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비록] "산 넘어 산" 잠실진주 재건축… 공사비에 몸살
[편집자주][정비록]은 '도시정비사업 기록'의 줄임말입니다. 재건축·재개발 사업은 해당 조합과 지역 주민들은 물론, 건설업계에도 중요한 이슈입니다. 도시정비계획은 신규 분양을 위한 사업 투자뿐 아니라 부동산 시장의 방향성을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현장을 직접 찾아 낡은 집을 새집으로 바꿔가는 모습을 생생하게 전달하겠습니다.
지난 11월20일 찾은 잠실진주아파트 부지에선 공사가 한창이었다. 거대한 덤프트럭 여러 대가 연이어 현장으로 들어갔다. 현장을 높게 둘러싼 펜스 사이로 타워크레인이 분주히 움직였다. 가벽 너머로 우뚝 솟은 서울의 마천루 롯데타워는 아파트 준공 시의 기대감을 더욱 높이는 역할을 했다. 바로 옆에 붙은 미성크로바도 현재 공사가 진행 중이어서 두 단지의 재건축이 모두 완료되면 잠실의 새로운 랜드마크로 떠오를 것이란 기대감이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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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슬아슬하게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 적용을 피하고 2018년 10월 가까스로 관리처분계획인가를 받으며 본격적인 포문이 열리는 듯했던 잠실진주 재건축은 정부의 대출 규제에 발목이 잡혔다. 규제지역 내 정비사업을 통해 얻는 입주권이나 분양권도 1주택으로 간주, 입주권 2개를 가진 조합원들의 이주비 대출이 전면 금지됐다.
1+1 분양을 신청한 기존 대형 평형 소유주들은 신용대출을 받아 이주비를 메꾸지 못하면 조합원 지위를 포기하고 현금청산을 해야 할 위기에 놓였다. 이들이 가까스로 대출 막차에 올라탄 건 금융당국이 막판에 예외 기준을 늘려줘서다. 당초 그 해 9월13일까지 관리처분계획인가를 얻은 정비사업장에 한해 대출을 허용했지만 신청을 완료한 곳까지 모두 포함하기로 하며 이주가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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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합원들은 즉각 반대 의견을 내세웠다. 이미 올 4월 3.3㎡당 510만원선이던 공사비를 660만원으로 한 차례 인상했고 이미 기존 공사비를 기준으로 주택형 신청까지 완료했는데 6개월 만에 또 공사비를 올려달라는 것은 받아들이기 힘들단 입장이다.
한 조합원은 "일반분양 시 분양가를 올려 분담금을 최소화한다고 해도 분양가상한제 지역이어서 한계가 있을 것"이라며 "결국 조합원이 다 떠안아야 한단 얘기"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또 다른 조합원은 "오른 공사비가 3.3㎡당 200만원 이상인데 철거비와 대여비를 정산해주고 시공사를 바꾸고 싶은 심정"이라고 털어놨다.
시공사업단 측은 이번이 첫 공사비 증액 요구라고 해명했다. 지난 4월에 올린 공사비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전 합의에 따라 결정된 사항이며 이를 확정하는 총회가 4월에 열려 이번 공문이 '추추가' 공사비 증액처럼 보였다는 것.
삼성물산 관계자는 "3.3㎡당 660만원의 공사비는 착공 직전 최종 변경 설계에 대한 도급계약을 체결할 때 적용하기로 미리 협의를 했고 계약서만 올해 쓴 것"이라며 "공사비를 한 해에 두 번 올려받으려 한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들이 공사비 증액 이유로 내세운 것은 시멘트 등 원자재 가격 인상과 문화재 발굴에 따른 사업 지연이다. 유물 발굴조사로 공사가 잠시 멈췄을 때 물가가 올라 지금 공사비로는 진행이 어렵다는 주장이다.
조합은 시공사업단이 요구한 현 공사비가 아직 확정된 금액은 아니라는 말로 조합원들을 안심시키고 있다. 우선 한국부동산원에 공사비 검증을 요청한 다음 일정 부분 감액되기를 기다려야 한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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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증 의뢰가 증가할수록 한계도 명확히 드러나고 있다. 부동산원이 제시하는 검증 결과는 권고사항일 뿐 법적 효력은 없어 문제 해결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박선구 한국주택학회 이사는 "공사비 검증은 사업시행자가 요청하는 경우에 한하며 결과 역시 강제성을 갖지 않다 보니 민간공사에서 공사비 분쟁을 풀어내기 힘든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검증 범위도 제한적이란 지적이 있다. 서울 강동 둔촌주공 재건축(올림픽파크포레온) 조합은 지난 6월 공사비 검증 결과를 통보받고도 3개월이 넘게 시공사업단 측과 증액분에 대한 합의를 하지 못했다. 이 현장은 공사 중 1조원이 넘는 추가 공사비를 두고 조합과 시공사업단 사이 갈등이 불거지며 6개월 간 공사가 멈추기까지 한 곳이다.
부동산원은 추가 공사비의 14%(1621억원)만 검증을 진행, 377억원을 감액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나머지 9700억원은 분양 지연에 따른 금융비용 손실, 공사 중단·재개 준비에 따른 손실 비용 등이어서 당사자 간 합의나 소송 등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전문가들은 공사비 분쟁을 막기 위해선 현재의 수주 구조부터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태희 한국건설산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물가 변동 등 시공사의 귀책 사유 없이 늘어난 공사비에 대해선 발주자가 부담해주는 구조로 계약이 체결된다면 문제없겠지만 기본적으로 출혈 경쟁 구조인 수주 시장에선 이 같은 방안이 도입되기 힘들 것"이라고 꼬집었다.
정영희 기자 chulsoofriend@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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