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People] 락셰프 "김밥, 글로벌 미식 아이콘으로 만들겠다"
(서울=연합뉴스) 김지선 기자 = "일본 스시처럼 김밥을 글로벌 미식 아이콘으로 만들겠습니다."
지난달 24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에서 만난 요리연구가 '락셰프' 김락훈(53) 씨는 "김치에 이이 김밥이라는 고유명사 그 자체로 지구촌에서 사랑받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근래 미국의 한 식료품 마트 체인에서 출시한 냉동김밥이 품절 사태를 빚을 만큼 폭발적인 인기를 끌면서 김씨를 찾는 러브콜도 부쩍 잦아진 것이 사실.
하지만 그는 이보다 훨씬 이전인 2010년대 초반부터 '김밥 세계화' 외길을 걸었다.
한국인 최초로 지난 9월 마카오에서 열린 유엔 세계관광기구(UNWTO) 포럼 연사로 초청돼 김밥의 우수성을 소개하는 등 '미식 관광 스타일리스트'로도 맹활약하고 있다.
다채로운 모양과 색깔을 자랑하는 '파티김밥'을 선보이며 세계인의 입과 눈을 사로잡은 데 이어 쿠킹클래스를 통해 '밥상머리 교육' 같은 우리 고유의 음식문화까지 전파한 그가 이제 한단계 도약을 꿈꾸고 있는 것.
냉동김밥을 통해 김밥에 대한 거부감이 사라지고 분위기가 어느 정도 무르익은 지금이 적기라는 게 그의 판단이다.
김씨를 홀린 김밥의 매력은 들고 다니며 먹을 수 있는 '휴대성'과 잔반이 남지 않는 '친환경성'으로 요약된다.
특히 해외에서는 우리 땅에서 나는 농산물을 활용한 건강한 먹거리이자, 쌀 소비를 촉진하고 농가 소득을 높이는 '효자 음식'으로 주목받고 있다는 귀띔이다.
여기에 어떤 속 재료를 넣느냐에 따라 무한변신이 가능한 김밥은 '글로컬화'에 가장 적절한 메뉴로 꼽힌다.
그가 지난 10월 전남 신안 '세계 김밥 페스타'에서 내놓은 흑산홍어돌미역김밥 등이 대표적. 지역 특산물로 만들고 지역 스토리를 담아낸 로컬푸드로 높은 점수를 받았다.
김씨가 포항, 여주 등지의 글로벌 홍보대사를 맡아 자신만의 '팔도김밥' 레시피를 전수하는 것 역시 지자체와 손잡고 음식을 통해 현지 관광산업 발전까지 꾀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씨와 김밥의 인연은 지난 1995년 공대 재학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유럽 무전여행 당시 영국 런던에 있는 일식당에서 주방 보조를 하며 김밥이 일식으로 오해받는 일을 종종 겪었던 그는 김밥을 제대로 알려야겠다고 결심했다.
지난 2011년 도쿄스시아카데미에 입학하며 늦은 일본 유학길에 오른 것도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는 일념으로 보다 체계적으로 스시를 배우기 위해서였다.
이때 김밥의 위상을 재정립하기 위해 레시피를 확립하고 매뉴얼을 마련해야 할 필요성을 절감했다고 한다.
어린 시절 소풍마다 빠지지 않았던 김밥은 엄마의 정성과 손맛이 깃든 '한국인의 소울푸드'로 여겨지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값싸고 간편하게 한 끼를 때우는 분식으로 저평가돼 온 것도 사실.
김 씨는 "스시 요리사는 장인 대접을 해주면서, 김밥 요리사는 '이모님' 정도로 치부하는 것이 현실"이라며 "관련 교육과 자격시험을 통해 김밥 전문가를 양성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외국인들이 쉽게 발음하고 기억할 수 있도록 영어 표기 또한 'GIMBAP'이 아닌 K푸드, K팝을 떠올릴 수 있는 'KIMBOP'으로 바꾸자는 것이 그의 제안이다.
그가 국제 무대에서 유독 강한 면모를 보이는 비결을 묻자, '락(樂)셰프'라는 별명으로 불릴 만큼 '즐거움'을 중시하기 때문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실제로 참가자들과 함께 길이 10m짜리 김밥을 싸는 수업은 '요리'라기 보다는 '놀이'에 가깝다. 이 과정에서 소통하고 공감하면서 김밥에 대한 호감을 쌓은 것이 주효했다.
그는 내년에 UNWTO와 손잡고 한국에서 세계적인 미식 축제를 열고자 생각 중이다.
또 자신의 이름을 내건 김밥 브랜드로 해외 진출을 준비하는 동시에 김밥말이 협동로봇 개발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무인 매장을 열 수 있을 정도로 표준화된 시스템을 구축해야만 김밥이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김 씨는 각계 전문가들로 구성된 '대한민국 김밥 포럼' 상임의장으로서 국회 토론회를 여는 등 연구 활동에도 열심이다.
이날 모교인 서울고에서 재학생을 대상으로 직업·진로 멘토링을 진행한 그는 자신처럼 되고자 하는 후배들에게 무엇보다 다양한 경험을 쌓을 것을 주문했다.
셰프도 '크리에이터'로 거듭나야 하는 시대이기에 무턱대고 요식업에 뛰어들기보다는 세상을 보는 시야를 넓히는 것이 먼저라고 믿기 때문이다.
sunny10@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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