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근무지 적힌 ‘수능 감독관 명찰’···학부모 학교 앞 1인 시위에 쓰였다

남지원 기자 2023. 11. 28.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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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가 수능 부정행위 적발되자
명찰 이름 토대로 근무지 알아내
개인정보 노출·악성 민원에 악용
감독관 명찰 패용 재검토 목소리
A씨의 아내가 수능 감독관이 근무하는 학교 앞에서 들고 있던 피켓 사진. 서울교사노조 제공

A씨는 자녀가 지난 16일 202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부정행위자로 적발되자 다음 날인 17일 해당 감독관의 근무지로 찾아가 1인 시위를 했다. 이어 A씨의 남편 B씨도 같은 장소를 찾아 협박성 발언을 했다. 감독관이 근무하는 학교를 어떻게 알아냈는지 논란이 일자 B씨는 ‘감독관 명찰’에 적힌 이름을 토대로 파악했다고 밝혔다.

명찰이 근무지 등 개인정보 유출과 악성 민원으로 이어지는 일이 발생하면서 명찰 패용 규정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28일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의 ‘대학수학능력시험 감독관 유의사항’ 문서를 보면 수능 감독관들은 시험장 내에서 반드시 명찰을 패용하도록 되어 있다. 명찰의 형태는 시험장마다 제각각인데 감독관의 실명은 물론 소속 학교까지 적혀 있는 경우도 있다.

B씨는 지난 27일 입장문에서 “감독관 선생님의 이름은 딸이 명찰을 보고 기억했다”며 “인근 중학교 행정실들에 전화를 걸어 OOO 선생님이 계시냐고 물었더니 (한 중학교에서) 계시다고 알려줬다”고 말했다.

B씨가 경찰공무원 시험 강사라 내부정보를 불법적으로 활용해 감독관 근무지를 확인한 것 아니냐는 의혹도 나왔지만,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시험장에서 공개된 이름을 통해 근무지를 손쉽게 찾을 수 있었던 것이다.

수능 감독관이 명찰을 패용하는 것은 그간의 관행인데 이름과 소속학교 등도 개인정보인 만큼 앞으로는 ‘감독관 유의사항’에서 이를 빼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실제로 다른 주요 국가시험들은 감독관 명찰을 패용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공무원 공채 필기시험 감독관은 ‘시험감독관’이라고 표기된 리본이나 스티커 등을 부착해 수험생과 감독관을 구분한다. 검정고시나 임용시험 등 평가원이 주관하는 다른 시험에서도 감독관이 명찰을 패용해야 한다는 규정은 없다. 교육부 관계자는 “감독관 명찰 패용에 대한 여러 의견이 제기되는 것을 알고 있으며 시도교육청 등의 의견을 들어보겠다”고 말했다.

수능 감독관으로 근무한 교사들은 ‘감독 때문에 피해를 보았다’는 민원에 시달리거나 분쟁에 휘말리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감독관의 실수로 시험을 망친 수험생이 법원에서 배상 판결을 받는 경우도 적지 않다. 2020년 서울 강서구 덕원여고 시험장에서는 타종을 맡은 교사의 실수로 종료 알람이 3분 일찍 울리는 일이 발생했고 법원은 국가가 수험생 1인당 700만원의 위자료를 지급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과도한 항의에 수능 감독관을 기피하는 교사도 늘어나고 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는 “교원들의 수능감독 고충을 더 이상 외면하지 말고,수능감독이 기피업무가 되지 않도록 적극적인 배려와 지원이 뒤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남지원 기자 somni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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