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가 황진아, 구체적이고 명징하다…밴드 '반도'

이재훈 기자 2023. 11. 24.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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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해외서 주목 받는 작곡가 겸 거문고 연주자
기타 이시문 등과 4인 밴드 결성…첫 정규앨범 '반도지형도' 발매
경험한 '땅의 기억' 담아…"진짜 지도 같은 공간"
[서울=뉴시스] 황진아. (사진 = 음악가 측 제공) 2023.11.24.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작곡가이자 거문고 연주자인 음악가 황진아의 음악은 구체적인 것을 딛고 서 있다. 상상력의 권한을 스스로가 만들어내는 게 아니라 영감을 준 대상에게 안기는 것이 그 비법 중 하나다.

황진아를 중심으로 이시문(기타), 김성완(색소폰), 강전호(드럼) 네 명의 연주자들이 뭉친 컨템포러리 음악 프로젝트 밴드 '반도'가 훌륭한 보기 중 하나다.

반도가 24일 발매하는 첫 정규 앨범 '반도지형도'는 반도가 주는 지형적 특이성과 이로 인해 만들어진 문화적 다양성을 딛고 한국 음악의 정체성을 톺아본다. 한반도에서 태어나고 자라 자신만의 활동을 펼쳐 온 네 명의 연주자들은 바다, 강, 섬, 논, 길 등 한국의 지형적 특징을 소재로 곡을 만들고 연주했다.

동시에 황진아는 해외 주목도 받고 있다. 지난 4월엔 미국 워싱턴 유니언 스테이지에서 한미동맹 70주년 축하 특별공연으로 열린 '온스테이지 코리아 2023: 사위·황진아 합동공연(SaaWee & Hwang Gina Joint Concert)' 무대에 올랐다. 같은 달 뉴욕 링컨센터에서 콘서트 '신 - 거문고 유니버스(Scene - Geomungo Universe)'를 펼치기도 했다.

지난달엔 예술경영지원센터의 한국전통음악 해외진출 플랫폼 '저니투코리안뮤직'을 통해 해외 기획자들로부터 눈도장을 받았다. 내년엔 뉴질랜드 웰링턴에서 열리는 축제에서 공연할 예정이다.

2017년부터 솔리스트로서 다양한 서사를 켜켜이 쌓아온 황진아의 저력이 이제야 타지에서도 빛을 발하고 있다. 황진아는 전통과 현대를 넘나드는 동시에 일렉트로닉을 적극 차용하면서도 서정성을 발휘했다. 노랫말이 없어도 그녀 이야기 대한 신뢰가 구축됐다. 음악이 난해한 서로를 이해하는 통로가 된다. 음악가의 구체적인 관찰을 자양분으로 삼은 음악은 삶의 물리적 공간의 산술적 총합 이상을 연주한다는 걸 황진아는 깨닫게 한다. 다음은 최근 서울 강남구에서 황진아와 만나 나눈 일문일답.

-올해 뉴욕 링컨센터 공연은 어떠셨어요?

[서울=뉴시스] '저니투코리안뮤직' 황진아. (사진 = 예술경영지원센터 제공) 2023.11.24.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너무 좋았어요. 무엇보다 스태프들이 각자 자리에서 너무 프로페셔널하다라는 게 느껴져서 새롭고 '좋은 충격'이었어요. 예를 들어 아티스트 밀(meal)만 담당하는 분이 따로 있어요. 알레르기 유발 음식이 있는지 등을 세심하게 물어보죠. 음향 엔지니어도 대단했어요. 1시간 공연인데 사운드 테스트를 포함 리허설만 4시간을 했거든요. 쉬는 시간이 확실한데 일도 그만큼 딱 부러지게 잘해요. 저희 기획자 분도 많이 배웠다고 하더라고요."

-정규 1집 '더 미들'(2019), 정규 2집 '쇼트 필름'(2022) 모두 좋았습니다. 진아 씨는 단순히 거문고 연주자 또는 작곡가로 수식 하기엔 부족합니다. 다양한 음악 장르를 섭렵하시는데, 어릴 때부터 음악을 다양하게 들으신 건가요?

"중학생 때부터 방과 후 활동으로 사물놀이를 했어요. 그런데 음악을 다양하게 듣진 않았어요. 국악을 전공하기 시작했을 때도 상업적인 음악들만 들었어요. 아니면 제가 공부하는 음악들을 집착적으로 들었고요. 듣는 폭이 넓게 확장된 건 사회에 나와서 다른 음악가 친구들을 만나고부터예요. 그러니까 제 세상이 되게 좁았거든요. 국악 중고, 대학 국악과를 나와서 그쪽 친구들이랑만 어울렸었는데 여러 아티스트를 만나면서 다른 세계가 열린 거죠. 본격적인 취향의 발견을 그때부터 했어요. '내가 되게 좋아했던 음악들이 앰비언트라고 불리는 장르였구나. 모던 록이라고 불리는 장르였구나'도 나중에 알게 됐죠. 또 20대 중반부터 6년 간 활동했던 정가악회에서 많은 인풋도 있었고요. 정가악회에서 앙상블로 만들고 있는 과정을 거문고로만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계속했어요."

