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고기가 맛있는지는 알아도 ‘동물이 뭘 먹고 사는가’엔 관심 없다[우당탕탕 귤엔터]

기자 2023. 11. 24.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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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동물을 소비하는 방식
오렌지는 몰랐지만 오렌지 뒷통수 뒤로 남방큰돌고래들이 뛰어놀던 날.

한밤중 한적한 공원을 걷다가 하수구에서 들려오는 기묘한 웃음소리를 듣고 공포에 떨었던 기억이 있다. 몇 년 전 추운 겨울, 금배와 아직 서울에 살던 시절 밤이 깊은 시각 동네 공원을 산책하던 도중 있었던 일이다. 배수구 철창 너머로 곡소리 같기도 하고 기분 나쁜 웃음소리가 먼 곳에서부터 들려오고 있었다. 공포영화에서나 들어볼 법한 소리에 하수구에서 누군가 못된 장난을 치는 줄 알았다. “거기 누구 있어요?” 말을 걸어보았지만 소리는 우리의 질문에 아랑곳하지 않았고 심지어 점점 가까워졌다. 두려워 도망치고 싶은 마음 반, 무엇인지 확인하고 싶은 호기심 반으로 금배와 우리는 긴장한 채로 어두운 하수구를 노려보고 있었다. 설령 귀신이나 이상한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쇠 철창이 있으니 어떻게 대처할 수 있지 않을까 하며 소리의 정체를 기다렸다. 마침내 모습을 드러낸 것은 뜻밖에도 귀엽게 생긴 털북숭이 동물이었다. 귀여운 얼굴과 사뭇 대비되는 목소리를 가진 그 동물을 보고 우리는 처음에 유기된 라쿤이라고 생각했다. 동물원에서 솜사탕을 물에 씻어 먹는 라쿤의 모습이 웃긴 영상으로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것을 종종 본 적이 있었고, 특이한 반려동물로 선호되기도 한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검색해보니 우리가 만난 동물은 라쿤이 아니라 야생 너구리였다. 찾다 보니 둘의 차이점을 알게 되었는데, 애초에 둘은 유전적으로 거리가 먼 다른 종의 동물이었다.

비슷한 일로 한 번은 빌라 주차장에서 길고 가느다란 허리를 가진 동물이 빠르게 건물 뒤로 사라지는 것을 목격한 적이 있었다. 이번에는 유기된 페럿인가 했는데 찾아보니 야생 족제비였다. 너구리와 족제비를 연달아 만나며 야생동물이 도심에 있어도 괜찮은 것인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야생동물을 구조하는 곳에 문의를 넣어보니, 도심에는 우리가 아는 것보다 많은 야생동물이 함께 산다는 것과 그렇기 때문에 부상을 당해 도움이 필요한 야생동물만을 구조한다는 답변을 받을 수 있었다. 그사이 너구리와 라쿤 그리고 페럿과 족제비에 대해 구분할 수 있게 되면서 우리가 알고 있는 동물의 범주가 반려동물이라는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반려동물 외의 동물에 대해 거의 아는 바가 없었던 것이다.

개들과 제주를 걷다보면 자연을 가까이 만나게 된다. 산책길에 바다를 바라보며 돌고래를 찾고 있으면 오렌지도 가만히 주변 냄새를 맡으며 기다려준다(왼쪽 사진). 바닷가에서 풍경이 된 필자와 오렌지.

이와 같은 일은 제주로 이주해서도 몇 번 반복되었다. 얼마 전에는 4차선 대로변을 횡단하려는 오리를 만나게 되었는데 어떻게 저지해야 하는지 방법을 알 수가 없었다. 급한 대로 ‘오리 잡는 법’ 등을 검색해보았으나 인터넷 검색 결과로는 ‘오리 냄새 잡는 법’ 같은 것만 나왔다. 오리가 잡혀있는 사진은 죄다 두 날개가 뒤로 꺾여 축 늘어진 모습이었다. 눈앞의 오리를 그렇게 잡을 수는 없었다. 결국 양팔을 뻗어 엉거주춤한 자세로 오리를 가로막고 서서 대로변으로 다가가지 못하게 하는 것이 우리의 최선이었다. 그즈음에 우리 집 마당으로 오후 6시만 되면 찾아와 새벽까지 잠을 자고 가는 닭이 생겼다. 며칠 그러다 말겠지 했던 닭은 정확히 시간을 지키며 마당의 으슥한 조경석 위에 올라가 잠을 자고 새벽이면 사라졌다. 닭이 찾아올 시간이 되었는데 보이지 않아서 골목을 내다보았더니 차를 이리저리 피하여 우리 집 마당으로 쏙 들어오는 것을 발견했을 때는 반갑기까지 했다. 그 닭에게 ‘닭스훈트’라고 이름을 지어주고 닭이 어떻게 생활하는지 궁금하여 이런저런 자료들을 검색해봤지만 역시나 닭의 생활이나 선호에 대한 정보는 거의 찾을 수 없었다.

