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섬산로드] 질풍노도의 바다에 울리는 기묘한 여인 노랫 소리

신준범 2023. 12. 8. 0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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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적도 비조봉과 소야도 왕재산 1박2일 르포
소야반도의 끝, 막끝단에 닿자 질풍노도의 바다가 기다리고 있었다. 사나운 바다와 달리 노을은 신비로울 정도로 감미로워 떠나기가 아쉬웠다.

나라의 수도가 서울이라면, 낭만의 수도는 덕적도德積島다. 덕적도는 한 권의 시집詩集이다. 20개가 넘는 해변은 저마다 다른 운율을 가지고 있어, 해변을 걷는 것만으로 사람이 고요해진다. 산은 부드럽지만 힘이 있어 능선을 따라 걸으면, 몸과 마음이 격정적으로 끓어오른다.

능선마다 산길이 있고 해안선마다 오솔길이 있어, 여행자는 예측할 수 없는 줄거리 속으로 빨려들게 된다. 걸어도 걸어도 끝없는 서정의 극치를 음미하게 되는 것. 시집의 첫 장을 열었다.

누군가 덕적도를 그리워하는 게 분명했다. 하늘은 물감 같은 파랑이고, 바다는 서해라 믿기지 않을 만큼 투명하고, 바람은 깨끗했다. 막강하지만 악의 없이 뭉툭하게 다가오는 맑은 바람. 덕적을 그리워하는 누군가의 마음이 투명한 손으로 섬을 어루만지고 있었다.

북리의 기념사진 명소인 방파제 등대. 경희대 산악부 정상희·김민교씨의 얼굴에서 덕적도를 처음 찾은 설렘이 묻어난다.

배에서 내린 사람 몇은 집으로 가고, 큰 배낭 멘 몇은 굴업도행 배를 타러 가고, 덩그러니 남은 청년과 떠나는 배를 마중했다. 경희대 산악부 재학생 정상희·김민교씨와 함께다. 고양이는 좋은 사람을 구분하는 법을 알고 있는 걸까. 두 사람 다리를 꼬리로 슬며시 건드리고 가는 느긋한 여운.

수평선에 비벼 먹는 북리 돈까스

가보지 않은 해변으로 차를 몰았다. 섬을 대표하는 명소인 서포리해변과 소야도 때뿌루해변은 이전에 와서 보았으니, 숨은 풍경을 찾기로 했다. 처음은 수줍은 바다였다. 이개해변은 감추고 싶어했다. 모래도 갯벌도 바다도 하나씩 허락했다.

여객선이 닿지 않는 북리항은 한적하지만 아기자기한 분위기의 어촌이다

바다가 빠져나간 모래 언덕을 올라서자 비로소 드러나는 속내. 툭 튀어나온 목섬 사이에 액자처럼 바다가 놓여 있었다. 좁은 입구와 달리 갯벌은 넓었고, 굽은 할머니 홀로 조개를 캐고 있었다. "끼룩 끼룩" 울리는 갈매기 소리가 해변을 메우고 있었다.

차를 몰아 고갯길을 넘자 북쪽에 있다는 북리였다. 식당, 경찰서, 방파제가 잘 되어 있으나 여객선이 닿지 않는 항구는 잠을 자고 있었다. 방파제 끝에 선 붉은색 등대가 눈에 띄었다. 방파제를 따라 등대를 향해 걸었다. 질풍노도의 바람 소리가 들렸다. 바람이 소사나무숲을 뒤흔들고, 어쩔 줄 몰라 "쏴아"하며 쏟아내는 마음. 윤동주 시인 말이 덕적도에선 사실이었다. 나무가 춤을 추기에 바람이 불고 있었다.

소야도 모세의 기적 길. 소야도~갓섬~간뎃섬~물푸레섬을 잇는다. 썰물이면 간뎃섬과 물푸레섬을 걸어서 갈 수 있다.

