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이런 게 진짜 여행[이재국의 우당탕탕]〈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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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친구가 아버지와 단둘이 유럽여행을 가야 하는데 걱정이 된다며 찾아왔다.
자신은 평소 아버지와 친하게 지내는 편이 아니라 아버지와 단둘이 떠나는 유럽여행이 부담스럽다고 했다.
장례를 치른 후, 친구는 아버지를 그리워하며 그나마 아버지와 단둘이 떠났던 유럽여행이 가장 기억에 남는 추억이라고 얘기했다.
추석 때 형을 만난 김에 친구 아버지 이야기를 하면서 "우리 둘이 여행 한번 가볼까?" 얘기를 꺼냈더니 형은 기다렸다는 듯 좋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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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아버지께서 일찍 돌아가셔서 아버지와 추억할 게 별로 없었다. 그러다 문득 형이 생각났다. 내 나이도 어느새 쉰이 넘었는데 생각해보니 형이랑 단둘이 여행을 가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추석 때 형을 만난 김에 친구 아버지 이야기를 하면서 “우리 둘이 여행 한번 가볼까?” 얘기를 꺼냈더니 형은 기다렸다는 듯 좋다고 했다. 이런 계획은 너무 오래 끌면 안 되기에 올해가 가기 전에 제주도라도 다녀오자고 약속했고, 11월 말로 계획을 세웠다. 그렇게 단둘이만 여행을 떠나려고 했는데 어느 날 작은 누나에게 연락이 왔다. 이왕이면 “매형 두 분도 모시고 가라”는 얘기였다. “너희 둘은 아직 젊으니까 언제든 둘이 또 갈 수 있지만 매형들이랑 언제 여행을 가보겠냐?”는 작은 누나의 말에 설득당했고, 그렇게 매형 두 분과 형, 나 이렇게 넷이 제주도로 3박 4일 여행을 떠났다.
여행하는 동안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제주도 여행 사진을 올렸더니 누구랑 갔냐고 물어보는 사람들이 많았다. 형이랑 매형 두 분이랑 넷이 왔다고 하니까 모두가 “진짜?”냐고 몇 번씩 물어봤다. 내가 생각해도 평범한 조합은 아니었기에 물어보는 사람마다 “진짜!”라고 상황 설명을 해줬다. 첫날은 제주 흑돼지구이를 먹고 다음 날 아침에 함께 고사리 해장국을 먹고 비자림도 걷고, 성산일출봉에도 오르고 저녁은 미리 예약한 횟집에서 구문쟁이 회를 먹으며 소주도 한잔했다. 다음 날은 애월 해안도로에서 커피도 마시고, 곶자왈 숲길도 걷고 마지막 날 아침은 보말칼국수까지 맛있게 먹었다.
어렸을 땐 매형들도 젊은이였는데, 내 나이가 50이 넘고 보니 매형들도 어느새 머리가 희끗희끗, 나이는 환갑을 넘겨 있었다. 처음 만났을 때 얘기부터 아버지 돌아가셨을 때 얘기, 우리 엄마 음식 솜씨 얘기 그리고 어머니 돌아가셨을 때까지 얘기하다 보니 매일 새벽에야 잠이 들었다. 그렇게 여행을 마치고 공항에서 매형 두 분이 “처남들이랑 처음 여행 가는 거라 3박 4일이 길 줄 알았는데 시간이 금방 갔네. 고마워 처남” 하시며 손을 잡아주시는데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형이랑 단둘이 떠나는 여행은 조금 미뤄졌지만 누나들 없이 매형 두 분이랑 여행을 가본 사람이 얼마나 될까. 여행하며 찍은 사진은 모두 고등학교 수학여행 때 찍은 사진처럼 차렷 자세의 사진들뿐이지만 이 또한 추억으로 기억되겠지.
이재국 방송작가 겸 콘텐츠 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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