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펌의기술](125) 계약직 뽑은 부서 없어졌는데 부당해고? 1심 뒤집은 대륙아주

이현승 기자 2023. 11. 30.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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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전 英 사업 통번역 계약직 직원, 회사 상대 소송
“계약 갱신 거절에 합리적 이유 없다...임금 달라”
英 사업 중단되며 부서 없어졌는데 1심 “부당해고”
대륙아주 “계약 갱신 거절과 해고 다르다” 주장
2심 재판부, 1심 판단 뒤집어...대법서 확정
A씨에게는 근로계약이 갱신될 수 있으리라는 정당한 기대권이 인정된다.
그런데도 피고(한국전력)는 합리적 이유 없이 갱신을 거절했으므로 부당해고와 마찬가지로 무효다.

2017년 한국전력(한전)에 2년 계약직으로 입사한 A씨가 계약 종료 후 제기한 근로에 관한 소송을 심리한 서울중앙지법 제42민사부(부장판사 마은혁)는 작년 1월 한전 패소로 판결했다. A씨는 영국 원전사업의 통번역 업무를 위해 채용된 2년 계약직 직원이었다. 고용 계약 기간 중 사업이 중단돼 담당 부서는 해체된 상황. 그런데도 재판부는 한전의 계약 갱신 거절에 합리적 이유가 없었다고 판단했다.

한전은 항소하면서 법무법인 대륙아주를 새로 선임했다. 이 사건을 맡은 최현준(변호사시험 5회) 변호사는 노동 전담 재판부가 2년에 걸쳐 검토한 끝에 결론내린 만큼 판결을 뒤집기 어려울 것이라고 봤다. 이에 법리보다 사실관계에 대한 재판부 해석이 중요한 인사·노무 사건의 특수성을 고려해 프레임을 새로 짜는 전략을 폈다.

1심 재판부는 A씨가 ‘기한의 정함이 있는 근로자’, 즉 계약직이라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계약 갱신을 하지 않은 게 합리적이었는지를 정규직 근로자의 ‘해고’에 준해 엄격하게 판단했다. 이에 대륙아주는 애초 계약기간이 명시돼 있고 이 기간이 끝나면 계약이 종료되는 것이 원칙인 ‘계약 갱신 거절’과 정규직 ‘해고’는 다르다는 점을 강조했다. 동시에 기간제 근로자의 계약 갱신에 있어선 사용자의 재량이 넓게 인정된다는 판례를 제시했다.

지난 4월 7일, 2심 재판부는 한전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1심 재판부 판단을 180도 뒤집어 A씨의 계약 갱신을 거절한 데는 합리적 이유가 있다고 봤다. 최 변호사는 “향후 비슷한 유형의 기간제 근로자 갱신 기대권 판단이 필요할 때 기준이 될 수 있는 판결”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서울 중구 한국전력공사 서울본부 앞으로 시민들이 지나가고 있다. / 뉴스1

◇ 1심 “A씨, 英 업무 말고 다른 일에도 투입…인사평가, 객관성 결여”

1·2심 재판부 모두 A씨가 계약직 근로자 지위에 있으며 회사에 계약 갱신을 기대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봤다. 이 ‘계약 갱신 기대권’은 계약서에 ‘2년 계약’이라고 명시했어도 회사와 근로자 사이에 ‘일정요건이 충족되면 계약이 갱신된다’는 신뢰관계가 형성돼 있다고 법원이 판단하면 인정된다.

한전은 A씨를 ‘영국 원전사업 업무’라는 한시적이고 특수한 업무를 위해 채용했으므로 관련 사업 중단, 사업실 해체로 채용 목적이 사라졌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1심 재판부는 A씨가 본인이 한전에서 맡은 업무를 액셀 파일로 일자별로 정리해 제출한 것을 보고 ‘통번역 업무 전반을 담당했다’고 결론냈다.

또 한전이 2009~2019년 채용한 별정직 기간제 근로자 중 계약 갱신이 안된 사람 대부분이 본인이 희망하지 않아 퇴직했을 가능성이 높다고도 추정했다. 본인이 퇴직한 게 아닌 이상 대체로 계약 갱신이 되는 분위기였다는 것이다.

