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한장]경찰은 왜 채증을 하나?

조인원 기자 2023. 11. 25. 08:01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보는 것이 권력이 된 시대의 풍경
2023년 11월 13일 오후 서울 광화문사거리 동화면세점 앞에서 경찰이 캠코더로 채증을 하고 있다. /조인원 기자

“전부 채증해!”

지난 13일 오후 서울 광화문사거리 동화면세점 앞, 누군가의 명령이 떨어지자 일제히 경찰의 캠코더가 하늘로 솟구쳤다. 집회 불허에 항의하는 사람들에 대해 경찰의 채증이 시작됐다. 이날 이곳에 경찰의 채증 카메라는 20개가 넘었다. 이날 현장은 특별한 불법행위 때문이 아니라 민주노총의 야간 집회를 앞두고 주변에서 대기하던 채증 경찰들이 한꺼번에 몰린 것이다.

언제부터인지 집회 현장에서 사진기자들의 카메라 말고도, 폰카를 든 유튜버들과 모노포드에 캠코더를 든 채증 경찰들을 자주 본다. 대체 경찰은 카메라로 누구를 왜 촬영할까?

지난 2021년 1월 1일부터 시행된 경찰청의 ‘집회 등 채증활동규칙’의 제 2조 1항에 따르면 “채증은 집회 등 현장에서 범죄수사를 목적으로 촬영, 녹화 또는 녹음하는 것을 말한다”고 명시되어있다. 서울지방경찰청 소속 관계자에게 궁금한 것들을 물어보았다.

2023년 11월 13일 오후 서울 광화문사거리 동화면세점 앞에서 경찰이 캠코더로 채증을 하고 있다. /조인원 기자

관계자는 채증은 집회 때 계속하는 것이 아니고 폭력이나 기물 파손 등의 불법행위가 이뤄질 것을 대비한 촬영이라고 했다. 불법 행위가 촬영되면 수사팀에 영상을 넘겨 이것으로 피의자를 식별하고 조사하는데, 불법행위까지 이어지지 않으면 영상은 삭제한다고 답했다.

또, 경찰서마다 채증 담당 경찰이 있고, 일정한 교육을 받아서 채증하며 집회 관리도 함께 한다고 했다. 그런데 민주주의 국가에서 경찰이 시민 개개인을 임의로 촬영한다면 반발하지 않을까 궁금했다. 서울시경 관계자는 “경찰은 불법 활동을 막아야 하기 때문에 반발에도 채증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또 상대에게 반드시 ‘채증 사실을 알려야 하는 의무(제 9조 1항)’도 있다.

과거엔 채증 경찰들이 스틸사진을 위주로 찍었지만, 요즘은 4K 고화질 영상을 위주로 촬영한다. 그런데 여기서 드는 한 가지 의문은 경찰들이 가벼운 캠코더를 모노포드에 달아 들고 촬영할 때 영상이 흔들리지 않을 리 없다. 아무리 4K 고화질 카메라라도 동영상은 흔들리면 제대로 된 이미지가 잡히지 않는다. 대부분의 영상 카메라를 무거운 삼각대로 땅에 고정시키는 이유도 흔들리지 않기 위함이다. 과연 가벼운 캠코더를 공중에 들고 찍는 방법이 얼마나 제대로 나올지 의문이다.

2023년 11월 20일 서울 광화문사거리에서 한 경찰이 모노포드에 캠코더를 장착하고 채증을 준비하고있다. / 조인원 기자

18세기 영국의 공리학자 제레미 벤담이 원형감옥인 ‘파놉티콘(Panopticon)’을 구상하면서 사람들은 ‘보는 능력’을 권력에 비유하게 되었다. 파놉티콘은 중심에 감시자의 자리가 있고, 원으로 수감자들방이 배치되어 어디서든 효율적인 감시가 가능한 벤담의 독창적인 감옥 설계도였다.

그러나 이젠 어디를 가도 도로의 CCTV가 나를 보고 있고, 주차장의 빈차 앞을 지나가도 블랙박스가 촬영한다. 촬영이 손쉬운 작은 카메라 덕에 소매치기는 사라졌지만 몰카범죄가 생겨났다.

경찰은 이제 몽둥이 대신 비슷하게 생겼으나 카메라 지지대로 쓰는 모노포드에 영상 촬영용 캠코더를 달고 채증을 한다. 보는 것을 기록하는 활동은 이제 사회를 감시하게 되었고, 반대로 개인은 타인의 카메라를 두려워하고 시간이 갈수록 사람들은 찍히지 않을 권리를 주장할 것이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