수부위 21인분, 스페인 흑돼지 목살 5인분, 가브리살 1인분, 그리고 간장계란밥 3개, 비빔냉면 4개, 라면 5개 등을 먹었다.
특히 영수증 원본에서는 당시 이들이 술을 얼마나 먹었는지도 상세히 나오는데, 소주 15병과 맥주 34병 등 무려 50병에 이르는 ‘소맥’을 섞어 마셨다. 저녁을 먹으며 간단히 ‘반주’를 한 게 아니라 ‘폭음’ 수준의 음주를 한 것이다. 다만 몇 명이 이 같은 ‘폭음 회식’에 참석했는지는 정확히 확인되지 않고 있다.
검찰의 ‘세금 술 파티’ 은폐 수법① ‘금액 쪼개기’ 결제
이날 회식은 밤에 끝났다. 부천지청은 밤 9시 44분, 회식비를 카드로 긁었다가 갑자기 결제를 취소했다. 다 이유가 있었다.
뉴스타파가 확보한 검찰의 예산 집행 매뉴얼에서 ‘업무추진비 운영 및 지도 감독 유의 사항’을 보면, 한 건에 50만 원이 넘는 업무추진비를 쓸 때는 참석자의 소속과 성명을 적어 제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공직자들이 회식비 등에 무분별하게 세금을 오남용하지 못 하도록 막는 최소한의 장치다.
그런데 이날 회식비는 71만 3천 원으로 50만 원을 훌쩍 넘겼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부천지청은 어떻게 했을까. 내부 매뉴얼대로 회식에 참석한 사람의 소속과 성명 등 명단을 작성해 제출했을까.
부천지청이 회식비 71만 3천 원의 결제를 취소한 시각은 밤 9시 44분이다. 1분 뒤인 밤 9시 45분, 부천지청은 48만 원을 결제한다. 그리고 25초 뒤 나머지 23만 3천 원을 추가로 결제했다.
71만 3천 원을 48만 원과 23만 3천 원, 이렇게 두 건으로 나눠 결제하면, 회식비는 검찰의 예산 집행 매뉴얼상 참석자 명단을 작성하지 않아도 되는 기준 금액 50만 원 밑으로 떨어진다.
부천지청은 매뉴얼을 준수하는 대신 이른바 ‘금액 쪼개기’ 결제를 했다. ‘금액 쪼개기’ 결제는 검찰의 예산 집행 매뉴얼에서도 금하고 있는 대표적인 ‘예산 부적정 사용’ 사례다.
검찰의 ‘세금 술 파티’ 은폐 수법② ‘카드 쪼개기’ 결제
부천지청은 이 같은 예산 부적정 집행 사실을 더욱 교묘한 수법을 동원해 감추려 했다. 회식비를 둘로 쪼갠 데 이어, 각각의 비용을 두 개의 카드로 결제했다. ‘금액 쪼개기’에서 한발 더 나아가 ‘카드 쪼개기’까지 벌인 것이다.
이날 부천지청은 48만 원을 카드번호 맨 뒷자리가 2인 카드로 결제하고, 나머지 23만 3천 원은 카드번호 끝자리가 5인 카드로 결제했다. 왜 굳이 번거롭게 두 장의 카드로 결제한 걸까.
한 장의 카드로 ‘금액 쪼개기’ 결제를 하면 내부 감사 등에서 적발될 가능성이 높다. 카드 결제 내역을 보면, 단번에 같은 식당에서 48만 원, 23만 3천 원을 연이어 쓴 사실이 들통난다.
하지만 두 장의 카드로 금액을 쪼개 결제할 경우, 적발은 그만큼 힘들다. ‘금액 쪼개기’ 결제를 밝혀내기 위해서는 두 개의 카드 결제 내역을 교차해 가며 결제 장소과 결제 시간, 결제 금액 등을 일일이 맞춰봐야 하기 때문이다.
검찰의 ‘세금 술 파티’ 은폐 수법③ 영수증 조작
부천지청은 부정행위를 멈추지 않았다. 카드 영수증 조작까지 감행했다.
회식 자리에서 김형근 지청장과 검찰 직원들은 실제로는 돼지고기 26인분을 먹고, 소주 15병과 맥주 34병을 마셨다. 그런데 부천지청은 최초의 카드 결제를 취소하고 쪼개기 결제를 한 뒤 다시 영수증을 발행하면서 술 구매 내역을 완전히 삭제했다. 재발행된 영수증을 보면, 술 없이 오직, ‘삼겹살 50인분’과 ‘대파장아찌’만 먹은 것처럼 거짓으로 꾸며져 있다.
검찰이 다름 아닌 카드 영수증을 조작해 국민 세금인 업무추진비로 ‘음주 회식’을 벌인 사실을 은폐한 것이다.
검찰의 ‘세금 술 파티’ 은폐 수법④ 대국민 거짓말
심각한 문제는 또 있다.
세금을 낸 주권자의 알권리 보장을 위해 여느 공직자와 마찬가지로 고위 검사도, 자신이 쓴 업무추진비의 내역을 홈페이지에 의무적으로 공개해야 한다. 부천지청도 홈페이지에 부천지청장의 업무추진비 집행내역을 분기별로 자진해서 게시하고 있다.
2022년 2분기, 김형근 지청장의 업무추진비 집행내역에서 ‘2022년 6월 28일, 음주 회식’의 내역을 확인해봤다. 그런데 업무추진비 집행내역에는 48만 원으로 수사관들과 간담회를 진행한 것으로만 공표돼 있다. 세금 71만 3천 원을 써가며 49병의 술을 마신 흔적은 어디에도 없다.
부천지청이 홈페이지에 공개하는 기관장의 업무추진비 집행 내역도 일종의 공문서에 속한다. 그렇다면 부천지청은 자신들의 ‘음주 회식’을 숨긴, 허위로 조작한 공문서를 국민에게 공표했다는 비판까지 받을 수밖에 없다.
뉴스타파가 잇따라 폭로하고 있는 검찰의 세금 부정 사용과 오남용 의혹 보도를 두고, 한동훈 법무부 장관과 이원석 검찰총장은 ‘뉴스타파가 근거 없는 주장을 통해 검찰을 부패한 집단으로 매도하고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지금 근거는 뉴스타파의 뇌피셜 뿐이잖아요?
- 한동훈 법무부 장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 2023.8.21.)
검찰 집단이 그렇게 부패한 집단인 것처럼 이야기하면 저도 정나미가 떨어져서 여기서 내가 왜 밤새워서 주말에 나와서 일하고 있는지 하는 생각이 들 것 같습니다.
- 이원석 검찰총장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 2023.10.23.)
그러나 김형근 부천지청장의 ‘음주 회식’을 은폐하려고 업무추진비 영수증을 조작한 사실이 밝혀진 상황에서 지금까지 검찰이 주권자에게 공개해 온 예산 자료의 진실성도, 그동안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이 국민 앞에 내놨던 해명도, 모두 믿기 힘든 상황이 됐다.
● 뉴스타파 <검찰 예산 검증 프로젝트>
● 검찰 예산 데이터 공개 특별 페이지 <전국 67개 검찰의 금고를 열다>
● 독립언론 ‘뉴스하다’ 홈페이지
뉴스타파 임선응 ise@newstap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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