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비록] "산 넘어 산" 잠실진주 재건축… 공사비에 몸살

정영희 기자 2023. 11. 27. 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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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출토' 넘기니 시공사업단과 갈등

[편집자주][정비록]은 '도시정비사업 기록'의 줄임말입니다. 재건축·재개발 사업은 해당 조합과 지역 주민들은 물론, 건설업계에도 중요한 이슈입니다. 도시정비계획은 신규 분양을 위한 사업 투자뿐 아니라 부동산 시장의 방향성을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현장을 직접 찾아 낡은 집을 새집으로 바꿔가는 모습을 생생하게 전달하겠습니다.

잠실진주 아파트 재건축 사업은 2021년 착공해 2025년 준공 예정이었으나 최근 시공사업단이 공사기간 연장을 요구하며 준공일자가 불투명해졌다./사진=정영희 기자
지금 서울 잠실은 40여년 이상 자리를 지켜온 터줏대감 아파트들의 재건축으로 연일 소란스럽다. 편리한 교통과 백화점, 대형 쇼핑센터 등 최적의 인프라를 갖춘 만큼 수많은 매수 희망자들이 분양 소식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청약에서 당첨만 되면 그야말로 '로또'라는 판단에서다. 정작 조합원들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설레는 마음으로 준공일만 기다리면 될 줄 알았건만 공사비 인상에 따른 추가 분담금이 수억원씩 늘어나기 때문이다.

지난 11월20일 찾은 잠실진주아파트 부지에선 공사가 한창이었다. 거대한 덤프트럭 여러 대가 연이어 현장으로 들어갔다. 현장을 높게 둘러싼 펜스 사이로 타워크레인이 분주히 움직였다. 가벽 너머로 우뚝 솟은 서울의 마천루 롯데타워는 아파트 준공 시의 기대감을 더욱 높이는 역할을 했다. 바로 옆에 붙은 미성크로바도 현재 공사가 진행 중이어서 두 단지의 재건축이 모두 완료되면 잠실의 새로운 랜드마크로 떠오를 것이란 기대감이 컸다.

1980년 지어진 잠실진주는 2020년 철거 당시 41년 된 노후 아파트였다. 기존 전용면적 82~181㎡로 구성된 1507가구가 최고 35층, 2678가구(일반분양 819가구)로 재탄생한다. 시공은 삼성물산 건설부문과 HDC현대산업개발 시공사업단(컨소시엄)이 맡았다. 길만 건너면 올림픽공원에 닿을 수 있는 공세권이고 지하철 8호선 몽촌토성역과 2호선 잠실역, 9호선 한성백제역을 걸어서 이동할 수 있다. 입지 측면에서 강점을 지닌 만큼 수요자들의 관심을 받으며 서울 대장주 중 한 곳으로 부상했다.
잠실진주 재건축 현장 게이트 앞 신호수들이 들어오는 공사차량을 기다리고 있다./사진=정영희 기자


산전수전 다 겪은 조합원… 인내의 20년


잠실진주는 2002년부터 재건축을 시작해 2021년 착공에 들어서기까지 많은 우여곡절을 겪은 단지다. 다양한 평수로 구성된 아파트인 만큼 대형 주택형 소유자는 토지를, 소형은 시세를 기준으로 평가해야 한다며 대립했다. 당시 재건축추진위원회는 대형 주택형 소유자에겐 추가 분담금 없이 아파트 2채를 준다는 '1+1' 조건을 내걸고 나서야 13년 만에 조합 설립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아슬아슬하게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 적용을 피하고 2018년 10월 가까스로 관리처분계획인가를 받으며 본격적인 포문이 열리는 듯했던 잠실진주 재건축은 정부의 대출 규제에 발목이 잡혔다. 규제지역 내 정비사업을 통해 얻는 입주권이나 분양권도 1주택으로 간주, 입주권 2개를 가진 조합원들의 이주비 대출이 전면 금지됐다.

1+1 분양을 신청한 기존 대형 평형 소유주들은 신용대출을 받아 이주비를 메꾸지 못하면 조합원 지위를 포기하고 현금청산을 해야 할 위기에 놓였다. 이들이 가까스로 대출 막차에 올라탄 건 금융당국이 막판에 예외 기준을 늘려줘서다. 당초 그 해 9월13일까지 관리처분계획인가를 얻은 정비사업장에 한해 대출을 허용했지만 신청을 완료한 곳까지 모두 포함하기로 하며 이주가 진행됐다.

2021년 11월 첫 삽을 뜨자마자 백제시대 집터와 저장구덩이가 대거 발굴됐다. 문화재청은 학술적, 역사적 가치를 위해 현지 보존 필요성을 제기했다. 당시 송파구청이 적극적으로 문화재청과의 대화에 나서며 협의가 이뤄졌다. 유물이 출토되지 않은 구역은 공사를 진행토록 하고 보존 가치가 있는 문화재는 단지 내 공원으로 이전시켜 보존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문화재청이 이를 수용하기까지의 과정만 1년이 걸렸다.
잠실진주 재건축현장에 붙은 공사현황표./사진=정영희 기자


조합 "1년 새 2번 인상 안 돼" vs 시공단 "최초 인상 요구"


본격적인 공사가 시작되며 분양만 남겨둔 것처럼 보였던 조합은 현재 시공사업단과 공사비를 둘러싼 갈등을 겪고 있다. 지난 10월 시공단은 조합에 3.3㎡당 공사비를 기존 660만원에서 898만원으로 증액하고 공사기간도 9.3개월 연장해 줄 것을 요구하는 내용의 공문을 보냈다. 이 경우 공사비는 종전 대비 2168억원 이상 늘어난다. 조합원이 1507가구임을 고려했을 때 평균 1억~2억원의 분담금을 더 내야 한다는 의미다. 일반분양은 올 4분기에서 내년으로, 입주 날짜는 2025년에서 그 이후로 밀릴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조합원들은 즉각 반대 의견을 내세웠다. 이미 올 4월 3.3㎡당 510만원선이던 공사비를 660만원으로 한 차례 인상했고 이미 기존 공사비를 기준으로 주택형 신청까지 완료했는데 6개월 만에 또 공사비를 올려달라는 것은 받아들이기 힘들단 입장이다.

