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수급자 생활은 끝났지만…"가난이 오장육부에 달라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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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생.
그러니까 올해로 스물 여섯살인 안온은 2019년까지 20여년간 기초생활수급자였다.
지금은 수급자 생활을 탈피했지만, 가난을 탈피하지는 못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의 가난은 또한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주공아파트, EBS 교재 지원, 방학 중 우유 급식 지원, 민간 장학회의 활동 등 사회복지와도 얽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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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송광호 기자 = 1997년생. 그러니까 올해로 스물 여섯살인 안온은 2019년까지 20여년간 기초생활수급자였다. 지금은 수급자 생활을 탈피했지만, 가난을 탈피하지는 못했다고 말한다.
스무살부터 시작한 학원강사 일에 이력이 붙어 월 소득은 높아졌다. 그러나 20년간 "오장육부에 붙은 가난은 쉬이 떨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남들만큼만 돈을 벌면 (가난이) 씻길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고 그는 고백했다.
여성 청년 안온이 쓴 '일인칭 가난'(마티)은 저자가 경험한 가난의 나날들을 기록한 에세이다. 알코올 중독에 시달리는 아버지와 무릎을 다친 엄마, 그리고 남들과 비교하며 열등감에 시달렸던 자신의 이야기를 다소 건조한 문장으로 적어 내려간다.
책에 따르면 가난에도 급이 있다. 기초생활수급자처럼 제도권 안에 들어오느냐, 그렇지 않으냐에 따라 그 격차는 크다고 한다. 저자가 자신이 경험한 가난을 '일인칭 가난'이라고 밝힌 이유다.
그의 가난은 남들과 비교는 할 수 있는 '상대적 가난'에 속한다. 예를 들면 이런 가난이다. 친구를 집에 초대할 수 없는 가난, 추운 겨울 수도관 동파를 걱정해야 하는 가난, 연탄 한장과 소주 두병이 담긴 검은 비닐봉지를 들고 산동네를 오르내리는 아버지들의 가난, "여긴 변한 게 없네. 우리 집 못살았을 때 나도 여기 잠깐 살았는데"라는 남자 친구의 말에 헤어질 결심을 한 가난….
그러나 그의 가난은 또한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주공아파트, EBS 교재 지원, 방학 중 우유 급식 지원, 민간 장학회의 활동 등 사회복지와도 얽혀 있다. 그는 복지 정책 덕택에 조금이나마 사교육을 받을 수도 있었다. 저자가 "고학력이 살길"이라는 마음이라도 먹을 수 있었던 건 정부 지자체의 여러 지원이 있었던 덕이 크다.
"세 식구의 생활비는 수급비로 충당하고, 엄마가 버는 월급의 상당액이 나의 학원비로 쓰였다. 엄마는 나를 긁지 않은 복권이라고 생각했던 걸까? 아니면 엄마의 결핍을 채워보려는 악다구니였을까?"
저자는 이를 악물고 공부했다. 일단 엄마와 아빠 곁을 벗어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는 지방의 한 국립대 국어국문과에 장학생으로 입학했다. 장학생 기준을 맞추려면 학점 3.1 이상(4.3 만점)을 받아야 했고, 생활비를 벌려면 3~4개의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다. 공부와 일을 병행하기가 만만치 않았다. 시험 기간에는 거의 잠을 자지 않고 공부했고, 과외, 고깃집 알바 등 닥치는 대로 일했다. 그렇게 일하고, 공부하면서 그는 대학원까지 마칠 수 있었다.
돌이켜 생각하면 힘겨운 나날이었다. 열아홉의 어느 날, 술에 취해 거실 겸 큰 방에서 잠든 아빠를 피해 작은방에 우두커니 앉아 저자는 문고리에 허리띠를 걸고 자살하는 사람들을 생각했다고 한다.
"왜 하필 이런 가족일까. 왜 하필 이런 방구석일까. 왜 하필 딸일까. 왜 하필 1997년에 태어났을까. 왜 하필 부산이었을까. 왜 하필 나일까. 왜, 도대체 내가 왜, 가난을 베개로 베고 비참함을 이불로 덮어야 할까…."
허리띠에 손이 닿기 전, 농담처럼 백석의 시집이 떨어졌다. 죽고 싶은 와중에도 책이 구겨지는 게 싫어 저자는 책을 문댔다. 그러다가 우연히 '흰 바람벽이 있어'(1941)란 시를 읽었고, 그 시는 그때부터 저자의 기도문이 됐다고 한다.
"나는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살아가도록 태어났다…하늘이 이 세상을 내일 적에 그가 가장 귀해하고 사랑하는 것들은 / 모두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그리고 언제나 넘치는 사랑과 슬픔 속에 살도록 만드신 것이다."
168쪽.
buff27@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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