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 노조' 눈치에, 발목 잡힌 '승객 안전'

이민하 기자 2023. 12. 4.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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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8시52분.

열차 운영부터 시설유지보수, 철도 교통관제·운영까지 맡았던 독점적 기관인 코레일의 위상과 역할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철도노조의 강경 대응 예고에 철산법을 포함해 철도 안전체계 개편작업을 차일피일 늦추며 몸을 사리고 있다.

철도업계 관계자는 "연이은 철도사고로 많은 국민이 다치고 열차 지연으로 피해가 생기는데도, 국회와 정부는 정작 철도노조의 눈치를 보느라 핵심 가치인 안전을 뒷전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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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8시52분. 역에 진입하던 열차가 덜컹거리더니 굉음을 내기 시작했다. 지진이 일어난 듯 차체가 떨리더니 궤도를 벗어났다. 불과 1년 전 늦은 퇴근길 일어난 열차 탈선 사고다. 용산발 익산행 무궁화호 열차가 탈선하면서 승객 275명 중 80명이 다쳤다. 사고 여파는 다음날까지 이어졌다. KTX와 서울 1호선 등 열차 178편이 연달아 지연됐다. 차량과 시설 파손으로 생긴 피해액은 21억 8000만원에 달했다. 선로(레일) 안전점검이 부실했던 게 사고원인으로 드러났다. 한국철도공사(코레일)는 6개월 전부터 결함을 발견했지만, 적절한 교체나 정비 조치를 하지 않았다.

3일 국회와 관계기관 등에 따르면 지난해 철도 안전체계 개편을 위해 조응천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이 대표발의한 '철도산업발전기본법'(이하 철산법) 개정안이 1년여째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한 채 표류 중이다.

지난해 12월 통복터널 단전 사고, 11월 무궁화호 탈선, 7월 SRT(수서고속열차) 탈선, 1월 KTX 탈선 등 잇따라 사고가 발생하면서 해당 철산법 개정안이 발의됐지만, 정작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소위)에서 1년여째 안건으로 상정조차 안 된 채 사실상 폐기 수순을 밟고 있다. 오는 5일 올해 마지막 국회 소위에 상정되지 않으면 현실적으로 처리가 어려운 상황이다.해당 개정안은 철도 유지보수업무를 코레일만 독점하도록 한 조항을 없애고, 다른 기관 등이 철도 유지보수 업무를 할 수 있도록 하는 게 골자다. 개정 내용은 간단하다. 현행 철산법 제38조의 '시설유지보수 시행 업무는 철도공사에 위탁한다'는 문장 하나를 삭제하는 게 전부다.

법이 개정되면 철도산업은 과거 철도청 해체 이후 가장 큰 변화를 맞는다. 열차 운영부터 시설유지보수, 철도 교통관제·운영까지 맡았던 독점적 기관인 코레일의 위상과 역할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코레일 외에도 국가철도공단, 제3의 기관 등이 철로 유지보수 업무를 맡을 수 있다.하지만 국회와 정부 모두 철도노조 눈치를 보느라 개정안 처리를 미루고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정치권에서는 내년 총선 앞두고 1만명 넘는 코레일 철도노조의 반대를 의식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철도노조는 앞서 개정안이 통과되면 철도 민영화 수순을 밟게 될 것이라며 총파업을 예고한 바 있다.

주무부처인 국토교통부도 마찬가지다. 철도노조의 강경 대응 예고에 철산법을 포함해 철도 안전체계 개편작업을 차일피일 늦추며 몸을 사리고 있다. 국회에서도 철산법 개정 논의에 앞서 해당 용역 결과를 검토하기로 했다. 그러나 12월이 됐는데도 국토부는 용역 결과와 안전체계 개편을 발표하지 못한 상황이다. 백원국 국토부 제2차관은 지난달 국회 소위에 출석해 "다양한 방안을 검토하고 있고, 어떤 것이 제일 안전상 최적안인가를 고민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철도업계에서는 코레일 독점 구조를 단계적으로 해소하는 절충안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기존에 코레일이 맡았던 유지보수 업무는 효율성을 위해 유지하되 신규 노선, 구간은 철도공단이나 별도 위탁 기관에 맡기면서 업무를 이관하자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철산법 단서 조항을 삭제해 코레일 독점을 해소하되, 하위 시행령·시행규칙에 코레일의 지위를 일부 보장해주는 식의 대안도 나온다.

정부와 국회에서 눈치를 보는 동안 사이에도 철도안전은 위협받고 있다. 올해 들어 열차 탈선사고만 14건 발생했다. 매달 한 번 이상 생긴 셈이다. 철도업계 관계자는 "연이은 철도사고로 많은 국민이 다치고 열차 지연으로 피해가 생기는데도, 국회와 정부는 정작 철도노조의 눈치를 보느라 핵심 가치인 안전을 뒷전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민하 기자 minhari@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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