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외앱 살인' 반년 지났지만 유사범죄 ‘불안감’…'폐쇄된 공간' 위험

노경민 기자 2023. 11. 24.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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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외앱으로 신분 속여 성범죄...강사·학생 주거지에서만 과외 가능
학원 강사는 '성범죄 전력' 확인해야 하지만 과외 강사는 생략
일면식도 없는 또래 여성을 살해하고 시신을 훼손·유기한 정유정(23)이 24일 오전 부산 연제구 부산고등법원에서 열린 1심 선고 공판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뒤 법원을 나서고 있다. 2023.11.24/뉴스1 ⓒ News1 윤일지 기자

(부산=뉴스1) 노경민 기자 = 과외 앱을 통해 일면식 없는 여성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해 살해한 정유정(23)이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가운데, 사건 이후 반년이 지나고도 과외앱을 통한 유사 범죄에 대한 우려는 여전히 큰 상황이다.

24일 뉴스1 취재를 종합하면 학원의 설립·운영 및 과외교습에 관한 법률(학원법)상 개인과외는 교사와 학생 주거지에서만 가능하다. 교육부는 카페나 스터디카페 등 개방된 장소에서 하는 과외를 불법으로 간주하고 있다.

아파트 내 교육시설(도서관 등)도 과외 장소로 사용할 수 있으나 입주민 허가가 필요해 복잡한 절차로 학부모들이 선호하는 공간은 아니다.

과외 업계에 따르면 대부분 과외 수업은 학생 주거지에서 하는 추세다. 수업 도중 혹시 모를 불상사를 감시할 사람이 사실상 학부모뿐인 것인데, 과외를 받는 기간이 오래될수록 학생과 교사 둘이서만 집에서 수업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이같이 과외 수업이 주로 폐쇄된 공간에서 이뤄져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한 범죄도 잇따른다.

지난 1월말 과외 교사 A씨가 경기도 소재 학생의 주거지에서 수업을 하던 중 성희롱과 성추행을 한 사건이 발생했다. 피해자 가족의 신고로 붙잡힌 A씨는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과외 앱의 교사와 학생에 대한 부실한 검증 절차도 범죄 위험을 높이는 요인이다.

정유정이 이용한 B사 앱의 경우 사건 당시 학생·학부모에 대한 신원 정보는 구체적으로 공개되지 않은 반면 강사의 경우 출신 학교 등 자세한 정보가 공개됐다.

학생과 학부모는 상대적으로 가입 절차가 간단하다. 정유정도 이러한 절차로 학생 계정을 만든 뒤 피해자에게 자신을 중학생이라고 속이고 교복을 입고 피해자의 집을 찾아간 것으로 조사됐다.

또한 신분 검증이 온라인으로만 이뤄지기 때문에 사전 범죄 가능성 차단에도 역부족이다. 해당 앱에는 연 1~2회 성희롱 등에 대한 신고가 들어오고 있다.

ⓒ News1 DB

허술한 검증에 과외 앱을 이용한 성범죄도 끊이질 않는다.

2020년 12월 과외앱을 통해 회사 직원들의 외국어 강사를 구한다는 핑계로 젊은 여성에게 재력가라고 속인 C씨는 대학교 등록금 등을 지급해 주겠다고 거짓말한 뒤 피해 여성을 성폭행했다.

C씨는 이후 피해자에게 사진과 영상 유포를 협박했고 1달간 피해자를 주거지와 숙박시설 등에 감금했다. 이미 범행 직전에도 비슷한 수법으로 처벌을 받았지만 앱에서 걸러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8월에는 한 유저가 앱에 교사로 등록돼 있던 여대생에게 고등학생으로 신분을 속인 뒤 상담차 자신의 집을 찾아온 여성을 강제추행한 혐의로 징역 7년을 받기도 했다.

과외앱뿐만 아니라 오프라인에서도 신원 검증이 부실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과외총연합회에 따르면 과외 교사는 교육청에 학력 증명서와 신분증 등을 제출하면 과외를 할 수 있다. 교육청에서 성범죄 전력 등을 검토한 뒤 수업권을 받는 학원 강사와 달리 간단하게 신고제로 이뤄져 있어 전과 유무 등에 대한 상세한 검토가 이뤄지지 않는 것이다.

과외 업계에선 이미 대다수의 강사가 신고 없이 과외 수업을 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B사 측은 현행 학원법에 대해 헌법 소원을 청구할 예정이다. B사 관계자는 "폐쇄적인 공간에서 과외를 해야 하므로 안전을 보장받기 힘든 상황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며 "사생활 노출 및 학생들의 자기결정권 등 기본권을 침해할 소지가 있어 위헌성을 지적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또 "사건 이후 학생·학부모 정보 공개를 확대하고 교습자 개인정보 노출을 축소하는 등 안전 조치를 강화하고 있다"며 "성희롱 신고가 들어오면 내부 규정에 따라 엄격하게 조치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국과외총연합회 관계자는 "정유정 사건은 가짜 학생이 강사 집으로 가서 범죄를 저지른 사례이지만, 강사가 학생 집에 가서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도 많다"며 "근본적으로 과외앱에 등록을 희망하는 강사에 대해선 정확한 인적사항 검증 절차가 강화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학생과 강사를 과외 앱이 매칭해줄 때 기본적인 인적 사항을 직접 앱에서 확인 절차가 필요하다"며 "과외 장소를 주거지로만 제한한 학원법에 대한 개정도 동반돼야 범죄 우려가 줄어들 것"이라고 강조했다.

blackstamp@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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