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차 탈선해도 '안전법 나몰라라' 정부·국회…철도법 폐기하나

이민하 기자 2023. 12. 3.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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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끈 '철산법' 개정안, 이달 5일 국회 마지막 소위 상정·처리 안 되면 사실상 '폐기'
(서울=뉴스1) 신웅수 기자 = 영등포역 부근에서 무궁화호 열차 탈선 사고가 발생한 가운데 7일 오후 서울 영등포역에서 코레일 관계자들이 열차 복구 작업을 하고 있다. 한국철도공사(코레일)는 이날 오후 4시 정상운행을 목표로 복구작업을 펼치고 있다. 사고 복구 시까지 용산역, 영등포역에 모든 열차는 정차하지 않는다. 2022.11.7/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저녁 8시52분. 역에 진입하던 열차가 덜컹거리더니 굉음을 내기 시작했다. 지진이 일어난 듯 차체가 떨리더니 궤도를 벗어났다. 불과 1년 전 늦은 퇴근길 일어난 열차 탈선 사고다. 용산발 익산행 무궁화호 열차가 탈선하면서 승객 275명 중 80명이 다쳤다. 사고 여파는 다음날까지 지속됐다. KTX와 서울 1호선 등 열차 178편이 연달아 지연됐다. 차량과 시설 파손으로 생긴 피해액은 21억 8000만원에 달했다. 선로(레일) 안전점검이 부실했던 게 사고원인으로 드러났다. 한국철도공사(코레일)는 6개월 전부터 결함을 발견했지만, 적절한 교체나 정비 조치를 하지 않았다.

3일 국회와 관계기관 등에 따르면 지난해 철도 안전체계 개편을 위해 조응천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이 대표발의한 '철도산업발전기본법'(이하 철산법) 개정안이 1년여째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한 채 표류 중이다.

지난해 12월 통복터널 단전 사고, 11월 무궁화호 탈선, 7월 SRT(수서고속열차) 탈선, 1월 KTX 탈선 등 잇따라 사고가 발생하면서 해당 철산법 개정안이 발의됐지만, 정작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소위)에서 1년여째 안건으로 상정조차 안 된 채 사실상 폐기 수순을 밟고 있다. 이달 5일 올해 마지막 국회 소위에 상정되지 않으면 현실적으로 처리가 어려운 상황이다.
철산법 개정안 코레일 유지보수업무 독점 단서 조항 삭제 핵심
해당 개정안은 철도 유지보수업무를 코레일만 독점하도록 한 조항을 없애고, 다른 기관 등이 철도 유지보수 업무를 할 수 있도록 하는 게 골자다. 개정 내용은 간단하다. 현행 철산법 제38조의 '시설유지보수 시행 업무는 철도공사에 위탁한다'라는 문장 하나를 삭제하는 게 전부다.

법이 개정되면 철도산업은 과거 철도청 해체 이후 가장 큰 변화를 맞는다. 열차 운영부터 시설유지보수, 철도 교통관제·운영까지 맡았던 독점적 기관인 코레일의 위상과 역할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코레일 외에도 국가철도공단, 제3의 기관 등이 철로 유지보수 업무를 맡을 수 있다.

2003년 철도구조개혁 이후 철도시설 유지보수 업무는 철도공단의 역할이다. 열차 운행은 코레일이, 철도 건설·유지보수는 철도공단으로 분리됐다. 다만 이 과정에서 '철도 민영화'를 우려했던 철도노조의 반대에 부딪혔다. 철도 운영자인 코레일이 유지보수까지 맡아야 한다는 요구가 받아들여지면서 해당 '독점 위탁' 단서 조항이 달렸다.
'총파업' 예고한 철도노조 눈치 보는 국회·정부…국토부, 안전용역 결과·안전체계 개편안 발표도 못 해
(서울=뉴스1) 이동해 기자 = 전국철도노동조합 조합원들이 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인근에서 철도노동자 총력결의대회를 열고 민영화 촉진법 반대를 촉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23.11.7/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국회와 정부 모두 철도노조 눈치를 보느라 개정안 처리를 미루고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정치권에서는 내년 총선 앞두고 1만명 넘는 코레일 철도노조의 반대를 의식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철도노조는 앞서 개정안이 통과되면 철도 민영화 수순을 밟게 될 것이라며 총파업을 예고한 바 있다.

주무부처인 국토교통부도 마찬가지다. 철도노조의 강경 대응 예고에 철산법을 포함해 철도 안전체계 개편작업을 차일피일 늦추며 몸을 사리고 있다. 당초 국토부는 앞서 보스턴컨설팅그룹(BCG)에 발주한 '철도안전체계 심층진단 및 개선방안 연구' 용역 결과를 올해 7~8월 중 발표하고, 안전체계 개편을 추진할 예정이었다. 국회에서도 철산법 개정 논의에 앞서 해당 용역 결과를 검토하기로 했다. 그러나 12월이 됐는데도 국토부는 용역 결과와 안전체계 개편을 발표하지 못한 상황이다. 백원국 국토부 제2차관은 지난달 국회 소위에 출석해 "다양한 방안을 검토하고 있고, 어떤 것이 제일 안전상 최적안인가를 고민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해당 연구용역 결과는 코레일에 유지보수 업무를 독점 위탁하는 철산법 단서 조항을 삭제해야 한다는 것으로 알려졌다. 코레일이 유지보수를 독점 수행토록 하는 철산법 조항 때문에 시설관리 업무가 부적절하게 파편화되고, 안전관리 사각지대가 생긴다는 분석이다. 또 안전체계 개편은 코레일의 관제·유지보수 업무를 철도공단으로 이관이 바람직하지만, 철저한 준비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에 당분간 코레일에 둔 채로 조직혁신 및 안전관리를 우선 추진해야 한다는 결론을 낸 것으로 전해졌다.
코레일 독점 구조 단계적 해소 '절충안'도 나와
철도업계에서는 코레일 독점 구조를 단계적으로 해소하는 절충안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기존에 코레일이 맡았던 유지보수 업무는 효율성을 위해 유지하되 신규 노선, 구간은 철도공단이나 별도 위탁 기관에 맡기면서 업무를 이관하자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철산법 단서 조항을 삭제해 코레일 독점을 해소하되, 하위 시행령·시행규칙에 코레일의 지위를 일부 보장해주는 식의 대안도 나온다.

정부와 국회에서 눈치를 보는 동안 사이에도 철도안전은 위협받고 있다. 올해 들어 열차 탈선사고만 14건 발생했다. 매달 한 번 이상 생긴 셈이다. 철도업계 관계자는 "연이은 철도사고로 많은 국민이 다치고 열차 지연으로 피해가 생기는데도, 국회와 정부는 정작 철도노조의 눈치를 보느라 핵심 가치인 안전을 뒷전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민하 기자 minhari@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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