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들이 내 얼굴 뜯어먹었어”…출판사도 거절한 미친 폭력, 컬트가 됐다 [나쁜 책]
차량의 열린 창문 틈으로 누군가 총을 갈겼습니다. 운전석에 앉은 그녀의 턱뼈 전체가 부서졌습니다. 운전석에 턱뼈 조각이 걸려 있었습니다. 그녀는 직접 차를 몰고 응급실에 도착해 그대로 기절합니다.
깨어나 보니 얼굴은 붕대로 칭칭 감겼습니다. 누군가 병실 거울을 떼어버렸습니다. 결코 봐서는 안 될 모습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생명은 가까스로 건졌지만, 얼굴은 이제 ‘절반만’ 남았습니다.
치명적으로 아름다웠던 모델이 얼굴 반쪽을 잃어버린 이후의 사건을 통해 “나는 누구인가, 나를 나이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를 질문하는 걸작 ‘인비저블 몬스터’의 첫 장면입니다.
총격 테러, 방화와 폭발, 납치와 살인 등 소재로 인해 모든 출판사가 출간을 거절했던 문제작 ‘인비저블 몬스터’를 여행합니다.
그러나 지금은 병실, TV엔 그녀 미소가 환한 광고가 방송되는데, 그 미소를 가능하게 했던 얼굴의 ‘절반’이 이제는 없습니다. 가족도 애인도 그녀를 떠났습니다. 혀로 입천장을 자극하며 성대를 울리면 겨우 쇳소리가 났지만, 하관(下顴)이 없으니 발음이 부정확해 알아들을 수 없었습니다.
얼마나 끔찍했던지, 슈퍼마켓에서 보란 듯이 물건을 훔친 날에도 단 한 명의 점원조차 그녀를 말리지 않았습니다. 그녀를 제지하려면 얼굴을 마주 봐야 하는데 얼굴을 보기 두려웠으니까요. 물건을 훔쳐 계산대를 걸어 나오는데도 점원들은 딴 곳만 응시합니다.
‘나’는 브랜디가 설계한 범죄에 뛰어듭니다. 대저택 절취범이었습니다. 한 사람이 부동산 중개인을 1층에서 붙잡아 대화를 나누는 사이, 나머지는 2층 욕실과 침실에서 물건을 훔치는 식이었지요. 훔치는 물건은 주로 약이었습니다.
두 사람은 절도를 ‘약 사냥’으로 부릅니다. 진정제 발륨, 진통제 다르본, 응급피임약 에스티닐, 질염치료제 에스트랏 등등. 티가 나지 않을 정도로만 훔친 약을 직접 복용하거나 길거리에 내다 팔았습니다. 전직 일류 모델이었던 주인공 ‘나’는 이제 ‘말 못하는 가짜 상속녀’로서 두 번째 삶을 시작했습니다.
그녀는 모델 친구 이비를 강하게 의심했습니다.
이비는 주인공 ‘나’처럼 미인으로, 모델 일을 함께 했던 친구였습니다. 이비는, 주인공 ‘나’의 약혼자였던 매너스와 바람을 피웠습니다. 그런데 매너스는 이비가 총을 쐈다고 주장하고, 이비는 매너스가 범인이라고 항변합니다.
누구도 믿지 못하는 세상, 주인공 ‘나’는 화려한 카메라 세례를 받던 과거 자신이 진짜 ‘나’인지, 총격 테러 이후 ‘나란 누구인가’를 생각하는 ‘나’가 진짜 자신의 모습인지 혼란스럽습니다. 새로 만난 친구 브랜디는 ‘나’의 머릿속에서 진행되는 의심과 낙심을 적극 만류합니다.
브랜디의 사유와 논리는 치밀했습니다. 삶을 관조하고 인생 핵심을 꿰뚫는, 이지적 인물이었습니다.
◎ “네 얼굴이 망가졌다고 자책할 필요는 없어. 네 안에 진정한 너는 없어. 네 육체, 네 모든 세포들까지 팔 년 내에 새로운 것들로 바뀌니까. 네가 지니고 있는 모든 작은 분자들도 이미 과거에 수백만 명이 생각해낸 것들이야. 넌 네 문화 속에 갇혀 있어서 안전한 거야. 네가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이 훌륭한 건 네가 그것을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지. 도망치는 건 상상조차 할 수 없어. 세상은, 네 요람이자 덫이야.”(224~225쪽 발췌)
사람의 신체 세포는 길어야 7~8년이 지나면 ‘새 것’으로 바뀐다고 합니다. 기존 세포가 새로운 세포로 대체되는 데 걸리는 시간, 인간 몸 속에 있는 모든 것이 새로운 세포로 바뀌는 시간이 그 정도라고 하네요. 정신을 육체와 분리할 수 없다면 ‘진짜 나’의 규정은 과연 어느 시점에 가능한 걸까요(①).
