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뮤어트레일] 길의 끝에서, 다시 길 위에 서다

김영미 여행작가 2023. 11. 30. 0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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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홀로 세계여행]
(3) 레즈 메도~요세미티
클라우드 레스트 피크에 서면 요세미티의 상징인 하프돔을 위에서 바라보며 아래로는 요세미티 밸리가 펼쳐지는 장엄한 풍광에 압도당한다.

꿀맛 같은 휴식시간 중에도 마음 한편은 쓸쓸했다. 이제 다시 산으로 간다. 맘모스로 가는 버스 안에서 보는 풍광은 아름답다. 내일부터는 저 길을 다시 걸어야 한다. 행복 끝! 고생 시작! 그래도 가슴이 떨리는 건 뭘까?

가져 갈 음식과 가스를 구입하고 나니 해가 기울었다. 캠핑장도 시간이 늦어서 오피스에 직원이 없다. 온라인으로 예약과 체크인을 하고 텐트를 치고 나니 세상은 어둠에 갇혀 있다.

그래도 밥은 먹어야지. 저녁은 다시 라면이다. 내 삶에 존뮤어트레일을 걸을 때처럼 많은 라면을 먹은 적은 없었다.

며칠 만에 텐트에 누우니 맘이 편하다. 나는 텐트 체질인가? 새벽 일찍 일어나 오피스에 가보니 밤에 캠핑장 담당자가 다녀갔는지 체크인이 되었다는 메시지와 함께 화장실, 샤워실 출입카드를 벽에 붙여두었다. 덕분에 산으로 가기 전에 샤워도 했다.

선라이즈 하이 시에라 캠핑장으로 가는 길은 아름다운 초원이 펼쳐진다.

레즈 메도~도나휴 패스

맘모스 타운에서 셔틀버스로 들머리인 레즈 메도Reds Meadow 캠핑장으로 이동했다. 레즈 메도에는 몇몇 트레커들이 금쪽같은 휴식시간을 보내고 있다. 샤워실도 있고 전기 충전도 가능하고 중간보급소로도 아주 유용한 곳이다. 엎드려서 자고 있는 사람을 보니 남의 일 같지 않다.

레즈 메도부터는 존뮤어트레일에서 사람도 자주 만난다. 대부분 남진을 하는 사람들이다. 역시 북진으로 걷는 사람은 별로 없다. 게다가 우리는 너무 일찍 트레킹을 시작했다. 이번에 걸어보니 8월 10일 전후에 트레일을 시작하는 것이 좋겠다. 9월엔 날씨가 추워지니 아무래도 장비가 무거워질 것 같다. 존뮤어트레일을 걷는 사람들을 만나면 서로 반가운 마음에 인사를 하고 각자 궁금한 사항을 물어보고 알고 있는 정보를 나눈다.

모기도 점점 많아진다. 모기 기피제를 뿌리니 한결 살 만하다. 개울도 건너고 눈길도 걷지만 지난주에 비해서 한결 편하다. 이런 정도로만 요세미티까지 걸으면 좋겠다.

리터산의 완벽한 반영을 선물하는 가넷호수.

글래디호수Glady Lake를 시작으로 로살리에Rosalie, 섀도Shadow, 가넷Garnet, 루비Luby, 에메랄드Emerald 그리고 천섬Thousand Island까지 유명한 호수만 7개, 이름이 없거나 모르는 호수는 수없이 많다. 눈이 많으니 호수도 많다. 섀도 레이크는 고요와 어우러진 반영이 무척 아름다워 말을 잊는다. 섀도 크릭을 지나니 계속 오르막이지만 걸을 만하다. 다시 눈길을 만났지만 이전에 걸었던 길에 비하면 너무 평이하다. 눈길이 끝나고 너덜길이 이어지고 고도가 높아지니 멋진 풍광이 펼쳐진다. 드디어 가넷호수. 가넷호수 캠핑장은 존뮤어트레일의 10대 캠핑장의 하나로 풍광이 아름답다. 바람이 부는데도 반영이 참 아름답다. 모든 예술의 끝은 원초적인 자연이 아닐까? 존뮤어트레일을 걸으며 찍은 독사진이 몇 장 되지는 않지만 그중에서 제일 맘에 드는 사진을 얻었다.