-근데 수많은 악기 중 왜 거문고였어요.

"원래는 가야금을 하려고 했어요. 근데 국악중학교는 악기로 학생을 뽑지 않아요. 시창·청음으로 학생을 뽑고 여러 조건을 본 뒤 악기를 배치하는데, 제 손이 거문고를 하기 좋거든요. 손가락이 단단해요. 거문고는 (현을) 밑으로 누르는데 손가락이 단단하니 하중을 다 견딜 수 있는 거예요. 그렇게 연주하다 보면 손가락이 뒤로 뒤집어지는 사람들이 많거든요. '너는 거문고를 하면 잘할 거야'라는 말씀을 듣고 단순하게 시작했죠. 거문고를 연주한 걸 한번도 후회한 적이 없어요. 지금도 너무 좋아하는 악기예요. 거문고가 가지고 있는 색깔을 너무 좋아하게 됐어요."

-앰비언트나 록 장르 중에선 주로 어떤 뮤지션들을 많이 들으셨나요?

[서울=뉴시스] 황진아. (사진 = 음악가 측 제공) 2023.11.24.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앰비언트 중애선 클래시컬한 것을 많이 들었어요. '네오 클래식'이라고 분류 되기도 하는 음악들이요. 올라퍼 아르날즈 같은 북유럽 연주자들의 음악을 되게 좋아했어요. 록 같은 경우는 블론드 레드헤드를 많이 들었죠. 최근 몇 년 간은 하우스 기반의 커머셜한 음악을 많이 들었는데 사실 기술을 많이 봐요. 솔로 활동을 어떻게 확장시키는지를 유심히 지켜보죠."

-K팝도 들으세요?

"그럼요. 진짜 감탄했던 건 뉴진스 음반이었고요. 이 음반은 감상만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어요. 그냥 청취용 음악이기도 하죠. 블랙핑크 노래는 운전할 때 많이 들어요. 은근히 국악적 요소를 좀 쓰는데 무엇보다 사운드 믹스가 되게 좋아요. 되게 저음을 잘 살리거든요. 그 공간감은 운전할 때 좋죠. 전달감이 있으니까요. K팝은 많은 작곡가가 큰 돈을 들이면서 만들잖아요. 좋을 수밖에 없죠."

-진아 씨 음반도 믹싱, 마스터링이 상당히 좋아요.

"직접 하지 않지만 아티스트의 최종적인 책임이라고 생각해요. 사실 1집은 믹싱, 마스터링을 잘 모를 때였어요. 2집 때는 미디를 직접 배웠어요. 그런데 2집 작업을 할 때가 코로나였거든요. 공연을 할 수 없었던 때인데 원래 전 공연을 하지 않고 공부만 하기로 계획 했었거든요. 일부러 공연을 하지 않았던 걸 아무도 몰랐어요. 2년 동안 진짜 열심히 공부했어요."

-다양한 음악을 만나게 된 통로엔 어떤 것들이 있었나요?

[서울=뉴시스] 황진아. (사진 = 음악가 측 제공) 2023.11.24.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기타 이시문 씨 같은 경우는 판소리 이나래 씨, 가야금 이화영 씨랑 함께 했던 옹녀라는 팀에 같이 있었어요. 극 요소를 갖춘 콘서트 형식의 이야기였어요. 거기서 시문 씨를 처음 만나서 제 개인 프로젝트들을 같이 하게 됐죠. 지금은 '반도'라는 밴드를 같이 하고 있어요. 프로젝트성으로 몇 팀을 같이 하고 있는데 반도는 제가 리더로서 2년 동안 메이킹을 한 팀이에요."

-반도는 어떤 특징이 있나요?(반도는 24일 '반도지형도'를 발매한 뒤 같은 날 오후 플랫폼-엘 컨템포러리 아트센터에서 콘서트를 연다.)