북리 맛집으로 꼽히는 식당에서 돈까스를 먹었다. 먼 섬까지 와서 먹는 음식이 돈까스라니, 어울리지 않았으나 주민으로 보이는 손님 대부분 돈까스를 먹고 있었다. 수평선을 보며 횟집 같은 식당에서 씹는 돈까스 맛, 평범했다. 다만 수평선 풍경에 버무려진 돼지고기 식감은 몇 달이 지나도 잊기 어려울 것 같다.

소야도로 갔다. 다리가 이어져 있어 덕적도의 부속 섬으로 여겨지지만, 독특한 해안선 경치는 덕적도와 구분되는 면이 있다. 옹진군에서는 '소야 9경'을 선정했는데 그중 백미는 모세의 기적이다. 썰물에 갈 수 있는 섬은 전국에 10곳이 넘는데, 3개의 섬이 연달아 이어지는 곳은 이곳뿐이다.

제방을 따라 갓섬으로 들었다. 방파제 뒤에 간뎃섬과 물푸레섬이 있었다. 미인의 목선처럼 매끄럽게 모래사장이 이어졌다. 간뎃섬은 가운데 섬이라는 뜻이라 한다. 할머니들이 곳곳에서 무언가 캐고 있었다. 여쭤 보니 굴을 캐고 있단다. 물 들어오기 전에 서둘러야 한다며, "이렇게 멀리서들 찾아올 정도로 좋은 곳"이라 한다. 은연중 섬에 대한 애정이 깔려 있었다.

하늘에서 본 간뎃섬(사진 왼쪽). 밀물이 들면 흰 조개껍질 길이 바다에 잠긴다.

스산한 여인 소리 나는 막끝단섬

모래인 줄 알았던 흰 해변은 흰 조개였다. "부스럭" 소리를 내며 걷는 길이 독특하고 잔재미가 있었다. 덕적도 앞바다는 뱃길이었다. 축구장 크기의 유조선, 컨테이너선이 쉬지 않고 배경이 되었다. 수석처럼 솟은 바위의 향연을 지나 다시 기린의 목 같은 해변이 이어졌다. 송곳여였다. 섬도 아닌 바다도 아닌, 잠겼다 드러났다 하는 암초에 가까운 땅을 그리 불렀다. 창부섬이 수석처럼 솟아오르고, 바다가 돌아오고 있었다. 물푸레섬에는 막상 물푸레나무가 보이지 않았다. 이미 잎을 떨궈 보이지 않는지도 모른다. 돌아가는 길, 눈이 아릴 정도로 반짝이는 물결이 해변을 삼키고 있었다.

때뿌루해변으로 가는 길의 고개에서 산행을 시작한다. 왕재산(143m)에 올랐다가 능선을 타고 소야반도 끝까지 갈 계획이다. 가보지 않은 능선에 대한 기대감과 섬 끝에서 만날 그림에 대한 호기심에 걸음이 경쾌했다. 산길 초입을 가려내자, 이후는 편했다. 예상보다 산길이 뚜렷해 마음이 놓였다. 푹신한 오솔길은 낮은 산답지 않은 중후한 숲향을 머금고 있어, 여행자 특유의 경직된 근육이 슬그머니 풀리고 있었다.

파키스탄의 험산 줄기를 축소해 놓은 것 같은 간뎃섬 부근의 암초. 바닷물이 서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맑다.

희미한 능선길의 단서를 붙잡았다. 선명한 둘레길을 두고 불편한 능선을 따라야 마음이 편한 건 산꾼의 숙명인 듯했다. 덤불의 기세가 한결 꺾인 계절이라 어렵지는 않았으나, 나름 깔딱고개가 있어 100m대 산의 호통을 듣는 듯했다. 정상인 줄 알았으나 다음 봉우리가 정상이었다. 고도를 살짝 내렸다 올라치자, 묵은 땀을 시원하게 날려버리는 왕재산 정상 팔각정이다.

비로소 베일을 벗는 끄트머리 경치. 바다를 처음 본 산골 소년마냥 거대하게 다가오는 절대적 풍경. 소이작·대이작·승봉도가 하나의 섬처럼 겹쳐서 바다의 산처럼 일어나고, 1000년 전에도 지금도 같은 풍경이었을 아늑한 정상의 시간. 앞으로 한 달 동안 아무도 오지 않을 것 같은 외진 산을 두고, 간신히 떠났다.

