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림살이가 모두 잿더미로… 홀로 남을 할머니 걱정에 눈물짓는 손자

오민주 기자 2023. 11. 29. 1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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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의 한 마을에서 화재로 모든걸 잃은 서승순 할머니(87)와 손자 채근병씨(25)가 불타버린 집 안을 살펴보며 망연자실하고 있다. 홍기웅기자

 

“단둘이 의지하며 살아왔던 곳인데… 이제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네요.”

29일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의 한 작은 마을. 서승순 할머니(87)와 손자 채근병씨(25)가 화마에 시커멓게 변해버린 집터를 멍하게 바라봤다. 할머니는 잿더미 사이를 서성이며 혹시나 쓸 수 있는 물건이 있진 않을까 살펴봤지만, 이내 한숨을 쉬며 돌아서길 반복했다.

지난 8일 할머니 집 거실에 있던 화목보일러에서 시작된 불은 삽시간에 두 사람의 보금자리를 앗아갔다. 혼자 집에 있던 채씨가 외출한 할머니를 위해 온기를 채우려다 불이 났던 것. 채씨는 신발도 신지 못한 채 집에서 뛰쳐나왔고, 순식간에 모든 살림살이가 잿더미로 변했다. 지낼 곳이 마땅치 않은 채씨와 할머니는 벌써 3주째 반정리마을회관에서 생활하고 있다.

화재로 모든걸 잃은 서승순 할머니(87)가 인터뷰 도중 눈물을 훔치고 있다. 홍기웅기자

할머니 손에 길러진 채씨가 죄책감에 괴로워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부모님은 채씨가 태어난 지 100일 만에 이혼했고, 설상가상 초등학교 3학년 때 아버지마저 돌아가시면서 채씨에게 가족이라곤 할머니 뿐이었다. 비록 산 밑의 허름한 슬레이트집이었지만 부모에게 받지 못한 사랑을 할머니에게 받을 수 있는, 서로가 서로에게 기대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보금자리였다.

할머니와 채씨는 앞으로 살아갈 일이 막막하다. 화재로 타버린 집을 수리하기 위해 구청에 알아보는 과정에서 할머니가 평생 살았던 집 명의가 다른 사람이라는 사실까지 밝혀졌기 때문이다. 당장 채씨는 다음달부터 군 복무를 위한 훈련에 돌입하는데, 추운 날씨에 할머니 홀로 어디서 지내야 할 지 막막하기만 하다. 아들을 잃은 뒤 치매 증상까지 보이는 할머니를 돌봐줄 사람도, 할머니가 머무를 공간도 없기 때문이다.

당시 상황을 설명하던 채씨는 이내 차오르는 눈물을 참지 못하기도 했다. 채씨는 할머니와 단둘이 살아갈 수 있는 조그만 공간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며 눈물을 흘렸다. 그는 “할머니에게 미안하고 걱정스러운 마음뿐”이라며 “할머니 곁에서 오래오래 머물면서 호강시켜 드리고 싶다”고 소망했다.

이에 대해 용인시 관계자는 “시에서도 생필품 지원과 임시거처 등 도움을 드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많은 분의 관심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오민주 기자 democracy555@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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