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OTT가 대체할 수 없는 ‘TV만의 가치’

한겨레 2023. 11. 25.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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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S] 이승한의 술탄 오브 더 티브이][한겨레S] 이승한의 술탄 오브 더 티브이
올드 미디어의 미래
U2 ‘MSG 스피어’ 공연 몰입감
미디어 형태, 콘텐츠 내용 결정
TV, 유튜브에 밀릴 운명 아니고
‘공동체 경험’ 복원할 가능성도
지난 9월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 ‘엠에스지 스피어’에서 열린 록밴드 유투의 공연 장면. 고화질 동영상 재생이 가능한 대형 엘이디 패널에 지구 모습이 구현됐다. 유튜브 동영상 갈무리

지난 9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 완공된 ‘엠에스지(MSG, 매디슨 스퀘어 가든 컴퍼니) 스피어’는 지름 150m의 구형 공연장이다. 착공부터 개장까지 공사기간 총 5년, 공사비용 약 3조원에 이르는 이 초대형 공연장에는 공연장 내벽과 건물 외벽 전체에 16케이(K) 고화질 동영상을 재생할 수 있는 엘이디(LED) 패널이 설치돼 있다. 건물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구형 전광판인 셈이다. 그런 까닭에 스피어의 외벽에선 항상 영상이 재생 중이다. 화면 위에 이모지를 그려넣어 건물 자체가 하나의 캐릭터인 것처럼 연출할 수도 있고, 잔물결이 구체 위를 끊임없이 흘러가는 듯한 화면을 연출할 수도 있다. 건물이 완공되기 전부터 스피어의 외벽을 통해 지구나 달, 농구공, 불꽃 등 다양한 이미지가 구현됐고, 스피어의 주목도를 일찌감치 알아본 하이네켄이나 소니 등의 대기업들 또한 스피어 외벽에 광고를 집행해 사람들의 눈길을 끌기도 했다.

동그란 구체 위에 영상이 입혀지는 스피어의 외관이 그냥 신기한 도락이라면, 객석에 앉아 둘러볼 수 있는 거의 모든 시야에 엘이디 패널이 설치된 스피어의 내부는 압도적인 몰입감을 선사한다. 정면에서부터 천장까지, 왼쪽 끝에서부터 오른쪽 끝까지 시야를 가득 채운 화면에서 재생되는 초고화질 영상은 보는 사람의 공간감을 왜곡한다. 보는 사람의 시야를 가득 채운다는 개념으로는 아이맥스(IMAX)를, 스크린의 개념을 ‘정면’이 아니라 좌우로 확장해서 생각한다는 개념으로는 씨제이씨지브이(CJ CGV)가 카이스트와 함께 개발한 스크린 엑스(Screen X)를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꺾이는 모서리 없이 원형으로 완만하게 이어지는, 아이맥스 스크린 4배 크기의 엠에스지 스피어 내부 화면이 주는 몰입감은 아이맥스나 스크린 엑스와의 비교를 어렵게 만든다.

새로운 화면 채우려 특별한 콘텐츠가

지난 9월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 ‘엠에스지 스피어’에서 열린 록밴드 유투의 공연 장면. 고화질 동영상 재생이 가능한 대형 엘이디 패널에 라스베이거스 전경이 구현됐다. 유튜브 동영상 갈무리

그 몰입감을 실감하게 만들었던 건 유튜브에 올라온 아일랜드 밴드 유투(U2)의 공연 실황 영상이었다. 스피어 개관과 함께 열린 유투의 콘서트에서 스피어 내부 엘이디 패널은 엄청난 위력을 과시했다. 콘서트의 오프닝, 밴드가 서 있는 무대 뒤 화면 위엔 콘크리트 블록으로 쌓은 벽이 갈라지면서 빛이 새어 들어오는 영상이 상영된다. 관객들은 마치 건물 전체가 실제로 갈라지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그런가 하면 유투가 ‘이븐 베터 댄 더 리얼 싱’(Even Better Than the Real Thing)을 부를 때에는 인공지능과 컴퓨터 그래픽으로 구현한 엘비스 프레슬리의 모습이 만화경처럼 건물 내벽 전체에 펼쳐진다. ‘아토믹 시티’(Atomic City)를 부를 때에는 라스베이거스의 전경이, ‘웨어 더 스트리츠 해브 노 네임’(Where the Streets Have No Name)을 부를 때엔 끝도 없이 펼쳐진 사막의 지평선과 푸른 하늘이 시야를 가득 메운다. 그 결과는 압도적이다. 누군가 그 대목만 갈무리해서 올린다면, 마치 유투가 허허벌판에 무대를 세워놓고 야외 공연을 하고 있는 거라고 우겨도 믿을 수 있을 만큼.