여름밤에는 산책하다가 누군가의 휴대폰 불빛이거나 가로등빛이 어른거리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불빛의 정체가 반딧불이였다는 것을 깨닫는 일도 있었다. 개똥벌레가 반딧불이라는 것도 최근에 반딧불이에 대해 검색해보고 나서야 알게 된 것이다. 동물의 똥무더기처럼 습하고 구석진 곳에서 발견할 수 있어서 개똥벌레라는 이름으로도 불린다고. 그 말처럼 반딧불이는 여름밤 산책하다가 음습한 곳을 가만히 노려보고 있으면 쉽게 만날 수 있었다. 휴대폰 불빛을 바라보며 걷는 것이 아니라 반딧불이를 고대하며 산책할 때면 절로 콧노래가 나왔다. 개들과 걷다 보니 같은 공간에 함께 살고 있던 다른 존재들과 조우하게 되며 그들을 알아가는 일이 무척 즐겁고 흥미로웠다.

도심서 만나는 야생 동물에 대해
의외로 무관심하면서 무지하다
대부분 비용을 지불하는 형태로
동물원·아쿠아리움을 관람하고
펫숍·정육점서 동물을 소비한다
제주, 돌고래 생태 법인 지정 추진
동물에게 인간과 같은 권리 부여
동등한 공존 모색…반가운 소식
“동물을 우리에 가두고 구경했대”
훗날 이런 얘기가 오가길 바란다

요새 우리를 가장 즐겁게 하는 일들 중 하나는 야생 돌고래들을 보는 것이다. 아침 산책길에 우연히 바다를 횡단하는 남방큰돌고래 무리를 만나게 되었다. 그 뒤로 우리는 아침 산책길을 아예 바닷가로 정하고 돌고래 탐방을 겸하고 있다. 이런 산책에 꽤 익숙해진 오렌지와 금배는 우리가 바닷가에 서서 먼 곳을 가만히 응시하고 있으면 곁에서 자기들도 돌무리 아래에 밤새 실려온 온갖 냄새를 맡으며 기다려준다. 어린 시절 여러 미디어에서 친숙하게 보아온 돌고래라는 존재는 신비로운 환상의 동물에 가까웠는데, 야생돌고래들이 우리나라 연안에 머무르며 오랫동안 살아오고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을 때에는 적잖이 놀랐다. 이렇게 만나는 야생 돌고래들이 더욱 반가운 것은, 그 안에 우리가 아는 제돌이와 동료들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다. 제주 앞바다에서 불법으로 포획되어 동물원의 쇼돌고래로 살다가 방류되어 자유를 되찾은 돌고래들 삶의 굴곡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어릴 적 서울대공원 소풍에서 쉽게 보았던 돌고래들이 원래는 이렇게 끝없이 이어진 바다에서 헤엄치는 존재라는 사실을 다시금 상기하게 되면서, 심지어 하루 사이에 제주도를 반 바퀴 돌 만큼 넓게 유영한다는 사실에 무척 놀라며 그들 삶의 반경을 제약했던 수족관의 크기를 떠올리게 되는 것이다.

자연과 가까이 살고 싶어 금배와 함께 제주도에 왔을 때 시시각각 변하는 하늘과 매일 다른 바다의 색이 경이로웠다. 가로등 하나 없는 어두운 골목길에 밝게 떠 있는 달 아래로 길게 늘어선 우리의 그림자를 보았을 때 무척 놀랐다. 그전까지는 달그림자라는 말이 시적 표현인 줄로만 알았다. 온통 까만 시골 마을에 있으니 달만이 밝게 빛났고 밤처럼 금배와 우리의 그림자도 매우 깊었던 날의 신기한 풍경은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우리의 바람대로 제주에서의 삶은 자연과 가까워졌고 그러다 보니 의도치 않게 자연 속의 다양한 동물들도 가까이에서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만큼 그 동물들이 겪고 있는 고통도 쉽게 목격해왔다. 묶여있는 개들이나, 고단한 모습으로 길에서 마주쳤던 개들이 안락사되는 일이나, 일주일에도 몇 번씩은 마주치는 로드킬의 현장들, 관광객을 태우고 마차를 끌며 매일 차도를 오가는 말들이나, 크고 작은 관람 체험시설에 갇혀있는 온갖 종류의 동물들. 내가 가까이에서 알고 지내는 동물들만큼, 그들의 죽음도 선명한 모습으로 우리 곁에 있었다. 그것이 우리가 동물에 대해 깊게 생각하게 된 이유인 것 같다.

