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준은 노스트라다무스… ‘정보의 바다’ 인터넷과 유튜브 시대 예견했다

백수진 기자 2023. 12. 1. 03:01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영화 ‘백남준: 달은 가장 오래된 TV’는 백남준이 비디오를 만나기 전, 인생의 전반부를 특히 주목한다. 어맨다 킴 감독은 “한국의 역사를 통해 백남준의 관심사를 설명하기 위해 많은 시간을 들였다. 그는 ‘왜 의사소통이 중요한가’ ‘우리는 어떻게 언어를 초월할 것인가’ 같은 문제를 평생 고민했다”고 했다. /엣나인필름

한국의 부채춤부터 탭댄스, 북 치는 인디언까지. 세계 각지의 춤과 음악을 이어 붙인 영상 작품 ‘글로벌 그루브’에서 백남준은 이렇게 선언했다. “이 영상은 미래의 풍경을 보여준다. 당신은 지구 상의 모든 방송국 채널을 골라 볼 수 있고, 편성표는 전화번호부처럼 두꺼워질 것이다.”

6일 개봉하는 다큐멘터리 ‘백남준: 달은 가장 오래된 TV’는 유튜브 시대를 예견한 노스트라다무스로 백남준을 그린다. 비디오 아트 거장 백남준(1932~2006)을 다룬 최초의 영화로 해외에서 먼저 주목을 받았다. 올해 미국 선댄스 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된 데 이어, 영국 일간 가디언이 선정한 ‘올해의 영화’에도 이름을 올렸다. 서면으로 만난 어맨다 킴(33) 감독은 “백남준은 아무도 모르는 세계를 열어 보는 작업에 늘 관심을 가졌다. 꾸준히 신문을 읽었고, 기술, 주식시장, 사업 분야의 최신 정보를 계속해서 모았다”고 했다. “백남준은 언제나 세상의 패턴을 읽었고, 우리가 어디로 향하는지 알고 있었죠.”

어맨다 킴 감독. /엣나인필름

6년 전, 어맨다 킴은 불상이 TV 속 자신의 모습을 응시하는 ‘TV 부처’(1974)를 보고 ‘셀카’를 찍는 우리의 모습을 발견했다. 그때부터 박물관이나 인터넷에선 찾을 수 없는 백남준의 정보를 수집하며 그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5년 동안 방대한 양의 신문 기사, 작품 영상, 관련 기록을 수집하고 백남준과 교류했던 세계적인 예술가들을 인터뷰해 영화를 완성했다. “이 프로젝트가 어려웠던 건 백남준이 진정한 ‘글로벌 노마드’였기 때문이었어요. 관련된 자료가 온갖 언어로 세계 각지에 숨어 있었죠. 어떤 내용인지도 모르는 채 추측만으로 낡은 비디오 테이프들을 찾아 헤맸습니다. 많은 자원과 협업, 끈기가 필요한 길고 고된 글로벌 프로젝트였어요.”

백남준의 작품 'TV부처'. /엣나인필름

영화 전반엔 백남준이 직접 쓴 글이 배우 스티븐 연의 내레이션으로 깔린다. 일제강점기 집에선 한국어, 학교에선 일본어를 써야 했던 어린 시절과 개발도상국 출신의 이방인으로 매일 소통의 문제를 고민했던 청년 백남준을 만나게 된다. 어맨다 킴 감독은 “그에게 비디오는 또 하나의 의사소통 수단이었다”고 짚었다. “백남준은 에스페란토어(국제공용어)를 만들고 싶다고 했었죠. ‘데이비드 앳우드와의 실험’이라는 작품을 처음 봤을 때, 마치 새로운 언어의 탄생을 보는 듯 강렬했습니다. 그가 전 세계와 소통하기 위해 사용했던 새로운 시각(visual) 언어의 씨앗을 발견한 느낌이었어요.”

한국계 미국인인 어맨다 킴 감독은 변호사인 아버지를 따라 미국과 일본, 한국을 오가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미국 브라운대에서 비교문학을 전공하고 뉴미디어 언론사 ‘바이스 미디어(Vice Media)’에서 짧은 영상들을 만들며 경력을 쌓았다. “많은 나라에서 살았지만, 저 역시 ‘진짜 내 집이 어디인가’라는 질문에 쉽게 대답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다양한 문화 속에서 두려움 없이 자신만의 길을 개척한 백남준과 유대감을 느꼈고 그의 이야기에서 큰 영감을 얻었어요.”

'백남준: 달은 가장 오래된 TV' 스틸컷. /엣나인필름

백남준의 친구·가족, 박서보·마리나 아브라모비치 등 세계적인 예술가들의 인터뷰로 그의 삶을 다각도로 조명한다. 어맨다 킴은 “백남준과 함께했던 사람들은 하나같이 개성이 뚜렷하고 재능이 넘쳤다”고 했다. 가장 인상 깊었던 인터뷰는 백남준 회고전을 기획했던 휘트니 미술관 전 관장 데이비드 로스. “백남준이 한밤중에 로스 전 관장에게 전화를 걸어 ‘우리는 바다 위 배에 있고, 해안이 어디인지도 모른다’라고 하더래요. 정보의 바다, 인터넷에 대한 얘기였죠. 백남준은 모든 것이 끊임없이 변하고 있으며 우리는 개인의 철학이나 이념을 해체하고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습니다.”

미술사가 에디트 데커 필립스는 “백남준은 나를 평생 바쁘게 만든 사람”이라고 회고했다. 어맨다 킴은 “백남준은 반듯한 상자에 집어넣을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다양한 문화와 매체 사이 사이에 존재하기 때문에 쉽게 분류할 수가 없다”고 했다. “백남준은 항상 우리의 고정관념을 깨고, 끊임없이 다시 생각하게끔 하죠. 영화를 본 관객도 백남준을 통해 무한한 형태의 영감을 얻어가길 바랍니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