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태로운 10대女, 맘대로 할수있다며?”…우울증갤러리서 무슨 일이 [저격]

권선미 기자(arma@mk.co.kr) 2023. 12. 2. 0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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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범죄 이미지[자료=연합뉴스]
[저격-4] “정신적으로 불안한 예쁜 10대 찾으려면 어디로 가야 해? 가족이랑 떨어져 있어서 외로움 타고 자기 인생 망했다고 생각하는 애 없나? 몸에 문신 있으면 좋고 우울증 같은 정신질환 있는 미성년자 만나면 성적 판타지 전부 시도해볼 수 있다던데.”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이처럼 성적(性的) 목적으로 정신적으로 불안한 미성년자를 찾는 글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우울증이 있는 중학생 자녀가 우울증 커뮤니티, 정신병 커뮤니티, 히키코모리 커뮤니티 등에 가입해 그곳에서 활동하는 사람들과 하루종일 연락하고 직접 만나기도 합니다. 정작 학교 친구들과는 대화가 안 통한다며 멀리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이렇게 우울증을 겪고 있는 미성년자 자녀를 둔 부모들의 걱정 어린 글도 심심찮게 올라옵니다.

일부 성인들은 왜 굳이 이렇게 정신적으로 취약한 미성년자들을 대상으로 자신의 성적 욕망을 해결하려고 하는 걸까요. 미성년자 성착취 관련 법이 허술하기 때문일까요?

끊이지 않는 디시인사이드 우울증갤러리 미성년자 성착취
“인생 허비하지 말고 (디시인사이드) 우울증갤러리를 접어라.”

올해 4월 서울 강남의 한 빌딩 옥상에서 한 10대 여학생이 투신하는 장면을 SNS로 생중계하는 충격적인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위 말은 여학생이 투신 직전 남긴 것입니다.

여학생은 몇번을 망설이는 모습을 보였지만 결국 투신했는데, 디시인사이드 우울증갤러리에서 일종의 ‘그루밍(길들이기)’과 함께 정서적·신체적 학대와 성착취를 당했다고 합니다.

우울증을 겪는 여학생
디시인사이드는 국내 최대 규모 온라인 커뮤니티로,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있는데 그 중 ‘우울증’을 주제로 하는 게시판(갤러리)도 있습니다.

사고 당일 여학생은 우울증갤러리에 동반자살을 할 사람을 구한다는 글을 올렸고, 한 20대 남성이 여학생에게 연락해 투신 계획을 모의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그러나 남성은 마음이 변했다며 도망쳤고, 여학생 혼자 강남의 한 빌딩 19층 옥상에 올라 투신 사망했습니다. 이후 해당 남성은 자살방조 및 자살예방법 위반 혐의로 입건됐습니다.

디시인사이드 ​우울증갤러리는 미성년자 성착취가 끊이지 않는 문제의 장소로 전락한지 오래입니다.

지난 6월 A씨(27)는 디시인사이드 우울증갤러리에서 중학생 B양(14)을 알게 됐습니다.

A씨는 경기도 부천에 있는 모텔과 만화카페에서 2차례 부적절한 관계를 가졌고, ‘후기’라며 9차례에 걸쳐 성관계 내용이 담긴 글을 온라인에 올렸습니다.

검찰은 수사 과정에서 A씨가 우울증갤러리에서 만난 또다른 10대 여학생의 극단적 선택을 방조한 혐의도 밝혀냈습니다. 검찰은 A씨를 미성년자 의제 강간과 자살방조 혐의로 재판에 넘겼습니다.

재판부는 A씨에게 징역 6년을 선고하고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40시간 이수를 명령했습니다. 또 출소 후 5년 동안 아동·청소년 관련 기관에 취업하지 못하도록 명령했습니다.