눈앞에서 동물들을 마주칠 때마다 우리는 그들을 인터넷이나 백과사전에서 보는 게 더 익숙했기에 매번 당황하여 숨을 죽이고 허둥댔다. 그리고 눈앞에 나타난 이 동물에 대해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 우리가 아는 것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했다. 아주 사소한, 우리 집에 찾아온 닭이 물은 어떻게 먹는지나 오리를 어떻게 안아야 하는지 같은 것조차도 말이다. 그것을 계기로 그동안 우리가 동물을 어떻게 만나왔는가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우리는 대부분 비용을 지불하는 방식으로 동물을 만나왔다. 쉽게 동물원·아쿠아리움에서 관람료를 지불하고 구경하거나, 유원지에서 돈을 내고 말을 타보거나 양에게 먹이를 주는 방식. 또는 펫숍이나 판매업자에게 비용을 지불하고 병아리, 햄스터나 강아지를 구매할 수도 있었다. 그도 아니면 정육점에서 동물의 전체나 일부를 구매하기도 했다. 우리는 그 동물들이 어떤 먹이를 선호하는지보다 부위별로 어떻게 요리하는지에 대해 더 빠삭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돈을 지불하고 만나는 동물은 응당 우리에게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제공해야 한다고 여긴다. 내가 원하는 대로 존재해야 하는 것이다. 숨어있는 동물원 원숭이나 움직이지 않는 체험용 말은 이상행동이 있다고 여겨지는 것처럼. 사실 우리가 지불한 돈은 그 동물에게 주는 것이 아닌데도, 돈을 매개로 한 관계는 동물을 마치 도구처럼 내가 원하는 대로 이용해도 된다는 메시지를 내포한다. 우리는 제주에 와서야 비로소 돈을 지불하지 않았기에 우리에게 아무것도 제공하지 않아도 되는 동물들을 마주할 수 있었다. 닭스훈트는 어쩌다가 우리 마당에 들어왔을 따름이고, 돌고래들은 산책길에 운이 좋으면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

최근 제주에서 돌고래를 관찰하는 방법으로 관광 선박에 돈을 내고 돌고래를 쫓아다니지 말고 해안도로에서 쌍안경을 가지고 관찰하자는 안내를 보았다. 비인간 동물들과 어떻게 관계 맺어야 하는지 공존의 방법을 모색하는 다양한 방법을 알게 되고 고민하는 것이 반가웠다. 그 밖에도 동물원이 아니라 탐조를, 아쿠아리움이 아니라 스노클링을 하자는 제안 같은 것들 말이다. 그리고 바로 며칠 전 제주특별자치도에서 남방큰돌고래를 생태법인 1호로 지정할 것이라는 계획을 발표했다. 돌고래를 인간이 보호해야 하는 대상으로 보는 것을 넘어, 돌고래들에게 인간과 같은 법적 권리를 부여하는 것이다. 함께 살아가는 동등한 존재들의 공존을 위한 새로운 아이디어라는 점에서 무척 반가운 소식이다. 훗날 언젠가는 ‘옛날에는 글쎄, 동물들을 좁은 우리에 가둬놓고 구경거리로 삼았대’ ‘돌고래를 수족관에 가두고 훌라후프 넘는 묘기를 부리게 했대’ 이런 이야기가 철 지난 농담처럼 오고 가는 상상을 해본다.

▶귤엔터 이사진 : 구낙현·김윤영·금배

MBTI가 ENFP인 사람, INTJ인 사람, 그리고 말이 없는 강아지 금배로 이루어진 팀이다. 매일 산책하는 금배와 더 행복하게 걷기 위해 최근 제주로 이주했다. 걷다가 만난 마당개와 들개의 새끼들을 길거리캐스팅하며 ‘제주탠져린즈’라는 반려견 연습생 그룹을 꾸렸다. 지금은 이들의 소속사 귤엔터로서 반려견으로 데뷔시키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고 있다. 강아지 금배와 걸으며 만난 제주의 자연과 개 이야기를 들려드리려고 한다. 최근 이 여정을 담은 책 <우리는 귤멍멍이 유기견 아이돌>을 썼다.

귤엔터 이사진 : 구낙현·김윤영·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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