또 인간은 누구나 신체 속에는 미생물이나 세균이 들어차 있습니다. 불결해 보이지만, 사실 인간이란 존재는 그것들이 몸 내부에 없으면 살아갈 수 없습니다. 인간이 ‘내가 아닌 것’과 공존해야 생존하는 존재라면 ‘나인 것’과 ‘내가 아닌 것’의 구분은 과연 가능한 걸까요(②).
‘인비저블 몬스터’는 난제 ①, ②, ③에 대한 해답을 찾아가는 긴 여정입니다.
수많은 인물이 등장하고, 서로 공통점이 없어 보이는 이야기가 전개되다가 하나의 사건, 하나의 주제, 하나의 결말로 수렴합니다. 작가 척 팔라닉은 이 소설의 마지막 대목에 이르러 독자에게 둔중한 타격감까지 줍니다. 그 정도로 잘 짜인 서사, 기막힌 결말과 충격적인 반전이 매력적입니다.
다 읽은 뒤 세어봤더니 작가가 준비한 소설 속 반전만 대략 ‘7개’입니다. 독자가 안심할 즈음에 다시 심장을 조이고 의문이 풀릴 즈음에 다시 꽉 조여버리는 작품. 그래서 ‘방금 내가 읽은 것이 내가 지금 생각한 그것이 맞는가’라는 느낌까지 주는 걸작입니다.
척 팔라닉은 ‘인비저블 몬스터’ 이후 다음 작품으로 장편소설 ‘파이트 클럽’을 씁니다. 공허감이 가득한 회사원 잭이 “싸워봐야 네 자신을 알게 된다”고 말하는 의문의 남성 테일러 더든을 만나 ‘파이트 클럽’이란 지하 비밀 조직을 만들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입니다.
척 팔라닉의 소설 ‘파이트 클럽’은 세계적 거장 데이빗 핀처 감독과 배우 브래드 피트·에드워드 노튼 주연의 동명 영화로 제작되면서 세계 베스트셀러 반열에 오릅니다.
척 팔라닉의 오기가 ‘오만’이 아니었음이 증명한 셈이었지요. ‘파이트 클럽’의 세계적인 성공으로 인해 ‘인비저블 몬스터’도 강제소환됩니다. 이후 ‘인비저블 몬스터’에는 ‘파이트 클럽 여성판’이란 별명까지 붙었습니다.
사람의 얼굴은 그 자신의 정체성을 이루는 가장 상징적인 외피입니다. 타인과 구별되는 특성이 바로 얼굴에 다 담겨 있지요. 주인공 ‘나’의 과거 얼굴은 모두가 부러워 하는 선망의 대상이었지만 사고 이후, 얼굴 반쪽을 잃습니다. 그녀가 머리에 베일을 두른다는 건 자신을 세계로부터 은폐하는 행위, 즉 자기 정체성을 부정하고 또 부정 당하는 일이었습니다.
여기서 친구 브랜디는 강조합니다. 얼굴을 잃었다는 자괴감에 빠지는 대신, 자신의 내면을 보라고 말이지요. 이건 ‘뻔한’ 제언이 아니었습니다. ‘새 이름을 붙여주고, 새 직업을 가지도록 하는 것. 그리고 너의 것과 너의 것이 아닌 것을 구분할 수 없음을 깨닫게 하는 것.’ 이것이 브랜디의 주문이었습니다.
결국 ‘인비저블 몬스터’는 얼굴과 이름, 가족과 애인을 잃은 주인공 ‘나’를 통해 인간의 흔들리는 정체성을 사유합니다. 그리고 그 고민의 끝에서 ‘나란 누구인가, 나를 나이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에 답하기를 유도합니다. ‘나’라는 모든 특성이 제거된 자리, 내 안의 ‘투명 괴물(invisible monster)’는 어떤 모습일까요.