저와 시문 씨, 김성완(색소폰) 씨, 강전호(드럼) 씨가 멤버이고요. 각자 장르 음악을 하면서 다양한 활동들을 하는 뮤지션들을 모았거든요. 근데 반도는 제로베이스에서 시작하자라고 했어요. 저는 한국에서 국악을 이만큼 배웠고 시문이는 미국에서 기타를 배웠지만 지금 우리는 동시대 같은 사회에서 살고 있잖아요. 이곳에서 각자의 베이스를 편안하게 꺼내서 음악을 만들 수 있는 밴드를 만들어보자는 아주 야심에 찬 생각을 했죠. 그래서 만드는 과정이 더 힘들었어요. 개념들을 서로 더 단단하게 잡아가고 무슨 역할을 해야 되는지, 설정하는 데 있어서요. 음반은 저희 팀 이름이 반도니까 한반도 지도를 펼쳐놓고 지역마다 하나씩 음악을 만들었어요. 우선 지역마다 잘 안 알려져 있는 민요들을 좀 많이 찾았고요. 근데 민요를 찾는 것에서 끝난 게 아니에요. 예를 들어 제주 서귀포에서 '논 고르는 소리'라는 민요를 찾았어요. 그 곡을 가지고 '여름 논'이라는 곡을 만들었는데요. 여름 논이 가지고 있는 이미지들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음악이 만들어지는 과정이 다 그런 식이었어요. '동해'는 동해 바다의 어떤 걸 담아내고 싶었죠. 그래서 음반을 다 들으면 한반도를 투어한 느낌이 들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이번 음반에 실리지는 않았는데 북한의 '풍구타령'이라는 음원을 발견했어요. 풍구가 불 지필 때 바람을 부는 통로인데 '방아타령' 비슷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풍구타령'을 부른 창자가 남잔인데 엄청나게 섹시했어요. '상당한 끼쟁이'라는 생각에 엄청 섹시한 곡을 만들었어요."

-'반도지형도'로는 어떤 이미지를 그리고 싶었나요?

"앨범에 실린 '남쪽 섬'이라는 곡은 원래 처음 제목은 '섬'이었요. 섬 하면 어렴풋이 외롭고 고립된 느낌이 있잖아요. 전 그걸 반전시키고 싶었어요. 남쪽은 따뜻하고 밝고 귀여워요. 왜냐하면 일조량이 높으니까요. 제가 가봤던 섬들은 그랬어요. 제가 경험한 '땅의 기억'을 끄집어내서 귀엽고 발랄한 남쪽 섬이라는 곡을 만들었어요. 그런 식으로 제목을 들었을 때 상상할 수 있는 게 구현되는 곡도 있지만 진짜 그 땅에 살아본 사람만 제시할 수 있는 어떤 이미지들을 담고 싶었어요. 그러니까 추상적이고 싶지 않았어요. 어떤 '국뽕'에 가득 찬 무언가가 아닌 진짜 지도 같은 공간을 그리고 싶었죠. 정말 로컬만이 할 수 있는 얘기들이 있잖아요."

-거문고 연주자, 창작자라는 표현은 진아 씨를 수식하는데 되게 한정적인 거 같아요. 어떤 수식을 좋아하시나요?

[서울=뉴시스] 황진아. (사진 = 음악가 측 제공) 2023.11.24.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저는 음악가란 말을 좋아해요. 예술가 지원사업 기준을 보면 음악 분야랑 전통음악 분야랑 나눠져 있잖아요. '왜 음악이란 언어에 왜 국악은 포함 안 시키지'라는 생각을 했었거든요. 사실은 큰 한 덩어리인데요. '아트'라는 말과 비슷하게 되는 것 같아요. 아트가 예술보다는 어떤 미술의 영역을 가리키는 것처럼요."

-무엇보다 반도 활동처럼 진아 씨의 작업은 구체적이고 세밀해서 좋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아티스트가 ('정가 가객') 박민희 씨거든요. 최근에 뵙고 얘기를 나눴는데 좋은 조언들을 해주셨어요. 특히 '진아 씨 예술가는 더 날카로워져야 돼요'라고 얘기가 와 닿았어요. '날카롭고 명징할수록 좋은 예술이라고 생각해요'라고 얘기한 게 저한테 엄청 큰 지표가 됐어요."

-그럼 다양한 장르를 찾고 다양한 요소를 포함시키는 것도 말씀하시고 싶은 메시지와 내용이 그 사운드에 맞기 때문이겠네요.

"맞아요. 정확히 그거예요. '전자 음악을 하고 싶어서 이렇게 했어요'가 아니라 '제가 전달하고 싶은 말은 그 사운드가 필요했어요'가 되는 거죠. 그래서 다음 3집에 대한 고민이 계속 있어요. 일단 '무슨 얘기를 할지'부터 더 정리를 해야 하거든요. 하고 싶은 얘기가 생기면 방법은 어떻게든 바뀔 수가 있거든요. 요즘은 밴드 사운드에 관심이 많아요. 그동안은 제가 하고 싶었던 얘기들을 미디 아니면 거문고의 레이어를 쌓아서 그림과 서사로 만들었어요. 근데 밴드는 사람과 사람 간에서 만들어지는 사운드들이 있잖아요. 그런 사운드에 관심이 많아졌어요. 무엇보다 사람한테 관심을 가지지 않으면 밴드를 하는 게 너무 어렵더라고요. '저 사람은 왜 저런 소리를 내지'라는 생각을 하는 거죠. 최근 반도 공연을 했는데 네 사람이 서로를 이해하려고 고군분투하는 게 보여서 너무 좋았어요. 근데 그것은 눈앞에서 팬들을 보지 않으면 느끼기 어려운 감정이거든요. 그렇게 기계가 만들어 내는 소리가 아닌 사람이 만든 소리에 새롭게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공감언론 뉴시스 realpaper7@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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