많은 사람들이 존뮤어트레일 구간 중에서 가넷호수에서 천섬호수 구간이 베스트라고 한다. 상황에 따라 다르긴 하겠지만 폭설이 선물해 준 포레스트 패스 구간의 때 묻지 않은 장엄한 설산 풍경은 베스트 중의 베스트였다.

천섬호수에 가까워지니 눈이 있는 구간에서 정체가 심해진다. 눈도 많지만 경사가 급해서 모두들 긴장하고 걷느라 시간이 많이 걸린다. 우리는 그동안 걸으며 축적된 경험이 있어서인지 가뿐하게 정체구간을 통과했다. 4,000m가 넘는 리터산Mount Litter(4,007m)이 호위하는 천섬호수는 약 2km에 걸쳐서 수없이 작은 섬들이 산재해 있다. 호수가 많으니 이곳은 마실 수 있는 물이 지천이어서 식수를 충분히 가지고 다닐 필요가 없었다. 즉석에서 정수한 생수는 그 어떤 음료보다 달콤하다.

도나휴 패스Donohue Pass까지는 너무 늦어질 것 같아서 패스를 3km 정도 남기고 선택한 캠핑 사이트 옆으론 계곡물이 시원하게 흐른다. 물은 차가웠지만 계곡물에 발을 담그니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다.

투올럼 메도로 향하는 길에는 맑고 투명한 크릭이 흐르고 야생화가 지천이다.

도나휴 패스에서 일출을 보기 위해 새벽 4시부터 산행을 시작했다. 어둠 속에 나오면 언제나 별이 총총하다. 어둠을 뚫고 가는 건 그리 힘들지 않은데 이곳은 계곡 물이 꽤 깊다. 어둠 속에 콸콸 쏟아지는 물소리를 들으니 갑자기 긴장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어둠 속에서 개울을 건너다가 바위에서 미끌! 물속으로 떨어지는 대형사고가 났다. 재빨리 일어나기는 했지만 이미 다운재킷이 젖은 상태. 배낭은 방수라서 큰 문제가 없고 휴대폰도 이상이 없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그런데 너무나 춥다.

일출을 기다리며 버너를 켜놓고 몸도 데우고 따뜻한 물도 조금 마시니 그나마 추위는 견딜 만하다. 오매불망 기다리던 태양은 오렌지빛 여명만 살짝 보여 주더니 구름 속으로 사라진다. 존뮤어트레일에서는 일출보다 은하수 보기가 더 쉽다. 태양이 솟으니 암봉들이 모두 반짝거린다. 세상의 모든 빛을 다 잡은 것 같다. 이제 눈 구간도 끝이 날 것 같은데 전혀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도나휴 패스~클라우드 레스트 피크

도나휴 패스에 도착하니 요세미티계곡이 끝없이 펼쳐진다. 이제부턴 요세미티국립공원이다. 고생 끝이 보인다. 이곳부터 퍼밋 검사를 자주 한다고 했는데 역시나 레인저가 나타났다. 도나휴 패스를 넘어서니 요세미티는 국립공원답게 잘 가꾸어져 있다. 이제부터 진짜 하이킹이다. 이 정도 길만 걸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지금까지 걸었던 길과는 차원이 다르다. 하이커들이 많아져서 트레일에서 사람 만나는 재미도 있다. 대부분 존뮤어트레일을 걷고 있는 사람들이다. 아마도 지금이 가장 적기인 듯하다.

내려오다가 햇살이 뜨거울 때 텐트를 말리며 쉬었다. 오전에 물이 줄줄 흐르는 텐트를 철수했으니 잘 말리면 조금이라도 배낭이 가벼워지겠지. 초록의 대평원이 나타나 푸른 초원이 6km나 이어진다. 길이 편하니까 조금 지루해진다. 그 지루함을 깨주려고 곰이 나타났다. 어찌나 느리게 어슬렁거리는지 무섭기보다는 내가 답답하다.

