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직장인이라면 안다[오늘을 생각한다]

2023. 11. 28.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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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 나는 GM이 생산하는 자동차 도어의 플라스틱 부품을 제조하는 1차 하청공장에서 몇 달 일했다. 그곳에서 함께 일하던 200여명의 직원은 누구도 원하지 않았지만, 매일같이 초과노동을 해야 했고, 토요일에는 강제 특근도 감수해야 했다. 노조가 없어 권리를 지키기 어려웠던 공장에서 그것은 강제처럼 여겨졌다. 노동자들 역시 연장근로는 의무가 아니라는 걸 알았지만, 당당하게 거절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런 일터에선 노동자들의 안전이나 쉴 권리가 아니라 자본이 원하는 생산물량을 뽑아내고 불량률을 줄이는 것이 절대적인 교리처럼 떠받들어진다. 물론 그 이윤은 노동자들의 더 나은 삶이 아니라 회장의 해외 골프 원정 취미와 사장의 아우디 승용차로 돌아가지만 말이다.

지난 11월 13일 고용노동부가 근로시간 제도개편 대국민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지난 3월 내놨던 ‘근로시간 개편안’이 거센 사회적 반발과 비판에 직면하자 한발 물러서 보완책을 내놓겠다고 밝힌 지 8개월 만이다. 문제는 이번 개편안이 ‘보완책’이 아니라 ‘은근슬쩍 재추진’을 위한 수순처럼 보인다. 이성희 고용노동부 차관은 “주 52시간제를 유지하면서 일부 업종·직종에 한해 개선방안을 마련하겠다”면서 동시에 “특종 업종·직종에 한해, 노·사가 원하는 경우 연장근로 관리단위를 1주로 한정하지 않고 선택권을 부여하는 제도개선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조사결과를 보면 제조업에서 “연장근로 단위 확대가 필요하다”는 응답이 상대적으로 높게 나왔는데, 애초 정부와 경영계의 의도 자체가 제조업을 대상으로 했던 만큼 말장난처럼 느껴질 수밖에 없다.

설문조사 표본도 문제다. 응답자 6030명의 절반에 해당하는 48.8%가 경영·사무·금융·보험직이었는데, 한국고용직업분류 직종분류표에서 이 직종들은 관리직과 경영·행정·사무직 등이다. 이에 더해 응답자 중 약 1000명은 사업주였다. 조사 주체가 임의대로 사업주나 관리자가 과반수인 설문조사를 실시해 제조업 노동자들의 연장근로 단위 확대 결과를 도출시키고는 “노·사·정 대화를 통해 추진하겠다”는 말로 포장하고 있다.

질문 자체도 정부가 원하는 답을 유도하는 방향으로 짜여 있다. 정부가 추진하는 ‘연장근로 관리단위 확대’를 “평소보다 바쁠 때 더 일하고 그렇지 않을 때 적게 일하는 제도”로 포장하고, 현행 제도에서는 갑작스러운 업무량 증가에 유연하게 대응하기 어렵다는 설명까지 보탰다. 이에 반해 정부가 추진하려는 방향의 결점이나 위험성은 전혀 설명하지 않았다. 전국금속노동조합이 성명을 통해 “설문이라기보다 설득”이라고 비판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지난봄 ‘주 69시간 노동’을 둘러싼 사회적 반발은 윤석열 정부가 야심 차게 밀어붙이려던 노동정책 개악에 제동을 걸었다. 아마도 정부는 노동자들의 권리나 이해관계가 업종별·세대별로 분할된 것처럼 조장하고 선동함으로써 개악안을 밀어붙이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제조업의 초과노동 발생 비율은 다른 어느 산업보다 높고, 실제 초과 노동시간 자체도 가장 길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우리는 모두 자신의 몸과 시간을 팔아 일하며 살아간다. 일터에서 노동자의 신체와 시간에 대한 통제권을 빼앗긴다는 것은 그만큼 고단하고 고통스러운 노동으로 우리 자신을 갈아넣게 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노동시간 통제권을 더더욱 자본에 내주고, 노동자들을 극심한 경쟁으로 몰아넣을 수밖에 없다. 1찍이건 2찍이건, 남성이건 여성이건, 평범한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알 것이다.

홍명교 플랫폼C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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