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영 | 음식에 담긴 놀라운 치유의 힘[내 이름 걸고 추천하는 맛집](14)

2023. 12. 4. 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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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성남시 ‘지오쿠치나’
신비의 세계로 들어가는 듯한 지오쿠치나 입구 /김주영 제공


저는 가정의학과 의사입니다. 한때 큰 병원에서 열심히 진료도 보고, 연구도 하면서 살다가 지금은 지방간질환 분야의 디지털 치료기기를 만들어보고자 회사 생활을 열심히 하는 중입니다.

예전 병원에서 암 생존자 클리닉과 비만 클리닉을 담당했습니다. 건강검진센터 상담도 맡았군요. 어느 클리닉에 가든 제가 듣는 많은 질문은 “뭘 어떻게 먹어야 하나요?”였습니다. 그럴 때마다 열심히 설명했습니다. 염분은 적게, 정제된 당분 섭취를 줄이고 과다한 포화지방 섭취를 줄이면서 매 끼니 채소는 골고루 드시라는…. 무슨 질환을 앓든, 설사 병이 없더라도 건강한 음식의 구성은 이처럼 대개 비슷하지요. 건강한 음식은 분명히 장기적으로 우리를 건강하게 만들고 질병에 걸릴 확률을 줄여줍니다. 예방의 효과가 분명하게 존재한다는 뜻입니다.

가정의학과 전문의가 돼 질병예방과 건강증진이란 부분을 새롭게 배우면서 환자들을 전인적으로 대하는 방법과 영양 및 운동의 중요성을 깨우쳤습니다. 대부분의 환자는 섭생과 함께 어떻게 운동해야 건강해지는지를 물었습니다. 제가 만나는 환자들이 10년 뒤, 20년 뒤에도 정말 활력 있고 건강한 삶을 영위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진심을 담아 제가 가진 모든 지식을 쏟아부었습니다. 10년여의 세월이 흘렀고, 나름 과학적 지식으로 무장한 답변을 내놓을 정도는 됐습니다.

그럼에도 “음식이 과연 약인가?”라는 근원적 질문에 대한 답은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 미국은 모든 음식 하나하나를 쪼개 분석합니다. 한국도 따라갑니다. 총칼로리가 얼마인지부터 시작해서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 포화지방, 염분, 콜레스테롤, 단순 당류, 미량 영양소 등으로 분해한 영양 피라미드와 영양 권장표에 따라 이렇게 먹어라, 저렇게 먹어라 하는 식으로 국가 차원에서 사람들에게 권장합니다. 문화와 사회적 환경 및 전통이 어우러진 식사의 개념에 건강이 결합하면서 음식은 영양소로 환원됐으며, 나아가 ‘치료제’ 같은 개념으로 변질하고 말았습니다. 음식을 영양소의 조합으로 보는 환원주의가 만연하고 건강기능식품과 비타민, 미네랄 등 시장이 커진 배경입니다.

음식을 낸다는 것은 그러나 영양소를 단순히 공급하는 행위를 넘어섭니다. 일종의 치유와 사회적 연결고리를 만들어주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는 음식을 통해 문화를 맛보기도 하지요. 그 과정에서 따라오는 미각의 즐거움은 덤이자, 인생을 행복하게 이끄는 핵심요소입니다.

3년 전 둘째가 좀 많이 아팠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음식에 대해 신경을 쓰기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면역력이 떨어지지는 않을까, 영양소는 풍부하게 함유하고 있을까? 식사를 잘해야 몸이 잘 이기고 버틸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각종 채소를 데치거나 삶아 비빔밥을 만들었고, 음식에 아주 많은 공을 들였습니다.

하지만 아이는 별로 관심이 없었고 치료로 인해 구역감이 생기면서 음식을 토할 때가 많았습니다. 체중이 10㎏ 가까이 빠졌어요. 그럴 때마다 정말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습니다. 걱정만 커졌지요. 정기적인 입·퇴원을 반복하던 어느 날, 아이한테 물었습니다. 이따 퇴원하면 뭐가 먹고 싶냐고.

병원에서 나오는 밥은 절대 안 먹는다고 해서 그날은 둘 다 아침과 점심을 쫄딱 굶은 터였습니다. 퇴원하기만을 기다렸는데 정말 힘도 들고 배도 고팠습니다.

