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가 먹이 낚아챌 때 가장 짜릿”…유네스코 유산 매사냥 살펴보니
지난 25일 박정오 응사 등 17회째 선보여
장환석(54)씨가 풀밭으로 뭔가를 던졌다. 미끼용 냉동 병아리였다. ‘휘리리릭.’ 나무 위에서 동태를 살피던 매가 풀밭의 기척을 감지하고선 쏜살같이 날아왔다. 매는 미리 준비해둔 꿩을 발톱으로 단단히 움켜쥔 뒤 부리로 깃털을 뽑기 시작했다. 꿩의 깃털이 수북이 쌓여갔다.
지난 25일 오전 전북 진안군 백운면에서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인 매사냥 시연회가 열렸다. 한국민속매사냥보존회(회장 박정오 응사)가 전통 매사냥을 알리기 위해 2007년부터 해마다 열어온 행사다. 이날 행사에는 한국전통매사냥보전회 곽윤형 총무 등이 매 두마리와 함께 참여했다.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사진작가 등 200여명이 길들인 매를 이용해 꿩과 오리, 토끼 등을 사냥하는 모습을 부지런히 카메라에 담았다.
전통 매사냥은 매를 관리하는 봉받이(매꾼), 지팡이·작대기를 들고 나뭇가지를 치면서 꿩이 날아가도록 하는 떨이꾼(몰이꾼), 꿩이 떨어진 곳으로 달려가 꿩을 확보하는 배꾼(배지기) 등으로 역할이 나누어진다. 매사냥 기능보유자 박정오(82) 응사는 “농촌 환경이 많이 바뀌어 야생에서 있는 그대로의 매사냥 모습을 보여주기가 쉽지 않다. 미리 준비한 꿩을 날려 보내면 매가 먹이를 낚아채는 모습을 시연을 통해 보여준다”고 했다. 박 응사는 “엽총을 이용한 사냥 등으로 꿩이 예전보다 많이 줄었고, 몰이꾼도 가시덤불에 찔려가며 꿩을 모는 위험한 짓을 하려고 하지 않는다”고 아쉬워했다. 그는 “매는 자신의 배를 채우고 나면 어지간해선 사냥에 나서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사냥 전 최적의 몸 컨디션을 만들어주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매사냥은 날씨의 영향도 크게 받는다. 비가 오거나 강풍이 불 때, 일몰 직전은 피해야 한다. ‘매사냥 3불’이다. 비가 내리거나 바람이 세게 불면 매가 자유롭게 원하는 방향대로 날기가 어렵고, 해 지기 직전에는 산으로 들어가서 자려는 야생의 습성 때문에 먹이활동을 안 하려고 한다. 날씨가 건조하고 차가웠던 이날, 박 응사는 “바람마저 적당해 매사냥을 나서기엔 안성맞춤”이라고 설명했다.
경기도 양평에서 아들과 함께 온 전수교육생 양재현(46)씨는 “스승님께서 매사냥의 모든 것을 기초부터 자세히 체계적으로 가르쳐준다”고 했다. 아들 예준(7)군은 “작년에 이어 두번째로 왔는데 매가 꿩을 잡는 모습이 너무 멋지다. 배우고 싶다”고 말했다. 경력 40년의 사진작가 이강택(69)씨는 “15년 전부터 조류 사진을 찍고 있다. 매사냥 영상을 텔레비전에서 우연히 봤는데 호기심이 생겨서 새벽 3시에 경기도 고양시의 집을 나섰다”고 말했다.
박 응사는 “매사냥에서 짜릿한 순간은 매가 공중에서 낙하해 목표물을 낚아챌 때”라며 “이 사냥의 가치를 알리기 위해 앞으로 힘이 닿는 데까지 전통 매사냥 기술과 도구 제작법 등을 가르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시연회 광경을 지켜본 이루라 진안군의원은 “군에서 도와주고 있지만 장기적인 계획과 목표를 갖고 지속적으로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에서 매사냥은 예부터 이어져온 수렵활동이다.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 조선총독부 자료를 보면, 매사냥 허가를 받은 민간인이 1740명에 이를 만큼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에서 매사냥이 성행했다고 한다. 지금은 야생조수 보호 정책과 총포류 보급 등으로 전통 방식의 매사냥은 대부분 사라지고, 전통문화 전승 차원에서 일부에서 명맥이 이어지고 있다.
이날 시연회가 펼쳐진 전북 진안은 전북 동부 내륙의 산악지대다. 특히 백운면 일대는 지세가 높고 산세가 험해 골짜기에 서식하는 날짐승이 많고, 눈이 많이 내리면 매의 먹이가 되는 꿩들이 마을 가까이 내려오기 때문에 예로부터 매사냥이 성행했다고 한다. 전북도는 매사냥을 1998년 도무형문화재(20호)로 지정했다. 대전시도 2000년에 매사냥을 시무형문화재(8호)로 지정했다.
박임근 기자 pik007@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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