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5년 육군 8사단 박격포탄 사망 사고는 어떻게 불발탄 폭사가 됐나?"

김성수 <함석헌 평전> 저자 2023. 12. 7.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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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고상만 전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 사무국장

고상만 전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 사무국장은 지금 신원식 국방장관에게 고소당한 상태다. 그만이 아니라 <오마이뉴스> 대표와 기자 두 명 등도 고소당한 상태다. 지난 10월 27일 고상만 전 국장은 <오마이뉴스>에 "나는 왜 국방부 장관에게 고소당했나"라는 기사를 기고했다. (관련 기사 :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971926&CMPT_CD=P0010&utm_source=naver&utm_medium=newsearch&utm_campaign=naver_news)

나는 이 사건에 대해 신원식 장관으로부터 함께 고소당한 당사자인 <오마이뉴스>의 추가보도를 기대했지만 한 달이 훨씬 넘도록 이 사건에 대한 아무런 추가보도가 없다. 그래서 고상만 전 국장과 이 사건에 대해 지난 12월 2일에서 3일 페북메신저로 인터뷰 했다. 다음은 인터뷰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 먼저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이 사건의 요지를 설명하면?

"지난 1985년 10월 24일 경기도 포천 훈련장에서 육군 8사단 공지합동훈련 실시되었다. 그 과정에서 박격포 두 발이 발사되었는데, 현 국방부장관이 된 신원식 씨가 당시 이 부대 중대장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그는 당시 이 부대 화기 소대장에게 무전으로 박격포 발포명령을 내리는 업무를 맡고 있었다. 당시 신원식 중대장이 정확하게 화기 소대장에게 무전명령으로 사거리를 전달했다면 사고로 이어지지 않았을 텐데 화기 소대장의 증언에 의하면 사거리를 알려주지 않고 막연하게 멀리 한 발 쏘라고 했다. 화기 소대장이 있는 위치에서는 중대원의 위치가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어디로 얼마만큼 포를 날려야 하는지 알 수 없어 대충 1.5킬로 정도 쐈다고 한다. 그런데 그 포가 목표지점을 훌쩍 넘어 산을 넘어갔다. 그러자 신원식 중대장 무전병의 증언에 의하면 신원식이 화기 소대장에게 화를 내면서 이번엔 짧게 쏘라고 재차 황당한 지시를 했다.

결국 그렇게 해서 쏘게 된 두 번째 박격포 탄이 건너편 산 중턱에 대기하고 있던 이 모 이등병의 발밑에 떨어지면서 사망사고가 발생했다는 것이 이 사건을 목격한 당시 전우들의 증언이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당시 중대원들의 증언에 의하면 박격포탄을 맞고 이등병이 사망하자 이후 중대장 신원식을 비롯한 부대 간부들이 이를 불발탄 폭사로 왜곡 조작했다.

그래서 당시 이 소대 최고참이었던 병장 조평훈 제보자가 박격포 오폭 사고로 사망한 사건을 불발탄 폭사로 왜곡했다며 지난 2020년 <대통령소속 군사망사고 진상규명위원회>(아래 위원회)에 진정하기 전까지 35년간 진실이 은폐됐다."

- 군 사망사고 사건은 보통 가족들이 진정한다. 그런데 아무 혈연관계가 없는 분이 진정했다. 그런 제보자 조평훈 씨는 지금 신원식 장관에게 고소당했다. 결국 권력의 힘으로 모든 진실을 입막음하려는 것이 아닌지 의구심이 드는데?

"사건 당시 중대장 신원식을 비롯한 부대 간부들이 1차로 입막음을 통해 진실을 왜곡했다면 이번엔 권력을 통해 2차로 진실을 막으려 하고 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 사건은 참으로 기가 막힌 사례가 아닐 수 없다. 막장 드라마도 이런 막장 드라마가 또 있을까 싶다. 38년 전 가해자가 지금은 국방장관으로 사건의 최종 결정권자가 되어 진상을 왜곡하는 최정점에 있다는 가정이 상상이나 가능한 일인가. 그런데 그걸 현실에서 보고 있으니, 정말 할 말이 없을 지경이다."

- 지난 해 12월 위원회는 결정문에서 '부대원들의 공통된 진술 등을 고려하면, 망인의 사망은 훈련과정에서 불발탄을 밟아서 사망한 것이 아니라 정확한 사거리 측정 없이 급격하게 사격된 박격포 포탄에 의해 사망했다고 봄이 상당하다'며 '망인의 소속부대 지휘관과 간부들은 망인의 사인을 불발탄을 밟아 사망한 것으로 왜곡·조작함으로써 사고의 지휘책임을 회피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런데 왜, 무슨 이유로 신원식이 이를 보도한 <오마이뉴스>와 기자, 대표, 그리고 제보자와 위원회 고상만 전 사무국장 등을 고소했나?