한 조합원은 "일반분양 시 분양가를 올려 분담금을 최소화한다고 해도 분양가상한제 지역이어서 한계가 있을 것"이라며 "결국 조합원이 다 떠안아야 한단 얘기"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또 다른 조합원은 "오른 공사비가 3.3㎡당 200만원 이상인데 철거비와 대여비를 정산해주고 시공사를 바꾸고 싶은 심정"이라고 털어놨다.

시공사업단 측은 이번이 첫 공사비 증액 요구라고 해명했다. 지난 4월에 올린 공사비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전 합의에 따라 결정된 사항이며 이를 확정하는 총회가 4월에 열려 이번 공문이 '추추가' 공사비 증액처럼 보였다는 것.

삼성물산 관계자는 "3.3㎡당 660만원의 공사비는 착공 직전 최종 변경 설계에 대한 도급계약을 체결할 때 적용하기로 미리 협의를 했고 계약서만 올해 쓴 것"이라며 "공사비를 한 해에 두 번 올려받으려 한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들이 공사비 증액 이유로 내세운 것은 시멘트 등 원자재 가격 인상과 문화재 발굴에 따른 사업 지연이다. 유물 발굴조사로 공사가 잠시 멈췄을 때 물가가 올라 지금 공사비로는 진행이 어렵다는 주장이다.

조합은 시공사업단이 요구한 현 공사비가 아직 확정된 금액은 아니라는 말로 조합원들을 안심시키고 있다. 우선 한국부동산원에 공사비 검증을 요청한 다음 일정 부분 감액되기를 기다려야 한다는 이야기다.

조합 관계자는 "구체적인 공사비는 부동산원 검증을 받아봐야 말할 수 있다"며 "공사기간 연장은 협의된 내용"이라고 말했다. 시공사업단은 조합과 꾸준한 대화를 시도하고 있으나 쉽지만은 않은 상황이다. 삼성물산 관계자는 "11월 중 이사회와 대의회를 열어 공사비 논의를 할 것으로 예상했으나 계획대로 진행되진 않았다"며 "연내 총회를 열어 공사비 증액 안건을 올리고 내년 3~4월쯤 공사비 검증을 진행하는 것이 목표"라고 설명했다.
서울 송파에 위치한 잠실진주아파트 주택재건축사업조합 사무실 모습./사진=정영희 기자


'유명무실' 공사비 검증제도… 근본적인 답 없나


정비사업에서의 공사비 분쟁을 원만히 해결하기 위해 정부는 공사비 검증제도를 두고 있다. 상대적으로 전문성이 떨어지는 조합을 상대로 시공사가 부당한 공사비 인상을 하지 못하도록 부동산원이 대신 적정성을 검토하고 의사결정에 도움이 되는 정보를 제공한단 목적으로 도입됐다. 공사비 증액 요구가 늘어나자 적정성 검증을 요청하는 사례도 급증했다. 부동산원에 따르면 공사비 검증 의뢰 건수는 ▲2020년 13건 ▲2021년 22건 ▲2022년 32건 ▲2023년(상반기) 14건 등으로 집계됐다.

검증 의뢰가 증가할수록 한계도 명확히 드러나고 있다. 부동산원이 제시하는 검증 결과는 권고사항일 뿐 법적 효력은 없어 문제 해결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박선구 한국주택학회 이사는 "공사비 검증은 사업시행자가 요청하는 경우에 한하며 결과 역시 강제성을 갖지 않다 보니 민간공사에서 공사비 분쟁을 풀어내기 힘든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검증 범위도 제한적이란 지적이 있다. 서울 강동 둔촌주공 재건축(올림픽파크포레온) 조합은 지난 6월 공사비 검증 결과를 통보받고도 3개월이 넘게 시공사업단 측과 증액분에 대한 합의를 하지 못했다. 이 현장은 공사 중 1조원이 넘는 추가 공사비를 두고 조합과 시공사업단 사이 갈등이 불거지며 6개월 간 공사가 멈추기까지 한 곳이다.

부동산원은 추가 공사비의 14%(1621억원)만 검증을 진행, 377억원을 감액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나머지 9700억원은 분양 지연에 따른 금융비용 손실, 공사 중단·재개 준비에 따른 손실 비용 등이어서 당사자 간 합의나 소송 등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전문가들은 공사비 분쟁을 막기 위해선 현재의 수주 구조부터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태희 한국건설산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물가 변동 등 시공사의 귀책 사유 없이 늘어난 공사비에 대해선 발주자가 부담해주는 구조로 계약이 체결된다면 문제없겠지만 기본적으로 출혈 경쟁 구조인 수주 시장에선 이 같은 방안이 도입되기 힘들 것"이라고 꼬집었다.

정영희 기자 chulsoofriend@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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