우리는 흔히 콘텐츠가 우선이고 미디어가 그다음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유튜브와 오티티(OTT)의 등장 이후, 우리는 똑같은 콘텐츠를 어떤 스크린을 통해서 보느냐에 따라 미디어 체험이 달라지는 것이라 믿게 되었다. 영화 ‘아이리시맨’을 극장에서 보느냐, 넷플릭스를 통해서 보느냐, 문화방송 드라마 ‘연인’을 티브이를 통해서 보느냐, 스마트폰에 깔린 웨이브 애플리케이션을 통해서 보느냐가 우리의 미디어 체험과 습관을 바꾸는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유투의 스피어 공연 실황은 콘텐츠가 미디어에 우선하는 것이 아니라 미디어의 형태가 콘텐츠를 결정한다는 걸 다시 한번 일깨워 준다. ‘16케이 초고화질 엘이디 패널이 빼곡하게 붙은 구형 내벽 형태의 스크린’이라는 미디어를 채우기 위해, 유투와 그 콘서트 팀은 게임 엔진을 활용해 제작한 광활한 평원과 끝없이 펼쳐진 수평선을 보여줬다. 성당 돔 내부 벽화를 연상시키는 구도로 그려진 멸종위기 동물들이 콘서트장 내부를 가득 메우는 영상을 만들어 상영했다. 전에 없던 형태의 화면을 채우기 위해, 그 화면을 통해 상영되는 콘텐츠 또한 전에 없던 형태를 지니게 된 것이다.

TV·유튜브·오티티, 비슷한 미디어 ‘착시’

흔히 유튜브와 오티티의 시대라고, 이제 티브이의 시대는 끝났다고 말한다. 5~6년 전까지만 해도 온라인에서 가장 많이 재생된 동영상 클립들은 각종 티브이 예능이나 드라마의 하이라이트 영상이었고, 그래서 “10대들이 티브이를 보지 않을 뿐이지, 티브이 콘텐츠를 보지 않는 건 아니다”라는 낙관이 돌았다. 하지만 불과 5~6년 사이 유튜브와 오티티를 무대로 오리지널 콘텐츠를 선보이는 창작자들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고, 트렌드를 주도하는 젊은 층은 이제 굳이 티브이 콘텐츠를 보려 하지 않는다. 그래서 문화방송 ‘놀면 뭐하니?’에 출연했을 때 이경규는 티브이 앞에 앉아 있는 사람들을 공략해야 한다며 이렇게 일갈하기도 했다. “방송국이 시청률 조사를 할 때 (구매력이 높아서 주요 광고 타깃으로 여겨지는 20~49살 시청자들을 일컫는) 2049를 조사하더라고요? 그 사람들이 뭐 소비층이라고 하는데, 천만의 말씀이에요. 돈은 506070이 가지고 있어요.” 적어도 젊은 층으로 국한했을 때, 티브이가 유튜브·오티티와의 경쟁에서 패배했다는 것은 이제 당연한 상식처럼 되어버렸다.

지난 9월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 ‘엠에스지 스피어’에서 열린 록밴드 유투의 공연 장면. 고화질 동영상 재생이 가능한 대형 엘이디 패널에 사람 눈동자 모습이 구현됐다. 유튜브 동영상 갈무리