"아직 고소장을 보지 못해 내용을 파악하지는 못했다. 다만 신 장관 쪽에서 낸 보도 자료를 읽어보니 논리가 좀 특이했다. 박격포 오폭 논란 자체를 부인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다만 불발탄 폭사를 왜곡 조작한 사람이 누구인지 위원회도 밝혀내지 못했는데 그것을 자신이 주도한 것처럼 피고소인들이 주장하여 고소했다는 취지로 읽힌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그야말로 앞뒤가 맞지 않는 고소로 보인다.

실제 중대장이 모든 것을 주도했다는 중대원의 진술은 지난 8월 27일 <MBC 뉴스데스크> 방송을 비롯해서 여러 일간지에서 이미 보도된 바 있다. 또 10월 10일 방영된 MBC <피디 수첩>에서는 매우 구체적이고 상세한 증언도 보도되었다. 그런데 이들 매체에 대해선 아무런 법적 조치도 하지 않았다. 나는 이 언론 보도를 종합해서 9월 25일 장관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유튜브 방송과 인터뷰로 전했을 뿐이다. 그런데 그 매체는 고소 안 하고 나만 고소했다. 이게 왜 나만의 문제인가. 일관성이 없다."

▲<PD수첩>을 통해 보도된 중대원들의 증언. ⓒMBC 화면 갈무리

▲<PD수첩>에 보도된 중대원들의 증언. ⓒMBC 화면 갈무리

- 제보에 따르면 당시 육사 37기(신원식 장관 기수) 위세는 대단했다고 한다. 헌병은 물론 보안사도 절절맸다고 한다. 일설에 의하면 육사 37기가 소위 임관하고 광주 상무대 교육 들어왔을 때 사복 헌병 상사가 지나가는데 계급 높은 장교인 줄 알고 경례했는데 얼떨결에 상사가 경례를 받았단다. 나중에 상사라는 걸 알게 된 육사 37기 소위들이 헌병대 쳐들어가 상사 내놓으라고 뒤집었다는 얘기가 있을 정도였다고 한다. 육사 위세가 이 정도였는데 당시 사단 헌병이 이 사건을 제대로 조사했을까 라는 의구심이 드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당시 헌병대 수사가 매우 부실했다는 것은 분명하다. 우리나라에서 대표적인 군의문사 사건 중 하나인 허원근 일병 사망사건(1984년 4월 2일 발생)이 부실한 수사로 지탄을 받는데 그보다도 더 부실한 수사로 처리된 것을 보고 놀랐다.
(관련 기사 :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899468)

사망사건인데도 목격자를 비롯해서 단 두 명만 조사한 채 사건을 종결 처리했다는 것도 놀라웠고, 사망 후 불과 19시간 만에 부검 없이 화장한 것도 어처구니없었다. 진상을 은폐하려는 목적이 아니었나 의심이 들 정도다. 사람이 죽으면 기본적으로 3일장이 원칙인데 왜 이렇게 성급하게 서둘렀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이 사건을 조사한 당시 헌병대 관계자는 그 이유를 알지 않겠나 싶다. 그때 좀 더 철저하게 수사했다면 오늘과 같은 불행한 논란이 없었을 텐데 안타깝다."

- 자신의 지휘 책임 하에 있다가 억울하게 사망한 중대원의 사망 원인을 재차 망인의 실수로 왜곡하는데 함께한 사람이 국방장관이라는 비판도 있다.

"지난 10월 10일 방영된 MBC <피디 수첩> 마지막 장면에 등장한 당시 2소대 보병 박지훈(가명) 중대원의 인터뷰 장면을 잊을 수가 없다. 그래서 여러 차례 다시 보기로 봤다. 그는 인터뷰에서 '우선 제일 미안하죠. 지금도 전우들이 제 역할을 못해주고 있으니까'라면서 '그 당시에 못했다 하더라도 지금 다시 수면위로 올라왔을 때 지휘관이 먼저 그 실수를 인정하고, 자기 부하인데 그 죽음에 사과하고..'라는 말을 했다. 이 장면이 너무나 가슴 아프게 다가왔다. 왜 가해자가 아닌 또 다른 피해자인 목격자가 미안하다는 말을 해야 하는지, 그리고 지금이라도 사과해 달라고 간청하는데 그때 중대장은 이들 중대원을 만나 '정말 오해라면' 그걸 풀려는 노력은 고사하고, 고소부터 하는지 납득할 수가 없다. 이렇게 많은 중대원이, 그것도 다들 올해 나이 육십이 넘은 분들이 정말 오해로 이런 증언을 하겠나."

- 오늘 젊은이들이 군에 가서 목숨을 거는 이유는, 국방의 의무도 있지만, 지휘관이나 전우가 유사시 자기를 지켜줄 것이라는 상호신뢰와 믿음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면에서 신원식 씨는 고소를 철회하고 장관직을 사퇴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는데?