지난 7월 온라인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의 우울증갤러리를 고리로 만나 특정 지역에서 함께 생활하며 미성년자 대상 범죄를 저질렀다는 의혹을 받는 이른바 ‘신대방팸’ 멤버 2명(왼쪽 박모씨, 맨오른쪽 김모씨)이 5일 오전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리는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자료=연합뉴스]
이뿐만 아니라 미성년자 성착취를 하려 우울증갤러리를 중심으로 한 ‘신림팸’ ‘신대방팸’ 등 조직적 모임이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이 외에도 디시인사이드 우울증갤러리에서 만난 미성년자에게 성폭력을 가해 전과자가 된 이들에 대한 뉴스는 숱하게 볼 수 있습니다.

디시인사이드 우울증갤러리는 어쩌다 이렇게 전락했나
디시인사이드 우울증갤러리에 접속하면 이러한 문구가 뜹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아동·청소년 이용자 보호 조치 권고에 따라 게시물, 댓글에 대한 모니터링과 제재 조치가 강화됩니다. 디시인사이드 관리자 외 경찰 등 수사기관과 각 관계기관의 모니터링이 계속 이어질 예정입니다. 청소년에 대한 착취, 성범죄, 자살 방조·동조, 약물 권유 등 각종 유해한 글을 작성하거나 불법정보를 유통할 경우 범죄 행위로 강력히 처벌받을 수 있음을 유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해당 갤러리의 개설 목적은 ‘공감과 위안’이었으나 실제로는 극단적 선택과 성범죄의 시초가 되는 공간으로 변질되면서 “우울증갤러리를 폐쇄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율 규제 강화’만 강조하고 잇따른 범죄에 대한 근본 해법은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우울증갤러리는 ‘그루밍 성범죄’에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습니다.

그루밍 성범죄는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호감을 얻어 돈독한 관계를 형성하며 심리적으로 지배한 뒤 성폭력을 가하는 것을 뜻합니다.

우울증 그루밍
보통 성인이 미성년자를 정신적으로 길들인 뒤 이뤄지기 때문에 그루밍 성범죄 피해자들은 피해 당시 자신이 성범죄 대상이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울증갤러리는 ‘공감과 위안’이라는 핑계로 성인이 우울증세 등 정신적으로 약해져 있는 미성년자를 꼬드겨 호감과 신뢰를 얻기에 좋은 공간입니다.

미성년자가 부모와 관계 형성이 잘 되어 있고 경제적으로도 안정된 경우라면 비교적 쉽게 병원과 심리치료를 병행할 수 있겠지만, 우울과 불안증세가 심한 미성년자들은 보통 안정적이지 못한 가정 환경에 놓여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부모에게도 말하기 어렵고 심리치료나 병원 치료도 어려운 경우, 가장 쉽게 속내를 털어놓을 수 있는 온라인에 자신의 사정을 작성하게 됩니다.

가해자들은 디시인사이드 우울증갤러리에서 이런 미성년자들을 먹잇감 낚시하듯 낚아 올리는 것입니다.

미성년자 성범죄, 처벌은 어떻게 되나
그렇다면 우리나라 미성년자 성범죄에 대한 처벌이 가벼워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현행법상 미성년자 성범죄에 대한 처벌은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은 법적으로 만 13세 미만의 어린이 및 초등학생과 만 13세 이상에서 만 19세 미만의 청소년 및 중·고등학생이 주요 대상입니다.

이 법에 따라 어린이와 청소년은 성범죄 등 범죄에서 국가의 엄격한 보호를 받게되며 이를 어길 경우 법 조항에 따라 가해자는 중형에 처해집니다.

강제추행의 경우 성인을 상대로 하면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지지만, 미성년자를 상대로 하면 2년 이상의 유기징역 또는 1000만~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집니다.

[자료=연합뉴스]
미성년자와 성매매를 했다면 1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습니다.

폭행 또는 협박으로 미성년자를 강간한 사람은 무기징역 또는 5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유사강간 행위는 5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합니다.

강간 대상이 13세 미만이면 무기징역 또는 10년 이상의 징역형, 유사강간의 경우 7년 이상 유기징역이 선고됩니다.