영화 ‘트루먼쇼’(1998)부터 볼까요. 30대 트루먼 버뱅크는 자신을 평범한 보험회사원으로 여기지만 사실 그는 실시간 리얼리티 쇼 ‘트루먼쇼’ 주인공이었습니다. 생애 전체가 ‘도촬’되어 수억 명에게 생중계 중이었지요. 트루먼은 ‘나’를 찾아 세트장 바깥으로 향합니다.
‘매트릭스’(1999)는 또 어떤가요. 해커 앤더슨은 모피어스가 내민 ‘빨간 알약’을 먹은 뒤 자신의 정체를 깨닫습니다. 인간은 그저 기계가 사용하는 ‘체온 36.5도짜리 배터리’에 불과하며, 오감으로 인식된 현실은 기계가 만들어낸 환상임을 직시합니다. 앤더슨은 메시아 ‘네오’가 됩니다.
그뿐인가요. 10분마다 기억을 망각하는 남성이 몸에 문신으로 새겨 복수를 꿈꾸는 ‘메멘토’(2001), 헤어진 연인과의 추억을 기계장치로 지우려는 남성을 그린 ‘이터널 선샤인’(2004)도 ‘나란 무엇인가’라는 공통된 질문을 던집니다. 이게 과연 우연일까요?
‘인비저블 몬스터’ ‘파이트 클럽’ 등 1990년대엔 정체성의 혼돈을 지적하는 작품이 쏟아졌습니다. 관객과 독자들이 그런 작품에 적극 반응했다는 것은 자기를 확신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불안심리가 전지구적 고민거리이자 시대정신이었다는 증거일 겁니다.
‘내가 나이도록 하는 조건은 결국 나만이 결정 가능한 문제인지 모른다’(인비저블 몬스터), ‘나의 내부에 나조차 알지 못했던 또 다른 존재가 있을 수 있다’(파이트 클럽), ‘세계는 마치 기획된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진짜 나의 모습이 아닐지도 모른다’(트루먼쇼), ‘세계 전체가 인위적으로 설계된 이계(異界)일 수도 있다. 인간의 인지능력과 감각은 허구일 수 있다’(매트릭스), ‘나를 구성하는 건 나의 기억이다. 그런데 기억을 잃는다면 나는 과연 누구인가’(이터널 선샤인), ‘기억이 인간의 과거, 현재, 미래를 잇는다고 할 때 기억을 잃은 나란 존재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메멘토) 등의 질문은 ‘여럿이면서 동시에 단 하나인 문제’가 되지요.
따라서 ‘자기 정체성의 혼돈’이란 주제는 우리가 오래 고민해 왔던 물음으로 이해됩니다. ‘인비저블 몬스터’의 주인공 ‘나’는 결국 그녀의 여정에 동참하려는 독자와 조응하며 고민을 이식합니다.
또 주인공 ‘나’와 브랜디 등 등장인물이 쓰는 가명이 5개도 넘습니다. 책장을 함부로 넘기며 읽었다가는 다음 장에 나오는 인물이 누구를 지칭하는 건지 몰라 책 속에서 길을 잃게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마지막 결말에 이르면 ‘헉’ 하는 탄식과 감탄이 불가피할 정도로 반전을 거듭하는 마력을 가진 소설이지요. 난수표 같은 작품, 그럼에도 읽는 재미가 쏠쏠해 서너 시간이면 완독 가능한 묘한 책입니다.
소설 ‘인비저블 몬스터’는 위에서 언급된 ‘좋은 책의 조건’을 모두 갖췄습니다. 흥미진진하면서 전에 없던 새로움을 갖췄는데, 독자에게 ‘하나의 불편한 질문’까지 남기기 때문이지요. 그 질문은 이렇습니다. ‘과연 이 책을 읽고 있는 독자인 나 자신의 참된 자아는 어떤 모습인가.’
나 자신을 확신할 수 있다는 건 축복일까요, 저주일까요. 척 팔라닉은 바로 그 점을 묻습니다.
그 말을 들은 주인공 ‘나’는 결말에 이르러 드디어 깨닫습니다. ‘추해지는 것은 흥분되는 일은 아닐지라도,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나은 무언가를 위한 ‘기회’가 될 수 있다.’(295쪽)
이 책이, 독자 모두에게 ‘나를 나이도록 하는 건 무엇인가’를 고민케 하는, 하나의 치명적인 심연의 총상같은 ‘기회’가 되길 소망합니다. 책을 완독해도, 턱뼈는 무사할 겁니다.
※다음주에는 1988년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나지브 마흐푸즈 ‘우리 동네 아이들’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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