"대한민국은 누구나 남자라면 군대를 가야 하는 의무복무제 국가이다. 그래서 아들을 둔 부모라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일정기간 조건 없이 군에 보내야 한다. 그렇다면 전쟁이 아니라면 국가는 안전하게 다시 그 아들을 부모에게 돌려보내는 책임 역시 보장해야 한다. 그런데 신원식 장관은 자신이 중대장으로 재직하고 있을 당시 매우 중대한 문제를 일으켰다. 이는 의혹이 아니다. 이미 국가 조사기관에서 3년에 걸친 조사를 거쳐 진상이 밝혀진 진실이다. 그리고 이의제기 기간을 지나 확정된 진실이다. 그런데 이를 현직 장관이라는 권력의 힘으로 유린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 현상을 매우 심각하게 지켜보고 있다. 또 하나의 국정농단이 아닌가. 대통령은 이 사안을 엄중 하게 판단해야 한다고 나는 촉구한다. 국민의 눈을 무섭게 봐야 한다."

- 남북이 대치하는 엄중한 상황에서 이러한 일은 60만 대군의 사기를 크게 떨어뜨릴 수 있다. 그래서 윤석열 정부에서 이 사건의 진실이 무엇인지를 낱낱이 조사한 후 국민들에게 소상히 진상을 밝히는 것이 급선무라고 본다. 어떻게 생각하나?

"대통령실의 공직기강 비서관실에서 이 사건을 철저히 확인하는 일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인사청문회 당시 신원식씨가 사실여부를 부인한 것에 대해 진위여부를 확인하는 차원에서 조사하고 그에 따른 조치를 하는 것은 필요한 사안이다. 이 사안은 정치적 이슈가 절대 아니다. 전 국민이 자기 아들을 국가에 일정기간 내놓고 맡기는 일이라는 점에서 민생사안이다. 그런데 국방장관에게 이런 논란이 있는데 누가 아들을 마음 놓고 맡길 수 있단 말인가. 해병대 채 상병 사건 이슈가 바로 이런 문제 때문에 여기까지 온 일 아닌가."

- 최근 '채 상병 사망 사건 무마 의혹'도 계속해서 여러 정황이 나오고 있다. 이 사건은 어떻게 보고 있나?

"전형적인 데자뷰 사건이다. 지난 9월 8일 국방위 전체회의에서 당시 신원식 의원은 채 상병 사건을 두고 해병대 1 사령관 처벌논란에 대해 '병사의 생명은 물론 소중하지만 그렇다고 사단장 이하 전체 지휘관을 전부 처벌하는 게 말이 되냐'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그 발언을 들으며 나는 전율했다. 바로 자기 이야기하는 것 같아서 그랬다.

사실 1985년 자기 사건이나 이 사건이나 너무나 흡사하다. 지휘관의 잘못된 명령으로 부하가 사망한 사건이다. 1985년 박격포 오폭사건을 제대로 처리했다면 해병대 채 상병 사건 역시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신원식 장관이 장관직에 그대로 있어서는 채 상병 사건은 진상이 제대로 밝혀지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패스트트랙으로 특검이 도입된다 하더라도 자신과 같은 데자뷰 사건인 이 사건을 어떻게 공정하게 처리할 수 있단 말인가. 나는 매우 심각하게 보고 있다."

- 대한민국이 전두환 군사독재인 38년 전 세상으로 돌아가고 있는 것 같아 너무 답답하다. 그간 피와 눈물로 이뤄놓은 온 성과가 물거품이 되어가는 것 같아 안타깝다. 현재 이 소송 관련해 주위에서 도움을 주고 있는 분들이 있나? 그리고 어떻게, 어떤 심정으로 대응하고 있으며 향후 계획은?

"지난 국정감사에서 신원식 장관에게 국방위원 중 아무도 이 사건에 대해 묻지 않는 것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그때는 10월 10일 MBC <피디수첩>에서 중대원들의 구체적인 증언이 보도된 때였다. 그래서 장관 인사청문회에서 사실을 부인하던 신원식 장관에 대해 추궁하리라 기대했는데 어느 누구도 묻지 않는 걸 보고 절망했다. 해병대 채 상병의 죽음만 생명이고, 같은 스무 살에 사망한 8사단 이 일병의 죽음은 왜 외면받아야 하는지 나는 동의할 수가 없다.

38년 전 일이기에 그렇다면 더더욱 이해할 수 없다. 대한민국의 정의는 어디로 갔나? 국회가 특별법으로 제정해서 어렵게 진상을 밝혀낸 죽음이다. 나는 <대통령소속 군사망사고 진상규명위원회> 사무국장 등으로 지난 5년간 일했다. 지금 내가 하는 일은 그 위원회의 진실을 지키고자 하는 몸부림이다.

내가 지금 화가 나 있는 것은 '이런 식이라면 뭐 하러 세금 들여' 국민에게 진실을 제보하라고 호소했나 하는 것이다. 제보자를 지켜주지도 못하면서 왜 이런 일을 하라고 했는지 너무나 부끄러웠다. 그래서 공적 임기는 끝났지만, 위원회 사무국장을 지낸 사람으로서 끝까지 내 역할을 하고자 노력하는 중이다. 살아있는 장관의 권력으로 유린하는 진실을 지키려는 몸부림이다. 그 뿐이다. 나를 도와주는 많은 분들과 함께 끝까지 '진실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

▲고상만 전 사무국장. ⓒ필자 제공

[김성수 <함석헌 평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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