360도 파노라마 뷰로 시에라네바다를 감상할 수 있는 클라우드 레스트 피크를 오르고 있다.

투올럼 메도Toulumne Meadow에서 존뮤어트레일로 가는 길은 캠핑장을 공사 중이라 통행 불가. 통행 금지된 길을 피해 도로를 한참 걸은 후에야 다시 트레일로 복귀했다. 카테드랄호수Cathedral Lakes를 경유해서 가는 길은 한국 산과 같은 느낌이다. 초록의 향기가 물씬 느껴진다. 주변의 설산이 파노라마로 펼쳐지니 모처럼 눈이 호강을 한다. 내리막길도 편안하다. 성당의 첨탑처럼 유독 홀로 솟아오른 카테드랄산의 봉우리에는 올라가는 등로가 있을지 궁금하다. 초록의 평원을 걸을 때는 박배낭을 멘 것조차 잊고 신바람 나게 걷는다. 오르막구간이 시작되니 저 멀리 설산들이 포효하듯 우릴 바라본다.

캠핑사이트인 어퍼 선라이즈호수Upper Sunrise Lake까지는 거리가 길지 않아서 뜨거울 때 쉬어가려고 에코 크릭Echo Creek에 자리를 잡았다. 낮잠도 자고 계곡물에 족욕도 하고 양말도 빨았다. 계곡물은 바닥이 훤히 들여다보일 정도로 투명하고 깨끗하다. 사람이 거의 다니지 않은 완전 무공해 자연에서 힐링하며 즐기는 이 시간이 황금처럼 소중하다, 존뮤어트레일을 걸으며 힘들었던 모든 것이 다 사라진다. 잎이 떨어지고 앙상하게 마른 은빛 가지들이 사랑스럽다.

새벽 3시, 하늘엔 별만 총총. 구름도 쉬어간다는 클라우드 레스트 피크Clouds Rest Peak에서 일출 왕복 산행을 떠난다. 왕복거리 약 12km, 고도는 1,000m 이상 오르지만 가볍게 간식과 물만 가지고 가는 것이라 그리 힘들지 않을 것이고, 돌아와서는 계속 내리막길이니 크게 무리할 거리도 아니다.

네바다폭포 옆으로 우뚝 솟은 화강암 3총사 리버티 캡, 브로데릭산, 하프돔이 그 위용을 뽐내고 있다.

어퍼 선라이즈 레이크에서 로우 선라이즈 레이크까지는 내리막길. 내리막은 좋지만 결국 다시 올라가야 하는데 어쩌자고 자꾸만 내려가나? 오르막이 시작되니 마음이 편해진다. 급경사는 아니지만 쉼 없이 오르고 또 오른다.

정상에는 우리보다 먼저 도착한 젊은 친구 두 사람이 있다. 그들은 클라우드 레스트 피크에서 백패킹을 했단다. 엄청 추웠을 텐데, 한 사람은 타프만 치고 잤다고 한다. 그들은 추위를 전혀 느끼지 않는 특별한 체질인가? 하기야 일본 아이들도 겨울에 반바지 입고 다니니까. 모든 건 습관을 어떻게 들이느냐의 문제겠지.

정상에 서니 요세미티계곡이 시원하게 드러난다. 저 멀리 산들이 첩첩이 쌓여 있다. 클라우드 레스트 피크만 한가운데 우뚝 솟아 있으니 360도 파노라마 뷰로 시에라네바다를 감상할 수 있다. 그런데 뭔 바위들이 저렇게나 클까? 하프돔이 있는 요세미티계곡만 멋있는 것은 아니다. 위협적일 만큼 장엄한 바위산들의 물결이 이어지는 이런 풍광을 또 어디서 볼 수 있을까? 하프돔에 스포트라이트가 비추인다. 역시 요세미티계곡의 주인공은 하프돔이구나. 존뮤어트레일을 걸으며 만난 사람들이 왜 이곳을 꼭 가보라고 했는지 이해가 되었다.

