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음악 이면의 내밀한 결혼 생활… 거장에게도 감추고픈 비밀은 있었다
1943년 11월 이른 아침, 25세 청년 지휘자에게 전화가 걸려 온다. 당초 뉴욕 필하모닉을 지휘할 예정이던 거장 브루노 발터가 독감으로 무대에 설 수 없으니 대타(代打)를 맡아달라는 요청이었다. 연주회까지 남은 시간은 불과 반 나절 남짓. 리허설도 없이 카네기홀에 올라간 이 청년의 활약상을 뉴욕타임스가 1면에 대서특필하면서 ‘스타 탄생’의 신화를 쓴다.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첫 마에스트로(거장)가 된 이 청년이 레너드 번스타인(1918~1990)이다.
6일 극장 개봉한 영화 ‘마에스트로 번스타인’은 인기 뮤지컬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의 작곡가이자 뉴욕 필의 지휘자였던 번스타인의 실화에 바탕하고 있다. 이 영화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어쩌면 번스타인(브래들리 쿠퍼)의 코일지도 모른다. ‘아메리칸 스나이퍼’와 ‘스타 이즈 본’의 연기파 배우인 쿠퍼는 무려 5시간이 넘는 특수 분장을 통해서 번스타인으로 완벽하게 변신했다. 온몸을 뻗으면서 춤추는 듯한 특유의 ‘만세 동작’으로 말러의 교향곡 ‘부활’을 지휘하는 모습까지 꼼꼼한 고증을 통해서 되살렸다. 걸쭉한 뚝배기 같았던 번스타인의 실제 목소리와는 달리, 쿠퍼의 음성은 해맑은 장국에 가깝다는 정도가 차이일 것이다.
영화에서 쿠퍼는 주인공 번스타인 역은 물론, 연출·제작·공동 각본까지 ‘1인 4역’을 도맡았다. ‘스타 이즈 본’ 이후 두 번째 연출작이다. 다급하게 전화를 받은 주인공 번스타인이 곧바로 카네기홀에 입성하는 초반 장면부터 쿠퍼는 ‘초보 감독’답지 않은 화려한 연출력을 보여준다. 번스타인의 작품은 물론, 영화 ‘헤어질 결심’에서도 흘렀던 말러 교향곡 5번의 ‘아다지에토’까지 번스타인이 작곡하거나 지휘했던 음악들이 넘실거린다.
영화는 번스타인의 청년과 노년 시절을 넘나드는 편집 방식을 택했다. 작곡가이자 지휘자로 눈부신 성공을 거두는 청년 시절은 흑백 화면으로, 노년은 컬러로 각각 구분했다. 관객들의 혼란을 막기 위한 배려이지만, 실은 또 하나의 반전 카드가 숨어 있다. 번스타인은 여배우 펠리시아(캐리 멀리건)와 결혼해서 세 아이를 기르는 단란한 가정 생활을 유지했지만, 그 이면에서는 끊임없이 흔들리는 성적 정체성을 지니고 있었다. 초반 간략한 암시 정도로 언급되던 번스타인의 이중성은 후반으로 갈수록 중심을 차지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는 역설적으로 슬픈 가족극이기도 하다. 20일부터는 넷플릭스를 통해서도 방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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