왕재산을 오르는 정상희·김민교씨. 왕재산은 소야도에서 가장 경치가 좋은 전망터다. 팔각정이 있어 쉼터로 제격이다.

내리막 끝에 전망대가 있었다. 소야반도 끝에는 삼각형 데크가 있었다. 바로 앞에 막끝딴섬이었다. "훵~ 훵~"하는 기묘한 소리가 났다. 여인의 흥얼거리는 소리 같은 이상한 소리의 정체는 데크였다. 바닥과 데크 사이의 틈으로 센 바람이 지나며 나는 소리였다. 데크가 나팔수 역할을 하는 셈인데, 소리가 기묘해 스산한 느낌이었다.

날씨도 한몫했다. 간간이 3~4m씩 파도가 폭발하며 힘자랑을 하고, 재킷을 껴입어도 발을 동동거리게 되는 강풍이 바다를 들었다 놨다했다. 전쟁 같은 날씨 속에 노을은 곱디 고와서, 햇볕이 레이저처럼 어느 한 수면을 비추고 있었다. 말수 적은 늙은 어부는 저 바다에 가면 어디로 이어질지 알고 있을 것 같았다.

해양 쓰레기 하나 없이 깨끗한 서포리해수욕장. 1km에 이르는 큰 해변은 사람이 거의 없이 조용했다.

둘레길 따라 3km를 걸었다. 생각났다는 듯 어둠이 찾아왔으나 두렵지 않았다. 당나라 장수 소정방이 진을 쳤다는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소야도蘇爺島 이름이 소정방에게서 유래했다는 설과 섬이 하늘을 나는 새 모양이라 해서 새곳섬이라 부르던 것을 한자로 바꾸면서 그리되었다는 설이 있다.

화장실과 개수대가 있는 서포리해변으로 갔다. 먼저 불을 밝힌 몇 동의 텐트가 있어 안심되었다. 바람이 사나웠으나 조촐한 저녁은 아늑했다. 허기가 가시자 텐트를 두드리는 바람도 파도 소리도 자장가가 되었다. 별은 쏟아지지 않았지만 잠은 깊게 쏟아졌다.

날아갈 듯한 산세의 정점, 비조봉

이중환이 얘기한 아침이었다. 조선의 실학자인 그는 <택리지>에서 덕적도를 '바닷가는 모두 흰 모래밭이고, 가끔 해당화가 모래를 뚫고 올라와 빨갛게 핀다. 비록 바다 가운데 있는 섬이라도 참으로 선경이다'라고 표현했다. 오늘 해당화는 없지만 300년 전 사람의 말에 공감이 갔다. 고요로 넘치는 관대한 해변의 침묵은 아늑한 이불 같아서, 모든 걸 덮어주었다.

비조봉 산길에 들자 잠이 달아났다. 시작부터 고도를 높이며 제대로 정신이 들게 했다. 섬산답지 않게 숲이 의외로 다채롭다. 소나무, 두충나무, 팥배나무, 밤나무, 생강나무, 소사나무, 상수리나무, 누리장나무가 어우러져 식생이 다양하다.

거센 바람이 부는 날씨에도 아무렇지 않게 산행과 여행을 즐긴 경희대 산악부원들. 정상희씨.
강원도 홍천이 고향인 김민교씨.

150m 넘게 고도를 높이자 후덕한 인심으로 경치를 내어준다. 남쪽으로 동쪽으로 번갈아가며 시야가 터진다. 멀리서 봐도 고운 서포리해수욕장, 은밀한 굴곡의 밧지름해변이며, 숨겨진 해안선이 속속 드러난다. 아무리 속 좁은 이라 해도 비조봉에선 마음이 넓어지지 않곤 못 배길 것이 분명했다.

