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쯧쯧, 골로 갔구나”…일본선 성공했는데 한국선 왜 이 모양 [김기정의 와인클럽]
김기정의 와인클럽 26-프랑스 보졸레 누보 와인 vs 칠레 와인의 베를린 테이스팅
한국 소비자들은 무섭습니다. 구매하는 물건에 관한 공부를 무척이나 많이 하는 편입니다. 한 두번은 ‘마케팅’이 먹히겠지만 결국 브랜드의 실체가 드러나게 마련입니다. 소비 트렌드도 빨리빨리 바뀝니다. 한때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국민 00’의 칭호를 받았던 브랜드가 한순간에 외면받습니다. 한국이 많은 유명 브랜드의 ‘무덤’이 된 이유입니다. 그렇게 한국 소비자에 찍힌 품목 중 하나가 와인에서는 프랑스 와인 ‘보졸레 누보’(Beaujolais Nouveau)입니다. 반면 칠레 와인은 베를린과 서울에서 진행한 블라인드 테이스팅을 통해 한국 소비자의 사랑을 얻었습니다.
올해 들어 국내 와인업계가 극심한 침체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전년 대비 20% 이상 위축된 상황입니다. 특히 보급형 칠레 와인에 대한 수요가 급격히 줄고 있는데, 칠레 와인이 과거 프랑스 ‘보졸레 누보’ 와인의 길을 걷는 건 아닌가 하는 우려가 있습니다. 이번 주 김기정의 와인클럽은 ‘프랑스 보졸레 누보와인과 칠레 와인의 베를린 테이스팅’에 관한 스토리입니다.

한국에서도 편의점 채널을 중심으로 보졸레 누보가 출시됐지만 분위기는 차분한 편입니다. 지난주 한국에선 오히려 국내 와인수입사 크리스탈이 주최한 ‘샴페인 서울’이 와인 업계의 화제였습니다.
‘누보(Nouvau)’는 ‘햇’ ‘첫’이란 의미로 ‘보졸레 누보’는 보졸레에서 나오는 첫 와인을 의미합니다. 한국 소비자에게 ‘햇’이 주는 의미는 상당합니다. 햇과일처럼 신선함이 먼저 떠오릅니다. 보졸레 누보도 신선한 상태에서 편안하게 마실 수 있는 와인입니다.
하지만 고급 와인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보졸레 누보를 품질은 높지만 가격이 싼 ‘가성비’와인의 영역에 넣기도 힘듭니다. 그냥 편안하게 마실 수 있는 저렴한 와인입니다. 숙성잠재력이 높지 않아 장기 보관이나 해외 수출용 와인으로도 적합하지 않습니다. 수입사 입장에선 올해 못 판 보졸레 누보를 재고로 쌓아두고 내년에 팔기가 쉽지 않습니다.


와인 애호가들 사이에선 최근 프랑스 부르고뉴 와인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으면서 이웃동네 보졸레에 대한 재평가가 필요하다는 시각도 있습니다. 실제 보졸레는 행정구역상 부르고뉴에 속합니다. 부르고뉴 피노 누아 와인에 대한 인기가 높아지고 가격도 급등하고 있어 대안으로 가메라는 포도품종으로 만든 보졸레의 프리미엄급 와인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 자체가 독특한 맛을 내는 ‘발광체’라기 보다는 옆 동네 부르고뉴 피노 누아와 비슷한 맛을 내지만 가격은 그 보다 낮은 ‘반사체’에 가깝습니다. 보졸레 누보 및 보졸레 와인과와 관련한 이야기는 지난 5월 김기정의 와인이야기<퇴출된<a href="https://www.mk.co.kr/news/economy/10727641" class="ix-editor-text-link" target="_blank"> 포도 품종 ‘가메’…보졸레에서 화려한 부활>에서 자세하게 다뤘습니다.

무엇보다 가장 큰 변화는 소비자의 취향입니다. 전체적으로 소비가 줄었지만 입문용 와인들이 더 큰 타격을 받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게 ‘가성비’ 경쟁에 나섰던 칠레 와인입니다.
한국을 방문하는 칠레 와인업계 관계자들이 한국 와인 시장에 대해 말할 때 “편견이 없다”라는 표현을 많이 사용했습니다. 다른 나라 와인시장과 달리 한국 소비자들은 칠레 와인에 대한 편견을 가지지 않고 칠레 와인의 우수성을 누구보다도 빨리 인정해 줬다는 겁니다. 실제 단일 브랜드 기준, 한국서 가장 많이 팔린 와인으로 손꼽히는 몬테스와 1865가 모두 칠레 와인입니다.
남미에 위치한 칠레는 지리적으로 멀어 한국서 방문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칠레를 방문해서 무엇을 해야 할지도 딱히 떠오르지 않습니다. 한국인들이 많이 찾는 이탈리아와는 카테고리가 다릅니다. 여행을 가서 현지에서 마신 와인보다 더 맛있는 와인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소규모 이탈리아 와이너리들이 미국 나파밸리 와이너리처럼 관광객을 맞기 위한 시설에 투자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인스타그램에 올릴 수 있는 소위 ‘과시용’ 와인도 필요합니다. 보르도 5대 샤토, 유명 샴페인, 부르고뉴 와인, 이탈리아의 슈퍼 투스칸, 미국의 컬트 와인들이 대표적입니다.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오늘 나 이 와인 마셨어”라고 올리는 소비자들도 많은데 칠레 와인은 이런 ‘와우’효과가 작은 것도 단점입니다.

