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의 80억 투자는 어떻게 되나…로봇 심판에게 프레이밍은 아무 소용이 없는데

백종인 2023. 12. 7.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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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SEN=백종인 객원기자] 지난 2월 전지훈련 때다. 괌과 오키나와에서 펼쳐진 롯데 캠프에 활기가 넘친다. 새로 영입한 전력이 여럿이다. 특히 불펜이 늘 시끌시끌하다. ‘팡, 팡’. 유독 힘찬 미트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좋아~”, “나이스 볼~”. 치열한 경쟁 끝에 모셔 온 포수의 목소리가 힘차게 울려 퍼진다. 유강남(31) 이다.

이미 LG 시절부터 평판이 자자했다. 스트라이크를 만들어내는 비상한 능력 덕분이다. “강남이 형이 받아주면 왠지 힘이 나요. 웬만한 코스는 모두 잡아줄 것 같은 기대감이 생기죠.” 후배 투수들의 입에 침이 마를 날이 없다. ‘프레이밍 마스터’라는 호칭도 얻었다.

롯데에서도 마찬가지다. 아니, 기대가 더 크다. 각이 큰 변화구를 던지는 투수가 많은 탓이다. 커브, 포크볼 같은 공이다. 미트를 채면서 받아주면 한결 효과가 커진다. 낮게 떨어진 볼도 스트라이크처럼 보이게 해준다.

4년에 80억 원이었다. 파격적인 규모다. 아무리 포수 FA시장에 불이 붙었다고 해도 결코 적은 금액은 아니다. 오버 페이 논란도 있었다.

하지만 이해된다는 분위기였다. 몇 년째 마땅한 주전급이 없어, 가장 큰 약점으로 꼽혔다. 그걸 단번에 해결해 줄 적임자라는 평가였다. 투수 리드와 블로킹, 타격 능력이 모두 합격점이다. 특히 성실성이 만점이다. 매년 900이닝 넘게 홈 플레이트를 지킨다. 최근 5년간 꾸준했던 유일한 포수였다.

가장 큰 차별화는 역시 ‘프레이밍’이었다. 과거에는 ‘미트질’ 정도로만 여겼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세이버메트릭스에 의해 재평가가 이뤄졌다. 이제는 메이저리그의 천재 GM(단장)들이 주목하는 데이터다. 유강남은 이 항목에서 확실한 비교 우위를 나타냈다.

지난 10월 19일이다. 서울 강남구 도곡동 야구회관에서는 KBO 4차 이사회가 열렸다. 깜짝 놀랄만한 내용이 의결됐다. 당장 내년부터 자동 볼 판정 시스템(ABS·Automatic Ball-Strike System)을 전면 도입하겠다는 결정이다.

이미 2군에서는 3년 전부터 시범 운영 중이다. 고교 야구에서도 선보인 바 있다. 하지만 메이저리그는 벌써 몇 년째 실전 도입을 망설이고 있다. 급격한 변화에 대한 부담 탓이다. 그만큼 KBO의 이번 조치는 획기적이다.

갑작스러운 결단은 배경이 있다. 허구연 KBO 총재가 밝힌 내용이다. “지금 선수, 구단, 팬 모두의 불만이 많이 쌓여 있다. 너무 힘들어서 못 하겠다는 심판들이 나올 만큼 중압감에 시달린다. 초반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 100% 만족하진 못하겠지만 최선을 다하겠다. 모두 이해하고 힘을 모아달라.”

여론은 일단 우호적이다. ‘바라던바’라며 응원하는 목소리가 많다. 다만, 이로 인한 급격한 변화는 불가피해 보인다. 야구라는 게임의 상당 부분에 영향을 끼칠 요소를 내포하고 있다.

대표적인 게 프레이밍 무용론이다. 스트라이크처럼 잡는다는 게 간단한 기술이 아니다. 시속 150㎞ 안팎의 공을 잡으면서, 순간적으로 채는 것은 고도의 훈련이 누적돼야 한다. 필요한 근력도 상당하다. 왼손(손목)만 집중적으로 웨이트 트레이닝 하는 과정도 필수적이다.

그런데 이젠 그런 수고가 필요 없게 됐다. ABS는 냉정하고, 단호하다. 오로지 투구 궤적만 볼 뿐이다. 설정된 존을 통과하면 끝이다. ‘삐~’ 하는 신호음을 구심의 인이어(In-Ear)에 전달할 뿐이다.

로봇 심판(혹은 AI 심판)에게 포수와 미트의 움직임은 전혀 고려 사항이 아니다. 흔히 말하는 ‘덮밥’도 스트라이크로 선언된다. (덮밥이란 낮은 공을 미트로 덮어버리듯이 잡는 동작이다. 좋은 판정을 받을 수 없는, 최악의 포구 자세를 부르는 은어다.)

그럼, 이제 프레이밍은 괜한 것인가. ‘그렇지 않다’는 게 현장의 얘기다. 포수 출신인 김태형 롯데 감독의 말이다. “앞으로 프레이밍이 필요 없는 게 아니다. 포수가 공을 확실하게 잡아줬을 때, 투수는 더 느낌이 오기 마련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 팀 포수진은 리그 정상급이라고 할 수 있다.”

프레이밍 마스터도 한마디 거든다. 유강남의 멘트다. “중요한 것은 투수에게 주는 안정감이다. 로봇이 판정한다고 해도, 내가 불안하게 잡는다면 투수가 던지는 데 문제가 생길 수 있다. ABS를 의식하지 않고 안정적으로 잡으려고 해야 할 것 같다. (농담조로) 기계도 가끔은 실수하지 않겠나.”

한화의 김정민 배터리 코치도 비슷한 설명이다. “(ABS가 도입된다고 해도) 포수의 포구는 여전히 중요하다. 얼마나 잘 잡아주느냐에 따라 투수나 야수들이 느끼는 집중력이 달라질 수 있다.”

물론 감안하고 들어야 할 말들이다. 아무리 옹호론이 강조돼도, 프레이밍의 가치가 현저히 반감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심지어 무용론을 떠나 금지론까지 나온다. 무슨 말이냐. 프레이밍은 공을 잡고 조금씩 움직여야 하는 동작이다. 당연히 완벽한 포구에는 방해가 된다. 자칫하면 공을 흘리고, 빠트리는 경우도 생긴다.

대신 이제는 ‘안정감’이 요구된다. 확실하게 포구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 투수와 야수들의 집중력에 방해가 되지 않는다. 굳이 스트라이크처럼 보일 필요가 없다. 정확하게, 제대로 잡는 것이 중요하다는 논리다. 각 구단이 이번 마무리 캠프에서 강조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이제 프레이밍을 따지는 시대는 지났다. 여기에 대한 투자 가치는 다시 계산돼야 한다. 하지만 포수의 능력치는 다양하다. 타격은 물론이다. 투수 리드, 블로킹, 도루 저지…. 또 있다. 힘든 포지션이지만 많은 이닝수를 소화하는 것도 중요하다. 이제 유강남에 대한 평가는 새로운 챕터를 맞게 될 것이다.

/ goorada@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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