어렵지 않은 바윗길을 드문드문 지나 닿은 정상. 날아갈 듯 기와 올린 팔각정을 산불감시 어르신이 지키고 있었다. 국수봉으로 흘러가는 선 굵은 능선과 흘러내린 지능선은 덕적도의 장대함을 과시하고 있었다. 비조봉飛鳥峰(292m)은 날아가는 새를 닮은 산세라 하여 이름이 유래하며, 덕적군도를 호령하는 비경의 정점이다.

서포리마을로 하산해 간판 없는 중국집으로 유명한 곳에서 짜장면을 먹었다. 특별할 것 없지만 부족하지 않은 맛이었다. 노부부의 푸근함과 낡은 테이블, 먼 섬 채취가 섞여 바다의 시간이 맛으로 스며들고 있었다.

뭍으로 가는 길. 몇 달은 아무도 찾지 않을 산길이며, 이름 없는 해변들이 환하게 마중 나와 있었다. "콰르릉" 엔진 소리에 묵은 감정 던져놓고, 배는 간신히 떠나고 있었다.

소야도 남동쪽 끝에 닿았다. 아담한 막끝단섬이 홀로 바다를 지키고 있었다.

교통

인천항연안여객터미널(1599-5985)에서 겨울 기준 하루 3회(08:30, 09:10, 14:30) 운항한다. 오전 9시 10분에 출발하는 '코리아익스프레스 카훼리'편이 차량을 실을 수 있는 철부선이며, 나머지 배편은 승객만 탑승 가능하다. 고속훼리인 코리아나호는 1시간 10분, 철부선인 코리아익스프레스카훼리는 1시간 50분 소요. 덕적도에서 인천으로 나오는 배 역시 하루 3회(10:00, 15:30, 16:00) 운항한다. 뱃시간은 매달 바뀔 수 있으므로 인천항만공사 홈페이지 icferry.or.kr에서 미리 확인해야 한다. 요금은 코리아나호 왕복요금 4만8,100원. 코리아익스프레스카훼리 왕복요금 3만4,500원. 차량 왕복 요금은 승용차·SUV 기준 10만~13만 원선.

비조봉 서릉 바윗길을 돌파하는 경희대 산악부원들. 산행 속도만 줄어들 뿐 어렵지 않은 암릉구간이 간간이 있다.

섬 여행 가이드

덕적도를 제대로 둘러보려면 일주일은 머물러야 한다. 그만큼 섬이 작지 않고, 은밀한 산길과 혼자 보기 아까운 풍경이 많다. 남해의 일반적인 섬은 모래해변 하나 없는 곳이 흔한 걸 감안하면, 덕적도는 여행자에게 종합선물세트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1박2일로 둘러본다면 선착장에서 진리마을과 진리성당을 들머리로 비조봉에 올랐다가 서포리해수욕장으로 하산해 1박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쓰레기 처리장으로 이어진 서릉은 바위가 간간이 있으나 주의하면 어렵지 않다.

정상에서 서쪽으로 이어진 바위능선이 비조봉 산행의 하이라이트다. 진리에서 비조봉 정상을 거쳐 쓰레기 처리장으로 내려서는 산행은 4km이며 2시간 정도 걸린다. 서포리 원점회귀 산행도 인기 있으며, 국수봉(314m)은 군 시설이 있어 상대적으로 찾는 이가 드물다.

소야반도 둘레길의 생명력 강한 나무 아래를 지난다. 왕재산 능선길은 희미하지만 산이 작아 어렵지 않다.

1km 길이의 모래해변인 서포리해수욕장은 주민들이 야영을 허락한 곳이며, 화장실이 있다. 편의점과 식당들도 가까워 대부분의 야영객이 서포리 해변에 텐트를 친다. 다음으로 인기 있는 야영지가 화장실이 있는 밧지름해변과 소야도 때뿌루해변이다. 소야도 죽노골해변과 덕적도 바갓수로봉도 최근 백패커들이 찾는 곳이다. 인증지점은 비조봉 정상이며, 팔각정 아래 밧지름해변으로 이어진 산길 쪽에 표지석이 있다.

월간산 12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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