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보험공단을 떠도는 '제도화 된 차별'

김정대 신부(천주교 예수회) 2023. 11. 29.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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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보고객센터 파업 장기화의 원인과 해법 ③] 건강보험공단 고객센터 상담사의 정규직 전환과 왜곡된 공정 극복하기

11월1일 시작된 공공운수노조 건강보험고객센터지부의 파업과 집단 단식이 곧 한 달에 접어든다. 장기 파업의 쟁점은 '해고 없는 소속기관 전환' 여부다. 건강보험공단은 지난 2021년 외부전문가가 포함된 '사무논의협의회'를 통해 고객센터 업무를 공단 소속기관으로 전환하기로 하고, 채용승계를 권고했다. 이미 이뤄진 합의가 이행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지, 해법은 어디서 찾을 수 있을지에 대해 공공운수노조가 보내온 세 편의 기고를 싣는다.

2021년 8월, 나는 동료 수도자들과 함께 건강보험공단 고객센터 상담사들이 직접고용을 요구하며 파업을 진행하고 있는 원주 본사를 몇 차례 지지 방문했다. 이들은 폭염과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한 어려움에도 긴 파업 투쟁을 이어왔다. 조합 부지부장은 이 파업 기간 중에 단식농성을 했고, 조합원들은 강원도 원주에서 서울 청와대까지 행진을 하며 고된 투쟁 일정을 진행했다. 그러나 이들에게 가장 힘든 것은 아마도 상담사들의 직접고용 정규직 전환을 반대하는 정규직 직원들의 냉대를 이겨내는 일이었을 것이다. 이 이면에는 자신들은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정규직이 되었는데 '너희들이 감히 이 자릴 넘봐?'라는 냉소가 있다.

이들에게 공정은 능력을 바탕으로 한 경쟁이라는 내면화된 '능력주의'이다. 내가 볼 때, 이런 정규직 노동자들의 관점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차별은 당연하다는 인식이 깔려있는 듯 했다. 아마도 상담사들의 파업을 바라보는 정규직 직원들의 눈초리는 차가움을 넘어 경멸에 가까웠다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내가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톨게이트 노동자들의 싸움에서도 똑같은 현상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내면화된 '능력주의'가 팽배한 문화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일상화된 차별을 경험한다. 이런 문화에서 노동자가 함께 잘 사는 것은 어려워 보인다.

비록 직접고용은 아니지만 2021년 10월 21일 국민건강보험공단 고객센터 노사는 민간위탁이 아닌 '소속기관'으로 정규직 전환에 합의했다. 상담사들은 이 합의를 통해서 자신들의 고용안정과 노동조건이 개선되길 기대할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건강보험공단 고객센터 상담사들의 투쟁은 결론을 맺는 듯했다. 그런데 2년이 지난 지금 상담사들은 다시 길거리로 나와 공단을 상대로 싸움을 벌이게 되었다.

이유는 국민건강보험공단이 2019년 2월 28일 이후 입사자들에 대해서는 공개경쟁채용을 해야 한다며 700명에 달하는 상담사들의 고용불안을 유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후 조합은 '해고 없는 소속기관 전환'을 요구하며 단식에 들어갔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공개경쟁채용을 고집하는 것은 현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차별이며 마지막까지 힘없는 노동자들에게 권력행사를 하겠다는 의도로 읽혀진다. 이는 현대사회의 리더십이 이해하는 권력과 반대되는 이해이다.

노사관계는 권력관계이다. 노동자는 그 권력관계에서 약자이다. 그래서 노동자들은 사용자와 대등한 입장에서 협상을 하려고 노동조합을 결성한다. 진짜 사용자가 이 노동조합과 합리적인 대화를 하면 이 문제는 좀 더 쉽게 해결될 것 같다. 여기서 현대사회의 리더십은 권력을 타인의 의지를 꺾어 자신의 의지를 관철하는 '위협적 권력(threat power)'이 아닌 한 개인이 자신의 발전을 통하여 그가 속한 조직 또는 공동체가 함께 성장하도록 돕는 '통합적 권력(integrative power)'으로 이해한다. 이렇게 권력을 통합적 권력으로 이해하는 사람은 권력을 소유하지 않고 모두를 위해 자신의 권력을 나눈다.

그러나 권력을 위협적 권력으로 이해하는 사람은 권력을 소유하려하고, 소유한 권력의 높고 낮음을 위계로 이해해서 사람들 사이에 차별이 생긴다. 한 개인의 가치와 가능성 그리고 올바른 지향을 무시하는 차별은 그 자체로 폭력이다. 이런 의미로 국민건강보험공단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차별은 폭력이다. 우리 사회는 권력을 소유하고, 타인을 차별하는 폭력이 아니라 차별을 없애고, 생명의 신성함과 타인의 존엄성을 존중할 때 발전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렇게 말한다. "하느님에 대한 성실하고 겸손한 예배는 '차별, 증오, 폭력이 아니라 생명의 신성함, 타인의 존엄성과 자유에 대한 존중, 모든 사람의 복지에 대한 사랑의 헌신에서 열매를 맺습니다.'"('모든 형제들', 283항) 인간에게 겸손하고 성실한 사람도 이와 다르지 않다.

나는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다시 사회적 합의로 돌아가 안정된 직장과 직업을 노동자들에게 제공하고 사회적 신뢰를 회복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를 바란다.

▲한 개인의 가치와 가능성 그리고 올바른 지향을 무시하는 차별은 그 자체로 폭력이다. 이런 의미로 국민건강보험공단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차별은 폭력이다. ⓒ공공운수노조

[김정대 신부(천주교 예수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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