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돈부리’를 비비지 않는 이유
처음 비빔밥을 먹을 때, 나는 밥을 비비지 않고 그대로 먹으려 했다. 그걸 본 한국인 친구는 ‘에이, 비빔밥은 잘 비벼야 맛있는 거지!’라며 내 비빔밥을 열심히 비벼줬다. 비빔밥은 이렇게 많이 비벼 먹는 음식이구나! 놀라며 감탄했던 기억이 난다. 일본에서도 비빔밥은 인기 있는 한식이라 한식집에서는 물론 ‘돈부리’(일본식 덮밥) 체인점이나 편의점에서도 비빔밥을 판다. 하지만 한국어를 모르는 대부분의 일본인은 비빔밥이 ‘비벼 먹는 밥’이라는 걸 모른다.
본래 일본에는 비벼 먹는 음식이 별로 없었다. ‘마제소바’처럼 비벼 먹는 음식은 비교적 최근에 생긴 음식이다. 돈부리나 카레는 주로 비비지 않고 그대로 먹는다. 일본에선 급식으로 카레가 자주 나오는데, 한 반에서 카레를 비벼 먹는 친구는 한두 명 정도다. 학교에서 카레를 비벼 먹으면 친구들에게 ‘왜 비벼 먹는 거야? 예쁘게 먹어야지’라는 말을 들을 수도 있다.
일본인은 돈부리 한 그릇 안에서 맛이 변해가는 재미를 즐기기 위해 밥을 비비지 않는다. 양념이 고여서 맛이 진한 부분과 양념이 배지 않은 부분이 나뉘어 있어도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오히려 똑같이 비벼 놓으면 재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양념이나 반찬을 골고루 잘 섞어 균일한 맛을 내는 비빔밥과는 대조적이다.
또 카레를 비벼 먹으면 카레와 밥의 수분이 섞이면서 카레의 맛이 변한다고 생각한다. 일식에 익숙하지 않은 한국인은 비비지 않고 그대로 먹으려다 밥 위의 반찬이나 카레 소스만 먼저 다 먹어버릴 수도 있다. 적당한 비율을 유지해 가며 그릇을 다 비우는 게 쉽진 않지만, 밥과 반찬의 양을 잘 계산해가며 먹는 것도 일종의 재미라고 생각해주면 좋겠다.
물론 음식을 어떻게 먹을지는 개인의 자유다. 하지만 외국 요리를 먹을 땐 현지식으로 먹어보는 것도 좋다. 현지식 식사법엔 나름의 이유가 있고, 그 요리의 매력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이제 나는 비빔밥을 한국인처럼 잘 비벼 먹는다. 일본인 친구와 같이 먹을 때는 ‘비빔밥’의 의미와 함께 “네가 상상하는 것보다 10배는 더 비벼야 맛있게 먹을 수 있다”고 설명해준다. 반대로 일본에 여행을 온다면 돈부리나 카레를 먹을 땐 일본인처럼 비비지 않고 그대로 먹어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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