1·2심 판단이 극명하게 갈린 부분은 ‘계약 갱신을 하지 않은 게 합리적이었는지’ 여부다. 한전은 사업실 해체와 더불어 A씨의 업무 능력이 기대수준에 미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1심 재판부는 A씨의 업무 역량이 미흡하다고 판단할 만한 구체적인 증거가 부족하다고 봤다.

1심 재판부는 한전이 근로계약 갱신을 할 지 결정하는 데 활용하는 내부 성과평가표가 객관성, 합리성, 공정성을 갖추지 못했다고 봤다. 성과평가표는 직무수행 내용과 태도를 8가지 항목으로 평가한다. 평가자 2명은 A씨에 대해 항목별로 S~B 등급을 매긴 뒤 정성 평가에 ‘업무 처리 능력은 보통이나 향상을 위해 노력 중’, ‘일부 사용부서 불만 있음’ 등의 내용을 적었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A씨는 S~B등급을 받아 그동안 업무처리능력 미흡으로 계약 갱신이 거절된 계약직 근로자(C~D등급)들보다 좋은 평가를 받았다고 지적했다. 나아가 이 성과평가표를 작성한 사람은 A씨에게 직접 업무를 지시하는 사람이 아니어서 업무처리 성과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지 못했다고도 설명했다.

◇ “기간제 계약 갱신 거절은 해고와 달라” 1심 뒤집은 대륙아주

13일 서울 강남구 대륙아주 본사에서 최현준 변호사가 조선비즈와 인터뷰 하고 있다. / 대륙아주 제공

대륙아주는 2심에서 두 가지 사실관계를 바로잡기 위해 노력했다. ①A씨를 채용한 이유는 영국 원전 사업이며 실제로도 그 업무에 대부분 종사했다는 점 ②A씨의 업무 능력이 한전의 기대 수준에 미치지 못했다는 점이다.

최 변호사는 A씨가 주장한 자신의 업무 내역 액셀 파일을 하나하나 분석했다. 언뜻 보기에 다른 통번역 업무를 수행한 것 같지만 거의 대부분 영국 원전 사업과 관련있거나 파생된 업무, 혹은 다른 통번역 담당자가 자리를 비워 대체하기 위한 업무였다는 점을 요목조목 설명했다.

2심 재판부는 이 주장을 받아들였다. 재판부는 “한전이 A씨에게 주로 기대하고 부여한 업무는 영국 원전사업 관련 업무”라며 “이 사업이 무기한 중단돼 원고가 일하던 영국사업실이 해체됐고, A씨는 더이상 채용의 계기가 된 업무를 수행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근로계약 체결의 배경 사정, A씨의 지위와 담당 직무 내용 등이 중요하게 변경됐다”고 밝혔다.

대륙아주는 A씨가 참여한 회의 녹취록을 입수해 통번역 전문가의 조언을 얻어 업무 능력 미흡을 입증하기 위해 노력했다. 또 A씨에 대한 한전의 성과평가가 계약이 갱신된 다른 계약직 근로자(S~A등급)에 비해 좋지 않으며 이것 마저도 온정주의적 평가 관행에 따른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주장 역시 2심 재판부가 인정했다.

대륙아주는 1심 재판부가 A씨의 갱신 거절이 합리적이었는지 판단하는 과정에서 해고에 준한 엄격한 잣대를 들이댔다고 봤다. 한전 내부에 정량·정성 평가를 모두 할 수 있는 성과평가표가 엄밀히 있는데도 객관성·합리성·공정성을 갖추지 못했다고 지적한 데 이어 평가자의 자질까지 문제 삼았기 때문이다.

이에 이번 사안은 ‘계약 종료에 따른 갱신 거절’이며 근로자 의사에 상관없이 일방적으로 근로관계를 종료시키는 ‘해고’와는 다르다는 점을 강조했다. 인사고과에 사용자 재량이 있다는 판례를 제시하며 이번 건에서 재량을 넘어서는 행위는 없었다고도 설명했다.

그 결과 1심에서 ‘성과평가가 객관적이지 않다’고 판단한 것에 대해서도 2심은 ‘그렇다고 볼 수는 없다’고 뒤집었다. 지난 8월 대법원은 2심 판결을 그대로 확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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