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론 머스크도 결국 실패했나…자취 감춘 '태양광 예찬론' [김리안의 에네르기파WAR]
※[김리안의 에네르기파WAR]는 에너지 분야 소식을 국가안보적 측면과 기후위기 관점에서 다룹니다.
먹구름 드리운 태양광 업계-上
2016년 가을밤,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유니버설스튜디오에서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무대에 올랐다. 대중에게 자신이 구상한 미래형 주택을 선보이기 위해서였다. 머스크 뒤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에는 테슬라 전기차 두 대가 주차된 차고와 흰색 페인트칠이 된 목조주택의 모습이 나타났다.
머스크는 "차고에 설치된 파워월(테슬라의 가정용 에너지저장장치)을 통해 전기차 배터리가 충전된다"며 "파워월에 저장될 전기는 형형 색깔의 지붕 타일에 내장된 태양광 패널에서 만들어진다"고 설명했다. 지붕형 태양광 발전기 '솔라루프'가 공개된 역사적인 날이었다. 그해 태양광 기업 솔라시티를 26억달러에 인수한 머스크는 관련 사업부를 '테슬라 에너지'로 재편했다.
7년만에…머스크의 태양광 예찬론이 사라졌다
7년이 지났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최근 "한때 범(凡)테슬라 전략의 핵심축이었던 태양광 사업은 점점 더 뒷전으로 밀려나고 있다"고 보도했다. 테슬라의 올해 3분기 실적 발표에서는 '태양광'이나 '에너지 발전'에 관한 언급은 단 한 차례도 없었다. 지난해 솔라루프의 설치 건수는 목표치(주당 1000건)에 한참 모자라는, 주당 평균 21건에 불과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테슬라 에너지만의 문제가 아니다. 2021년 시가총액이 200억달러를 찍었던 주택용 태양광 기업 선런은 최근 시총이 24억달러대까지 주저앉았다. 올해 들어 현재까지 주가는 50% 가량 빠졌다. 선런은 2020년 경쟁사 비빈트를 32억달러에 인수한 거래와 관련해 최근 12억달러 규모의 영업권 상각을 발표하기도 했다. 또 다른 태양광 업체 선파워, 선노바 등도 올해 주가가 각각 70%, 40%씩 폭락했다.
태양광 산업도 풍력 산업처럼 고금리와 비용 인플레이션 등의 여파를 비켜 가지 못했다. 이와 관련해 프린시펄 자산운용의 마틴 프랜센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풍력, 태양광 등 녹색주 전반에 자본 경색의 먹구름이 드리워져 있다"고 말했다. 신재생에너지 분야는 대형 프로젝트에 막대한 투자금이 필요하고, 사업 초기에 전력 판매 가격을 장기로 고정해놓은 탓에 금리 상승에 특히 취약하다. 최근 선파워와 넥스트에라 에너지 등 태양광 기업들은 긴축 기조를 원인으로 꼽으며 성장 전망치를 잇달아 하향 조정했다.
가정용 소규모 태양광 패널도 대출받아 설치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주택 소유주(개인)들은 높은 이자율 비용으로 늘어나는 빚에 더욱 민감할 수밖에 없다. 미국 내에서 태양광 수요가 가장 많은 캘리포니아에서 패널 설치 관련 인센티브를 삭감할지도 모른다는 우려도 태양광 업계를 얼어붙게 만들었다. 에너지 컨설팅 기업 우드맥켄지와 태양광산업협회(SEIA)에 따르면 지난해까지만 해도 연간 성장률이 40%에 달했던 미국 내 주택용 옥상 태양광 시장은 올해는 9%로 대폭 축소될 전망이다.
일각에서는 신재생에너지 종목 투자자들이 태양광 설비 가격이 하락한 '호재'를 주가에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불만도 제기됐다. 선노바의 최고경영자(CEO) 존 베르거는 "태양광 설비 비용 하락이 높아진 자금 조달 비용을 상쇄하는 데 도움이 되고 있다"며 "주주들은 우리가 장비 비용 하락분만큼 판매 전력의 가격(수익성)이 인상했다는 점을 못 보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제조사들은 저가 중국산 때문에 우는데…태양광 업계의 동상이몽
태양광 정보 제공업체 레벨텐(LevelTen)의 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 3분기 북미 지역 태양광 가격은 2분기 보다 4%, 전년 동기 대비 21% 상승했다. 반면 태양광 부품 가격은 지난해 사상 최고치에서 떨어졌다. 미국 에너지부는 올해 8월 보고서에서 "폴리실리콘 현물 가격이 4월 중순부터 7월 중순 사이에만 약 70% 하락했다"고 밝혔다. 태양광 모듈 가격도 공급 과잉과 특정 원자재 가격 하락 등으로 인해 하락했다. 선노바 임원의 주장은 부품 비용이 하락한 만큼 자신들에는 호재라는 논리다.
이 지점에서 태양광 공급망 기업과 시설 사업체 간 동상이몽이 확인된다. 태양광 업계의 또 다른 '곡소리'는 바로 중국산 저가 부품의 가격 경쟁력에 밀려 파산 위기에 내몰리는 제조사들로부터 나오고 있다는 점에서다. 태양광 산업의 가치사슬은 폴리실리콘(소재)-잉곳·웨이퍼(부품)-셀(태양전지)-모듈(패널)로 구분된다. 현재 폴리실리콘에서 모듈로 이어지는 공급망 전 단계에서 중국 기업들이 차지하는 비중은 최소 80%에 이른다.
유럽은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세계 최대 태양광 제조기업들이 즐비했으나, 국가 주도로 성장한 중국 기업들의 공세에 밀려 그 자리를 빼앗겼다. 유럽의 태양광 무역 단체인 솔라파워유럽은 최근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에 서한을 보내 "역내 급증하는 재고, 중국 제조업체들이 유럽에서 시장 점유율을 확보하기 위해 벌이는 출혈경쟁 등이 맞물려 태양광 모듈 가격이 연초 이후 평균 4분의1 이상 급락했다"고 호소했다.
EU는 2012년 불공정 경쟁을 제한하기 위해 중국산 태양광 패널에 반덤핑 관세를 부과했다. 하지만 중국산 없이는 신재생에너지 목표 달성이 어려워지자 2018년 해당 관세를 없앤 후 지금까지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솔라파워유럽에 따르면 현재 유럽의 태양광 패널 제조 단가는 중국의 2배 이상으로 추정된다. 이로 인해 잉곳 제조사 노르웨이 크리스탈이 최근 파산 신청을 하는 등 유럽 기업들은 줄도산 위기에 몰렸다. 잉곳·웨이퍼 생산업체 노르선은 연말까지 생산을 전면 중단키로 했다.
유럽 태양광 제조업계 임원들은 "EU 당국이 최근 몇년 새 지정학적 긴장 고조 이후 유럽 기업들에 디리스킹(중국으로부터의 공급망 탈위험화)를 촉구했으면서도 해당 관세 조치를 복구하지 않았다"고 비판하고 있다. 스위스의 마이어버거, 독일의 헤커트 솔라 등 유럽 내 40여개 태양광 설비 제조업체에 따르면 현재 유럽에 쌓여 있는 중국산 태양전지 재고량은 유럽 전체의 연간 수요량의 두 배를 웃돈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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