성인이 16세 미만의 미성년자와 성관계를 하면 합의 여부를 불문하고 강간죄로 형사처벌합니다.

미성년자를 상대로 성범죄를 저지른 경우 전자발찌, 신성정보 공개 및 고지, 화학적 약물 투약 등 보안처분이 강력하게 적용될 수 있습니다.

향후 사회생활이 불가능해진다고 봐도 무방한 정도입니다.

우울한 미성년자에게 필요한 것은 커뮤니티 아닌 병원과 심리치료
우울한 미성년자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우울증갤러리에서 얻는다는 ‘거짓 공감과 위안’이 아닌, 병원 치료와 전문가의 심리상담입니다.
[자료=이미지투데이]
한 교사 출신 임상심리상담사는 “심리적으로 취약한 미성년자를 위해 병원 치료 문턱을 낮추고 상담 창구를 정부 차원에서 크게 활성화해야 하지 않는 한, 미성년자들은 온라인밖에 의지할 곳이 없기 때문에 그루밍 성범죄를 멈추기 어려울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루밍 성범죄로부터 미성년자를 보호하려면 이러한 갤러리를 폐쇄해 범죄를 근절해야 한다”며 “심리상담 전문가들이 운영하는 사이트를 활성화해 미성년자들이 전문 상담을 자유롭게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이들을 보호해야 한다”고 제언했습니다.

청소년을 위한 상담 공간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교육부가 365일 24시간 운영하는 청소년 모바일 상담센터 ‘다들어줄개’라는 SNS상담시스템이 있습니다.

‘다들어줄개’ 애플리케이션을 다운 받거나 ‘1661-5004’ 문자, ‘다들어줄개’ 카카오톡 플러스친구 추가, 페이스북 ‘다들어줄개’ 페이지 메시지 상담 등이 가능합니다.

다들어줄개 [자료=대한민국 정책브리핑 홈페이지]
그런데도 미성년자들은 디시인사이드 우울증갤러리로 몰려갑니다. 왜 그럴까요?

상담의 질이 우수하고 가슴 속에 쌓인 고민과 우울이 해소된다면 아이들이 우울증갤러리를 찾을까요?

‘다들어줄개’는 365일 24시간 상담을 해야 하는 만큼 3교대 근무를 해야 합니다.

밤샘 근무 등 근무가 쉽지 않은데, 상담자를 2년 계약직으로 뽑아 업무에 익숙해지고 전문성을 갖추게 될 쯤에는 퇴직해야 합니다.

현행법상 2년 이상 계약을 연장하면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하기 때문에 2년씩 ‘끊어치기’ 꼼수를 쓰는 것입니다.

또 해당 센터는 ‘상담자원봉사자’를 뽑습니다. 심리적으로 힘들어하는 청소년들을 무료로 상담하라는 것입니다.

[자료=이미지투데이]
봉사자 지원자격은 이렇습니다.

△교사 △관련학과(사회복지학·교육학·심리학·상담심리학·아동학·청소년학 등) 학사 졸업 후 청소년 상담 관련 상담 경험 2년 이상 또는 상담 관련 자격증(한국상담학회·한국상담학회·한국임상심리학회·청소년상담사·청소년지도사·사회복지사) 소지자 △관련 학과 석사 재학 2학기 이상 △상담(면접·전화·채팅) 및 위기 상담 경력자 우대.

이런 고급 인력을 ‘봉사’라는 명목으로 공짜로 쓰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러니 질 높은 상담이 이루어지는지는 미지수입니다.

전문 상담인력의 처우 개선을 통해 미성년자를 위한 상담센터를 발전시키는 것이 제2·제3의 우울증갤러리 성범죄를 원천 차단하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9년차 ‘사건 기자’입니다. 사회부에서 온갖 사회 이슈를 다루며 스나이퍼 역할을 해왔습니다. 다른 곳에선 볼 수 없는 단독보도와 핫이슈의 속깊은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기자 페이지를 구독해주세요. 이슈에 대한 독자 여러분의 궁금증을 속시원히 꿰뚫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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