그때 들려온 아이의 대답. 맛있는 이탈리아 음식이 먹고 싶다더군요. 시계를 보니 오후 3시 30분. 여는 장소가 있는지 폭풍 검색에 나섰습니다.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수내동의 ‘지오쿠치나’라는 곳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영업 중이라고 했고, 평점도 좋아 일단 그리로 가야겠다 싶었습니다.

입구가 정말 다른 신비의 세계로 들어가는 느낌이었습니다. 피자 굽는 냄새와 인테리어가 잘 어우러져 들어가기만 해도 하루의 배고픔과 피로가 없어질 듯한 환상에 빠져들었습니다. 또한 따뜻한 벽돌 느낌의 아기자기한 소품들은 보기만 해도 사람을 따스하게 위로하고 행복해지는 느낌을 주더라고요. 메뉴를 보다가 먹고 싶은 게 너무 많아 세 가지를 골랐습니다.

리코타 치즈를 개인적으로 정말 좋아하는데 이것과 채소의 조합이 환상적이었습니다. 원래 가장 만들기 어려운 요리 중 하나가 샐러드잖아요. 그 집 샐러드는 드레싱과 채소가 잘 어울리면서 치즈와 하나되는 느낌을 선사했습니다. 오랜만에 맛있는 샐러드를 먹으니 머리가 맑아지고 기분까지 좋아졌어요.

샐러드 /김주영 제공


내친김에 ‘멜란자네’란 요리가 궁금해 시켜봤습니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가지 위에 라구소스와 바질, 그리고 치즈를 곁들였는데 정말 부드러우면서도 달콤한 토마토의 향과 바질향이 환상적으로 잘 어울렸어요.

멜란자네 /김주영 제공


마지막으로 여기 시그니처 메뉴로 불리는 ‘지오크레마’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화덕 파스타인데 크림소스가 매콤해 전혀 느끼하지 않았어요.

지오크레마 /김주영 제공


아이가 평소보다 1.5배 정도는 먹었던 듯합니다. 그러면서도 속이 불편하다거나 소화가 안 된다는 소리 한번 안 하더군요. 오랜만에 잘 먹는 모습을 보니 엄마로서 참 행복하고 큰 위로를 받았습니다.

이날 음식은 제게 너무 큰 행복을 가져다줬습니다. 음식을 영양소로 분해해서 내린 결론은 아니었습니다. 식당의 입구부터 분위기, 향, 맛에 이르기까지 뭐 하나 모자란 게 없었습니다. 물론 음식을 먹기 전의 특수한 상황이 중요하게 작용했음을 부인하긴 어렵겠지요. 어쨌거나 그날 그곳에서의 음식은 지금까지도 소중하고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아이가 오랜만에 즐겁게 많이 잘 먹었고, 행복해했고 전혀 토하지 않았다는 점이겠지요. 굶고 지쳐 있던 우리가 그날 받은 음식의 감동은 그 어떤 약보다 강력한 효과가 있었습니다.

이처럼 음식은 단순히 영양소를 넘어섭니다. 약도 아닙니다. 그런 점에서 특정 음식을 먹는다고 질환을 예방하고 치료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사회적으로 건강하게 연결돼 있어야 합니다. 음식을 먹는다는 건 문화와 정서를 나눈다는 뜻이지요. 건강한 음식을 즐거운 마음으로 어울려서 먹으면 건강해집니다. 같은 논리로, 무슨 병에 걸렸다고 해서 내가 뭘 잘못 먹었다고 생각할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복합적인 여러 원인의 소산이니까요. 이것 하나만 기억하면 됩니다.

“(가짜가 아닌) 진짜 음식을, (급히 먹지 않고) 천천히, (불안하거나 우울한 느낌 없이 )기분 좋게, (혼자가 아니고) 다른 사람들과 같이 드신다면 치료 효과를 기대해볼 수 있습니다.”

필자는 2003년 가정의학과 전문의를 취득하고, 20년 가까이 질병예방과 건강증진, 특히 비만 치료에 관심을 가지고 진료를 했다. 디지털 치료기기를 통해 보다 많은 사람에게 인생의 가치와 건강을 통합한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목표로 지난해 스타트업 분야에 뛰어들었다.


김주영 | 경기 성남시 ‘지오쿠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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