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번역기론 영원히 알 수 없는 매력[책과 삶]
나와 타인을 번역한다는 것
줌파 라히리 지음 | 이승민 옮김
마음산책 | 276쪽 | 1만7000원
영국 런던의 뱅골 출신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난 줌파 라히리는 영어로 생각하고 연구하고 글을 쓰던 사람이었다. 어머니의 모국어인 벵골어도 능통했다. 라히리는 어느 날 갑자기 이탈리아어로 글을 쓰겠다고 선언한다. 퓰리처상 수상 작가가 가장 잘 쓰는 두 가지 언어를 포기한 채 전혀 낯선 언어로 뛰어든 것이다. 놀랍게도 라히리는 이탈리아어로도 성공적인 작품을 써냈다.
라히리는 영어와 벵골어라는 두 가지 언어 구사자로서, “나 자신과 다른 이들에게 이 두 언어를 끊임없이 번역해왔다”고 한다. 즉 “작가이기 전부터 번역가”였다는 것이다. <나와 타인을 번역한다는 것>(원제 Translating Myself and Others)은 번역에 대한 라히리의 통찰이 담긴 에세이다. 자신이 이탈리아어로 쓴 소설을 스스로 영어로 번역하는 것이 옳을지에 대한 고민부터 흥미롭다. 라히리는 “주어진 언어로 쓴 글은 보통 그 상태로 남아 있지만, 번역은 그것이 다른 모습을 띠도록 강제한다”면서 “난관이나 방해물이 없는 무조건적인 개방은 나를 자극하지 못한다”고 설명한다. 하나의 언어권에서 생성된 생각과 언어를 다른 언어권으로 이식하는 과정의 난관은 “과격하고 고통스럽고 경이적인 변화”를 수반한다는 것이다. 라히리는 자신의 이탈리아어 글을 스스로 영어로 번역한다면, 그것은 창의적인 번역이라기보다는 ‘고쳐쓰기’가 되지 않을지 우려한다.
라히리는 “번역이 가장 치열한 형태의 읽기와 다시 읽기”라고 말한다. 번역을 해보지 않은 작가는 내성에 갇히지만, 번역 하는 작가는 “주어진 언어의 한계를 인식하고 크게 도약”한다고 본다. 책은 AI 번역기를 돌려서는 영원히 알 수 없는 번역의 매력을 다시 일깨운다.
백승찬 기자 myungworry@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민주 서영교 “김건희 여사 성형 보도한 카자흐 언론…속상해”
- [단독] 액트지오·검증단·석유공사 ‘수상한 삼각 연결고리’ 찾았다
- [단독]이승기 장인 주가조작 ‘유죄취지’···판결문 뜯어보니 견미리도 ‘연루’
- 이성윤 “특활비로 술먹고 민원실에 대변 본 검사들...공수처 조사해야”
- [주말N] 아, 부럽다···땅부자에 세금도 내는 ‘600살 석송령’
- 하천에 따릉이 27대 집어 던진 남성 경찰 출석···혐의는 부인
- 저커버그 집에 홀로 찾아간 이재용…메타·아마존·퀄컴 CEO와 연쇄 회동 “AI 협력 확대”
- 요즘 당신의 야식이 늦는 이유···배달 생태계가 파괴되고 있다
- 부산 사직 뒤흔든 카리나 시구에 담긴 '프로야구와 연예인'의 상관관계
- ‘김건희 명품백’ 폭로한 기자 “내 돈으로 샀다, 이제 돌려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