수년 전 화재로 불탄 요세미티국립공원. 아직도 불 냄새가 가시지 않고 있다.

클라우드 레스트 피크 그림자가 요세미티계곡을 덮으니 참으로 신비스러운 기운이 느껴진다. 스리랑카 사람들이 신성시 하는 아담스 피크의 그림자와 모습도 느낌도 너무 닮았다.

이곳에서도 일출 볼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태양은 섭섭하게 했지만 요세미티계곡과 하프돔, 그리도 멋진 산들이 나를 위로해 주니 그것으로 만족해야지.

클라우드 레스트 피크~리틀 요세미티 밸리

올라갈 때는 무척 길다고 느꼈는데 역시 하산은 빠르다. 로우 선라이즈 레이크는 어퍼보다 훨씬 아름답다. 형만 한 아우 없다고 했는데 틀린 이야기인가?

선라이즈 레이크 트레일 들머리부터는 정말 편한 길이다. 이제 식량도 거의 바닥나 배낭도 가벼워진다.

하프돔 가까이 오니 몇 년 전 화재로 탄 나무들이 가득하다. 시커멓게 탄 나무들 중에는 아직 살아 있는 나무들도 많다. 아직도 불 냄새가 가시지 않고 있다. 나무는 불에 탔는데 꽃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만발했다. 이곳은 인재보다는 자연재해가 더 많이 발생한다고 한다.

하프돔을 꼭 올라가보고 싶은데 추첨이 어렵다고 모두들 포기하는 분위기다. 나만 가겠다고 고집 피우기도 쉽지 않아서 마음을 접었다. 요세미티 밸리까지 내려오는 길 내내 하프돔과 함께 걷는 것으로 아쉬움을 대신했다.

캠프장에 들어서니 바로 옆으로 머세드강Merced River이 흐른다. 일찍 도착한 하이커들은 모두 물놀이 삼매경이다. 수영복이 없으니 풍덩 들어가기도 어렵다. 간단하게 씻고 이른 저녁식사를 하는 중에 선두팀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요세미티에 들어왔고 잠시 후에 캠핑장으로 오겠다고 한다. 헤어진 후 계속 신경이 쓰였는데 드디어 만나는구나. 내일 요세미티는 함께 걸을 수 있겠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나니 선두팀이 캠핑장에 도착했다. 감격의 순간이다. 헤어진 전우를 만난 느낌이라 할까? 텐트에 누우니 만감이 교차한다. 이제 드디어 내일이면 존뮤어트레일 트레킹이 끝나는구나.

존뮤어트레일의 들머리인 해피 아일스 트레일 헤드에 도착해 존뮤어트레일의 마침표를 찍었다.

리틀 요세미티 밸리~네바다폭포~해피 아일스

트레킹이라기보다는 관광하는 날이다. 느지막이 일어나 시리얼로 아침식사. 마지막으로 먹는 시리얼이라 맛있다고 느껴야 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텐트 철수도 가볍게 완료. 당분간 텐트 칠 일도 없겠다.

휴일도 아닌데 휴가기간이어서인지 사람들이 무척 많다. 이제야 이곳이 그 유명한 요세미티국립공원임을 실감한다. 오전인데도 올라오는 사람들마다 땀으로 범벅이다. 온통 오르막에 계단이니 얼마나 힘들까. 요세미티 빌리지에서 이곳까지 온 것만으로도 참 대단한 일이다.

요세미티의 그 유명한 네바다폭포Nevada Falls. 말꼬리 모양의 폭포로 높이는 146m. 엄청난 길이와 위용을 자랑한다. 아래쪽에서 네바다폭포를 올려다보아야 무서울 정도의 위용을 느낄 수 있겠지만 우리는 위쪽부터 보면서 내려간다. 지난겨울 폭설로 수량이 증가한 네바다폭포가 수직암벽에서 그대로 계곡으로 떨어지는 장관을 연출한다.