칠레 와인업계에선 한국 와인 소비시장을 누구보다 세밀하게 관찰하고 있습니다. 보졸레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꾸준하게 칠레는 최고급 와인들에 대한 마케팅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그중 하나가 칠레 최고급 와인들의 ‘버티칼 테이스팅’입니다. 버티칼 테이스팅이란 같은 생산자의 와인을 빈티지(포도수확 연도)별로 동시에 시음해 보는 것을 말합니다.
지난 10월 몬테스 와인의 창업자 아우렐리오 몬테스 회장이 한국을 방문해 최고급 라인인 ‘몬테스 알파 엠’의 버티칼 테이스팅 행사를 진행하고 갔습니다.
칠레와인이 버티칼 테이스팅에 관심을 두는 이유는 ‘숙성잠재력’에 대한 소비자들의 의구심 때문입니다. 칠레 와인의 가장 큰 장점은 지금 당장 맛있게 마실 수 있다는 점입니다. 수십 년을 숙성시켜야 맛의 정점을 찍는 보르도 와인과 달리 칠레 와인은 출시된 해에 마셔도 ‘절정’의 맛을 느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칠레 의 맛있는 기간이 오랜 기간 지속될 수 있는지는 여전히 와인 평론가들과 소비자들의 관심사였습니다.

칠레 에라주리즈 와이너리의 에두아르도 채드윅 회장이 아버지에 헌정하기 위해 만든 와인이 ‘비네도 채드윅’입니다. 비네도 채드윅 2014년 빈티지가 칠레 와인 최초로 평론가 점수 100점을 받으면서 칠레 와인이 글로벌 시장서 명성을 얻는데 큰 기여를 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2021년 빈티지가 가장 좋았습니다. 꽃과 과실이 어우러진 ‘향’이 압도적입니다. 영 빈티지라 타닌이 살아있지만 섬세하고 품질이 좋아 그 또한 사랑스러웠습니다. 복합적인 풍미와 함께 섬세한 와인의 정형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굳이 비교하자면 ‘100점’ 와인 2014년 빈티지보다도 더 좋았습니다. 2021년 빈티지는 역시 마스터 오브 와인(MW)인 팀 앳킨스와 로버트 파커의 와인 애드보케이트 평가자인 루이스 구티에레스로 부터 100점을 받았습니다. 제임스 서클링은 99점을 주었습니다.
그렇다면 칠레 와인은 역시 오래된 와인보다는 새로 출시된 와인이 더 맛있을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레스토랑 주은의 김주용 소믈리에는 2010년 빈티지를 ‘정점’에 오른 와인으로 평가했습니다. 김 소믈리에는 “13년간 숙성되면서 원숙미가 더해졌다”면서 “우아하면서도 복합미가 뛰어나다”고 평가했습니다.
참석자들로 부터 가장 높은 호응을 받은 와인은 2014년 빈티지였습니다. 2014년 빈티지는 와인 평론가 제임스 서클링으로부터 100점 만점을 받았습니다. 1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매혹적인 맛이 그대로, 혹은 더욱 더 잘 살아 있습니다.
유통업계에선 한국 소비자들에게 아직 가장 소구력이 강한 마케팅은 평론가 점수 ‘100점’이라고 합니다. 100점 와인들은 다른 ‘긴’ 설명이 필요 없다고 하네요.

예전에는 칠레 와인생산자들에게 ‘풀향’은 금기어에 가까웠습니다. 덜 익은 포도로 와인을 만들 때 이 향이 짙어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프랑스 와인에서도 풀향이 강한 것들이 있습니다. 지난 10월 비넥스포 코리아에 참가한 프랑스 와인 관계자는 “내가 만든 와인은 풀향이 강하게 난다”면서 “이는 테루아의 특징을 반영한 것이기 때문에 그 또한 개성”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저도 와인에서 느껴지는 ‘풀향’을 결함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포도품종이나 테루아, 심지어 빈티지의 특징을 반영했다고 봅니다. 포도품종으로 보면 카베르네 프랑에서도 독특한 풀향이 있습니다. 테루아로 보면 칠레 카베르네 소비뇽에서 ‘풀향’이 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빈티지별로는 따듯한 해, 차가운 해가 있는데 따듯한 해에 만든 와인은 지나치게 달콤해지기 쉽고 차가운 해에 만든 와인은 유독 풀향이 도드라질 수 있습니다. 칠레의 2016년 빈티지는 차가운 해였고, 풀향도 진합니다. 향을 제외하곤 맛의 복합미와 강건함은 채드윅의 명성 그대로입니다. 참고로 2021년은 서늘한 해로 평가되지만 ‘풀향’은 전혀 나지 않습니다.

파골라 매니징 디렉터는 “베를린 테이스팅 20주년 행사에서는 블라인드 테이스팅 대신 버티칼 테이스팅을 실시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프랑스 보졸레 누보는 과도한 마케팅으로 역풍을 맞으면서 전체 보졸레 와인의 평판을 해쳤습니다. 반대로 채드윅은 다양한 마케팅을 통해 칠레 와인은 ‘저가’라는 이미지를 탈피했습니다. 다만 2004년 블라인드 테이스팅에 나왔던 프랑스 와인들과 비교해 보면 채드윅 와인의 가격은 절반 수준입니다. 칠레 비네도 채드윅은 마케팅만으로 승부한 와인이 아니라 ‘진정성’을 가진 와인이라고 생각됩니다. 이러한 진정성을 한국 소비자들에게 어떻게 전달해야 할 지는 아직 숙제로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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