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거란전쟁’ 전쟁 사극의 ‘혁신’이라 할만하다[서병기 연예톡톡]

2023. 12. 7.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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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 = 서병기 선임기자]사극 제목은 인물이 자주 등장한다. '태조 왕건' '대조영' 등 인물을 제목으로 내세우며 영웅서사를 그려낸다. '용의 눈물'은 철혈군주인 태종 이방원이 많은 사람을 죽이고 흘리는 회한의 눈물이니 '방원의 눈물'이다. '해신'은 장보고의 해상 활약상을 그린다. 그런데 KBS 2TV '고려거란전쟁'은 전쟁을 제목에 달았다.

물론 여러 차례의 거란 침략을 막아낸 고려 현종(김동준)과 강감찬 장군(최수종)의 대응 전략, 그에 앞선 흥화진사 양규(지승현), 서북면 도순검사 강조(이원종) 외에 김숙흥(주연우) 강민첨(이철민) 같은 장군들의 활약상이 부각되지만, 전체적으로는 전쟁이라는 특수상황을 앞세운다.

사람보다 상황(전쟁)을 전면에 내세우면 드라마를 풀어나가기 어렵다. 하지만 KBS 2TV '고려거란전쟁'은 그 어려운 일을 해내고 있다. 기존 전쟁신으로는 어림 없다. 5회부터 시작된 흥화진 전투와 통주 전투, 삼수채 전투를 보다보면, 저절로 이야기에 빠져들게 된다. '여요전쟁'을 이렇게 몰입감 있고, 흥미진진하게 연출해 나간 건 전쟁사극의 혁신이라 할만하다.

흥화진 전투를 이끄는 양규의 감정변화, 미세한 떨림까지도 전쟁신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어 시청자들이 감정선을 따라갈 수 있다. 공선전을 디테일하게 그려냈다. 투석기를 활용하고, 포로로 잡은 고려 백성들을 맨 앞으로 내세우며 진군해오면서 자신의 가족들을 공격해야 하는 상황속에 피눈물을 흘리면서 자신도 활 시위를 당기며 "활을 쏴라"고 명령하는 엔딩은, 그림만으로 기승전결을 완성시켰다. 그 힘으로 7회 시청률 8.4%, 8회 시청률 7.9%까지 왔다.

거란의 침입이 있기 전, 향략에 빠진 목종(백성현)과, 천추태후의 내연남인 우복야 김치양(공정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을 후계 왕으로 삼으려는 무리수를 짜고 있던 천추태후(이민영) 이야기는 신속하게 전개해나갔고, 강조가 이들을 제거하는 반란으로 이어지며 '여요전쟁'은 시작됐다.

거란 병력은 40만 대군이다. 이에 맞서는 30만 고려군은 절반 이상이 전투 경험이 없는 광군, 즉 농민으로 편성된 예비군사조직이다.

하지만 7회에서 거란의 막강한 철갑기병들을 고려는 검차(劍車)로 막아낸다. 고려군은 대회전(벌판에서 대규모 병력이 집결해 벌이는 전투)에 익숙하지 않다. 수성과 공성 위주의 전쟁이지, 나폴레옹과 웰링턴이 싸웠던 워털루 전투 등 유럽 역사에서 나온 전쟁과는 양상이 다르다.

검차란 수레에 설치된 방패에 여러 개의 검을 꽂은 무기다. 일종의 '움직이는 바리케이드'라고 보면 된다. 기동력 있는 검차를 이용해 거란 기병을 향하면, 달려오던 말이 꼼짝 없이 당하고 만다. 이와 함께 물풀매(돌을 던질 때 파괴를 높이기 위해 사용하는 도구)와 쇠도리깨(도리깨 모양 쇠병장기), 장창(긴 자루에 날을 붙여쓰는 무기) 등의 다양한 병기를 활용해 거란 기병의 말눈을 가리게 하고,결국 거란철갑기병을 격퇴하는 장면은 감동적이었다.

전쟁 상대국인 거란제국의 인물들도 입체적이다. 거란 6대 황제 성종인 야율융서(김혁)와 전쟁에서 잔뼈가 굵어진 장수인 소배압(김준배), 흥화진 전투의 대장인 선봉도통 야율분노(이상홍)가 모두 개성적이다. 특히 소배압은 귀주대첩에서 패해 거란 황제에게 파면 당하지만 강조와의 통주 전투에서는 고려군을 완파하기도 했다.

소배압은 흥화진 전투를 망친 야율분노가 황제인 야율융서로부터 목이 잘릴뻔한 위기를 벗어나게 해주며 기회를 준 인물이다. 하지만 전략 없이 고려를 친 야율분노에게 "당신이 적을 흩어지게 만들었어"라고 호통을 치며 자신이 직접 전쟁을 지휘한다.

거란은 앞으로 소배압을 장수로 한 제3차 침입을 하지만 귀주에서 강감찬에게 패하는 귀주대첩이 남아있는 등 앞으로 본 게임은 훨씬 더 흥미진진해질 것으로 보인다. 특히 귀주대첩은 발해를 멸망시킨 후 송나라를 무릎 꿇린 거란을 상대로 고려가 이긴 명승부로 전쟁사에 기록돼 있어 더욱 기대가 크다.

예부시랑 강감찬(최수종)이 "인간이 살아서 겪는 유일한 지옥이 전쟁이다"고 '정치 초짜 임금' 현종(김동준)에게 말한다. 본래 문인이었으나 60세가 넘어 전장에 나가는 강감찬(최수종)의 활약상은 '고려거란전쟁' 중후반부를 훨씬 더 풍성하게 할 것이다.

'고려거란전쟁'이 전쟁을 치르면서도 스펙타클은 물론이고 인간과 심리, 정신 등 디테일을 잘 살려내고 있어 기존사극과 분명한 차별점을 보이고 있다.

wp@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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