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하면 기억할 수 있어”…‘한글 그림’으로 멸종위기종 기록하는 ‘숨탄것들’ 진관우 작가 [차 한잔 나누며]

이민경 2023. 11. 27. 2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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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자음·모음 이용 그림 그려
반달가슴곰 등 400점 英서 전시
亞·유럽 동물 담은 ‘지구의…’ 출간
“생태보호 상생의 시각으로 봐야”
“단어에서 모음이나 자음 하나가 빠지면 글자가 안 되듯이 자연에서도 종 하나가 빠지면 생태계가 완성되지 않습니다.”
 
멸종위기종을 그리는 프로젝트 ‘숨탄것들’의 대표 진관우(24) 작가의 그림에는 특이점이 있다. 일반적으로 선과 면을 이용해 그림이 완성되는 것과 달리 그의 그림은 한글의 자음과 모음으로 이뤄져 있다. 사라질 위험에 처한 동물의 이름을 구성하는 한글 자음과 모음을 이용해 멸종위기종을 표현하는 동시에 그 이름을 기억하게 하는 그만의 독창적인 방식이다.
한글 자음과 모음으로 멸종위기종을 그리는 진관우 작가가 지난 24일 서울 용산구 세계일보 사옥에서 멸종위기 1급 야생동물이지만 현재 우리나라에선 야생 절멸된 시베리아 호랑이 작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재문 기자
진 작가가 한글 그림으로 멸종위기종을 기록하게 된 계기는 우연이었다. 그는 지난 24일 세계일보와 인터뷰에서 “3년 전 취미로 반달가슴곰을 그리다가 곰의 귀 모양이 예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그는 문득 반달가슴곰 귀 모양이 한글 자음 ‘ㅂ’과 유사하다고 느꼈다. 귀를 시작으로 몸 전체에 ‘반달가슴곰’의 자음과 모음을 이리저리 조합하자 곰 그림이 완성됐다. 
진 작가는 “기록하면 기억할 수 있다”며 멸종위기종을 잊지 않기 위해 그린다고 설명했다. 사람들이 그림을 보고 계속해서 동물들의 이름을 불러 줘야지만 그 대상이 존재한다는 점을 인지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진관우 작가가 그린 앉은뱅이. 진관우 작가 제공
지난 7월 영국 런던에 위치한 ‘브릭레인 갤러리 아넥스’에 전시된 진관우 작가의 그림. 잭슨 카멜레온이 한글 자음 ‘ㅈ’에 걸터 앉아있는 모습이다. 진관우 작가 제공
진 작가는 짧게는 3∼4시간, 길게는 한 달 정도 작업하며 반달가슴곰, 레서판다, 하마 등 400점이 넘는 작품을 내놨다. 지난 7월에는 그의 작품이 영국 런던에 위치한 ‘브릭레인 갤러리 아넥스’에 전시되기도 했다. 진 작가는 “영국에서 직접 관람객들에게 그림에 대해 설명했는데 다들 신기해했다”며 “갤러리 관장은 ‘무언가를 지키기 위해 예술을 하는 게 이렇게 아름다운 줄 몰랐다’고 말해 감동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이달 초 아시아와 유럽의 멸종위기종을 담은 책 ‘지구의 숨결’을 출간했다. 진 작가는 “환경 도서나 동물 관련 서적들이 생각보다 최신 자료로 업데이트되어 있지 않다”며 “올해 6월까지의 내용을 담은 책”이라 설명했다.
진관우 작가가 그린 청줄무늬갯민숭달팽이. 진관우 작가 제공
진 작가는 책에 기록된 44마리의 멸종위기종 중 고라니를 가장 기억에 남는 동물로 꼽았다. 그는 “한국에서 고라니는 환경부 지정 유해종으로 분류되지만 세계적으로는 국제멸종위기종”이라며 “세계적으로는 취약종이지만 우리나라에선 농작물을 해친다는 이유 등으로 모순되게도 사냥이 합법화해 있다”고 말했다. 이어 “전 세계의 고라니 중 90%가 우리나라에 살고 있기에 마땅한 보호 체계가 필요하다”며 “도로 개발 등에 따른 서식지 파편화로 고라니에 따른 민간 피해가 늘어나는 것이기에 생태계가 자리 잡을 수 있는 실효성 있는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그림을 그리는 일 외에도 국립생태원 홍보대사로 활동하며 환경 보호에 앞장서고 있다. 한 달에 한 번 국립생태원 영상물에 출연해 환경 보호 활동 등을 소개한다.
한글 자음과 모음으로 멸종위기종을 그리는 진관우 작가가 지난 24일 서울 용산구 세계일보 사옥에서 멸종위기 1급 야생동물이지만 현재 우리나라에선 야생 절멸된 시베리아 호랑이 작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재문 기자
지난 7월에는 북극에 직접 다녀오기도 했다. 진 작가는 “흔히 지구온난화를 얘기하면서 북극곰을 예시로 드는데 듣는 이에게 신뢰감을 주기 위해 직접 북극에 다녀왔다”고 북극행 티켓을 끊게 된 이유를 설명했다. 바다코끼리 투어에서 해빙 문제를 확실히 깨달았다는 그는 “지구온난화로 얼음이 녹아 바다코끼리가 쉴 곳이 사라지면 이들이 번식할 곳도 사라져 개체수가 줄어든다”며 “결국 바다코끼리를 잡아먹는 북극곰 개체수도 줄어드는 등 생태계에 큰 문제로 번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작품과 홍보대사 등 각종 활동으로 생태계 보호에 앞장서고 있는 진 작가는 인터뷰 말미에 “어려움도 많다”며 고민 하나를 털어놓았다. 그는 “도시에 사는 사람에게 산양 한 마리가 사라지는 건 아무 영향을 주지 않는 지엽적인 문제”라며 “환경은 당장의 가치 환산이 어렵기에 계속 경제(논리)에 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진관우 작가가 그린 순록. 멸종위기종으로 등록됐다. 진관우 작가 제공
그는 경제적 관점보다는 ‘같이 살아가는 것’에 초점을 맞췄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내비쳤다. 진 작가는 “우리가 생물들과 같이 살고 있는 것을 알려 주는 게 생물다양성”이라며 “북극곰이나 판다 같이 흔히 아는 대형 육상동물뿐만 아니라 마이너한 분야의 멸종위기종도 알리는 데 힘쓰겠다”고 말했다.

이민경 기자 m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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