조금 더 내려가니 멋진 포토 스팟이다. 네바다폭포 위로는 우뚝 솟은 화강암 3총사 리버티 캡Liverty Cap(2,151m), 브로데릭산Mount Broderick(2,014m), 하프돔(2,694m)이 이어진다. 난간 뒤로는 네바다폭포가 흘러내린다. 난간에 앉아서 멋진 사진 한 장 남기고 싶었는데 바닥이 갈라져 있다. 더 이상 접근하지 말란다. 우리나라에서 이 정도면 멀리서부터 접근을 못 하게 했을 텐데 우리랑 달라도 너무 다르다.

계곡을 따라 걷다가 버널폭포Vernal Fall로 향하는데 낙석으로 길이 폐쇄되었다고 입구부터 출입금지이다. 버널폭포의 길이는 97m. 네바다폭포와 계단식으로 이어져 자이언트 스테어케이스Giant Staircase라고 부른다. 아쉽지만 뒤돌아선다.

이제부터는 거의 평지이다. 이제 끝이 얼마 남지 않았다. 드디어 존뮤어트레일의 들머리인 해피 아일스 트레일 헤드Happy Isles Trail Head에 도착했다. 길고 힘들었던 시간이 끝났다. '과연, 내가 걸을 수 있을까?' 그렇게도 많은 고민을 했던 길의 끝에서 기쁨보다는 아쉬움이 더 많다. 다시 오고 싶다. 이어지지 못한 길을 잇기 위해서라도 꼭! 다시 와야만 한다.

셔틀버스를 타고 커리 빌리지Curry Village에서 사치스런 점심을 먹고 요세미티 백패커 캠핑장으로 걸어서 이동했다. 땅에 내려왔으니 샤워할 수 있을 거라 기대했으나 샤워장은 없다. 내일은 캠핑장이 아닌 호텔이니 당연히 샤워할 수 있겠지. 빌리지에 있는 마트에서 고기와 과일 등을 사서 저녁 바비큐 파티를 준비했다. 그런데 핀초 패스에서 만난 캐나다 친구 데이브가 바로 우리 옆에 텐트를 쳤다. 그때 먹은 젤리는 아직도 그 맛을 잊지 못하고 있었다. 데이브를 초대해서 함께 바비큐 파티를 즐겼다. 참 멋진 인연이다. 그에게 한국 산을 설명해 주니 격한 관심을 보인다. 열심히 돈을 모아서 언젠가 한국의 산을 밟으러 오겠단다. 그날을 위해 함께 건배를 했다.

이젠 산행이 끝났으니 모두들 긴장이 봉인 해제되었다. 내일은 배낭을 메고 걷지 않아도 된다, 밤늦게까지 길고 긴 이야기가 이어졌다. 존뮤어트레일의 마지막 밤이 깊어간다. 하늘엔 보랏빛 은하수가 강물처럼 펼쳐 있다. 참으로 아름다운 밤이다.

그동안 정말 많은 길을 걸었다고 생각했었는데 이번에 다녀온 존뮤어트레일은 초대형 아이맥스 영상관이었다. 지금까지 경험했던 어떤 자연보다 수천 배는 더 감동적이고 극적인 자연을 선물해 주었다. 먹고 잘 장비를 메고 오롯이 내 두 발로 걸었던 길에서 만난 놀라운 풍경들은 내 삶의 새로운 자극제가 되었다.

다시 이 길 위에 선다면 무려 5년에 걸쳐서 존뮤어트레일을 완주했던 휘트니 할머니, 훌다 크룩스Hulda Crooks만큼은 아니더라도 조금 천천히 걸으며 존뮤어트레일의 풍경 속에 내 자신을 담아 놓고 싶다.

"햇빛이 나무에 흘러들 듯이 자연의 평화가 당신에게 흘러들어올 것입니다. 바람은 그 자체의 신선함을 당신에게 불어넣고, 폭풍은 그 에너지를 불어넣을 것이며, 근심은 단풍처럼 떨어져 나갈 것입니다."

존 뮤어의 말을 기억하며 존뮤어트레일을 마무리한다.

월간산 11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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