하지만 어쩌면 티브이와 유튜브, 오티티를 경쟁 구도로 생각하는 것 자체가 사실은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것인지도 모른다. 유튜브와 오티티는 기존에 티브이가 수행해 왔던 엔터테인먼트의 역할을 대체하려 하는 중이고, 그 과정에서 일시적으로 유사한 형태의 콘텐츠를 놓고 티브이와 경쟁 중이다. 그 경쟁이 마치 티브이와 유튜브, 오티티가 비슷한 미디어인 것 같은 착시현상을 일으키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다. 유튜브와 오티티는 언제든지 원하는 콘텐츠를 꺼내어 볼 수 있기에 사용자마다 각기 다른 시간대에 콘텐츠를 소비한다는 ‘비동시성’이란 특수성과, 개별 사용자의 시청 패턴을 분석한 알고리즘이 사용자들에게 각기 다른 콘텐츠를 추천한다는 ‘상호작용성을 통한 개인화’라는 특징을 지닌 미디어다. 반면 티브이는 정해진 편성표에 따라 프로그램을 순차 방영하기에 모두가 같은 시간에 같은 프로그램을 보게 된다는 ‘동시성’과, 개인화가 불가능한 대신 모두가 같은 프로그램을 접하게 된다는 ‘공동체 경험’, 그리고 어디에나 존재한다는 ‘보편성’이란 특징을 지닌 미디어다. 스피어에서 상영된 유투 콘서트 배경 영상이 ‘스피어’라는 특수한 형태의 미디어에 맞춰서 나온 콘텐츠인 것처럼, 콘텐츠의 내용은 결국 미디어의 형태가 결정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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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편성과 동시성…TV여서 가능한 콘텐츠

티브이는 ‘동시성’과 ‘공동체 경험’, ‘보편성’이라는 미디어 특징에 맞춰 콘텐츠 전략을 다시 수립해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다. 유튜브나 오티티는 할 수 없는, 오로지 티브이이기 때문에 가능한 콘텐츠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것이다. 감이 잘 안 잡힌다면 잠시 지역방송을 생각해보자. 엠비시(MBC)경남은 노령화로 인한 지역소멸 위기에 놓인 경남 의령군을 배경으로 한 ‘시스터즈 가든’이란 프로그램을 제작했다. 마을재생사업의 일환으로 가드닝 카페를 열게 된 다섯 여성이 경험하는 여정을 다룬 이 다큐멘터리는, 동일 지역에 거주하는 시청자들이 같은 프로그램을 보고 공동체의 문제를 함께 고민하게 만드는 ‘공동체 경험’을 제공한다. 이런 경우는 어떨까? 케이블티브이 사업자 엘지(LG)헬로비전이 2017년 포항 지진 때 처음으로 재난방송 뉴스에 영어 자막을 송출한 것을 시작으로, 전국 권역별 케이블티브이 사업자들은 최대 3개 국어 이상을 재난 정보로 제공하고 있다. 지역에 따라 해당 지역의 외국인 비율에 맞춰 다른 언어의 자막을 제공하고 있는 케이블티브이의 노력은, 모든 사람들이 중요한 정보를 ‘동시’에 ‘보편적’으로 얻을 수 있다는 티브이만의 특징을 더욱 극대화한 전략이다. 얼핏 사소해 보일지 몰라도, 이런 것이야말로 유튜브나 오티티가 대체할 수 없는 티브이만의 가치다.

티브이의 시대가 끝났다거나, 이미 대세는 유튜브로 기울었다는 말을 하는 건 너무나 쉬운 일이다. 이미 수많은 티브이 인력들이 유튜브에도 진출해 양쪽에서 활동을 병행하고 있거나, 혹은 아예 유튜브로 활동 무대를 완전히 옮기는 사례도 점점 증가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섣부르게 티브이의 미래를 낙관하는 건 근거 없는 희망처럼 보일 수 있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티브이만이 할 수 있고 티브이가 수행해야 하는 역할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개인화된 알고리즘으로 파편화된 채 자기만의 재생목록에 갇힌 시청자들의 손을 붙잡고, ‘지금’ ‘함께’ ‘우리’를 이야기하자고 설득하는 일, 그를 통해 점점 사라져가는 공동체 경험을 복원하는 일. 어쩌면 티브이도 그런 일을 수행하는 미디어로 자신을 재발명함으로써 새로운 소명을 얻고 그 수명을 연장할 수 있지 않을까? 가장 미래적인 미디어 체험을 제공하는 엠에스지 스피어를 보면서 내가 떠올린 생각은, 엉뚱하게도 ‘올드 미디어’가 된 티브이의 미래였다.

티브이 칼럼니스트

※연재를 마칩니다. 작가와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정신 차려 보니 티브이를 보는 게 생업이 된 동네 흔한 글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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