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휠체어도 가능"…지자체 최초 '베리어 프리' 실현한 미용실 '더휴'

김온유 기자, 최지은 기자 2023. 11. 2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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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노원구 공릉동에 위치한 최초의 장애인 전용 미용실 '헤어카페 더휴' 2호점에 방문한 80대 권모씨. 지체장애가 있는 권씨는 인근에 위치한 마들종합사회복지관에서 정보를 듣고 더휴에 처음 방문했다./사진=김온유 기자

"할머니 미용실 방문해보니 어떠세요?"
"다른 데는 장애 있는 거 신경도 안 써여기는 크게 움직일 필요도 없고 편해."

지난 20일 '헤어카페 더휴'(더휴) 2호점을 찾은 80대 권모씨는 머리에 헤어롤을 말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권씨에게는 지체 장애가 있다. 귀가 잘 들리지 않아 큰 소리로 말을 걸어도 이해가 잘 안된다는 듯 연신 고개를 흔들었다.

다시 한번 큰 소리로 "어떤 점이 마음에 드냐"고 묻자 권씨는 "일반 미용실은 머리만 잘라주고 끝인데 여기는 하나부터 열까지 다 신경 써줘서 좋다"며 "계속 이용하고 싶다"고 답했다.

더휴는 전국 지방자치단체 최초의 '장애인 전용 미용실'이다. 모든 시술은 100% 예약제로 진행한다. 전화나 홈페이지를 통해 예약할 수 있다. 지난해 9월 노원구 상계동에 1호점이 문을 연 뒤 최근 노원구 공릉동에 2호점도 마련했다. 2호점은 지난 15일부터 시범 운영에 돌입해 오는 30일부터 정식 영업을 시작할 계획이다.

노원구는 거주 인구 대비 장애인구 비율이 약 5.3%에 달한다. 서울시 25개 구 중 가장 높은 비율이다. 지체장애인이 40%로 가장 많고 뇌병변 장애, 발달장애 등 중증장애인 비율이 높다. 노원구에서 전국 지자체 최초로 장애인 전용 미용실을 만든 것도 이 때문이다.

'헤어카페 더휴'의 시작부터 개소까지 모든 것을 주관한 노원구청 장애인복지과는 기성품으로는 장애인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것이 불가능해지자 고민 끝에 특별 주문 제작을 진행했다. 사진은 미용받는 손님이 자리를 옮기지 않고도 머리를 감을 수 있게 자동으로 의자가 눕혀지는 모습./사진=김온유 기자

더휴는 설계 과정부터 미용 의자 등 장비 구성까지 장애인들의 의견을 세세하게 반영했다. 장애인 단체를 비롯해 지역에 거주하는 장애인들의 의견을 들었다.

더휴에서 가장 눈에 띈 점은 책상과 의자 등 여러 구조물의 높이가 다른 미용실보다 낮게 설계됐다는 것이었다. 안내데스크의 높이는 성인 남성 허벅지에도 못 미칠 정도로 낮았다. 휠체어를 탄 손님들을 배려해 책상과 의자도 높이를 낮췄다.

미용 의자에서 휠체어로 갈아타고 머리를 감으러 가는 수고를 덜도록 미용 의자 바로 옆에 세면대가 설치됐다. 의자의 방향을 돌려 버튼 하나만 누르면 세면대에 누울 수 있도록 자동으로 의자가 조절됐다.

'헤어카페 더휴'는 상하체를 스스로 고정하지 못하는 장애인들을 위해 벨크로가 부착된 미용 의자를 특수 주문 제작했다. 일반 미용실 의자는 팔걸이도 움직여지지 않고 고정돼 있으나 주문 제작으로 팔걸이도 위아래로 움직일 수 있다./사진=김온유 기자

기성품으로 해결되지 않는 부분을 고려해 미용 의자는 특별히 주문 제작됐다. 일부 장애인들의 경우 상체나 하체에 힘이 없어 옆으로 푹 쓰러지기도 하는데 이들을 위해 미용 의자 다리 부위와 가슴 부위에 벨크로를 부착했다. 팔걸이도 위아래로 조절할 수 있도록 제작됐다.

미용과 관련한 시설뿐 아니라 휴식 공간도 장애인 친화적으로 구성했다. 고객들이 타고 오는 전동휠체어를 위해 내부에 충전 시설을 마련했다. 화장실 역시 버튼으로 문을 여닫게 했고 턱을 없애 장벽 없이 출입할 수 있게 했다. 휠체어를 타거나 목발을 짚는 손님들을 위해 바닥 타일도 미끄럽지 않은 재질로 신경 써서 선택했다.

입구는 건물 뒤편에 마련했다. 미용실을 이용하는 고객들이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도로변과 거리를 둔 것이다. 입구는 계단 없이 경사로만 길게 설치돼 있었다.

박미향 노원구청 장애인복지과 팀장은 "설문조사에서 장애인분들이 이·미용 욕구가 강한 것에 반해 불편한 시설 때문에 미용실 이용이 어려웠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장애인 전용 미용실 설치에 대한 논의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노원구에 거주하는 비장애인에 비해 장애인의 저소득 비율이 높다는 점을 고려해 이용 가격도 저렴하게 책정했다. 더휴의 커트 비용은 6900원, 염색은 1만5900원, 파마는 1만9000원이다. 커트 비용이 2만원 수준인 일반 미용실과 비교하면 파격적인 수준이다.

서울 노원구 공릉동에 위치한 '헤어카페 더휴' 2호점 전경./사진=노원구청 장애인복지과

더휴에는 2명의 미용사와 1명의 사회복지사가 상주한다. 이들은 마들종합사회복지관에 소속돼 주기적으로 사회복지서비스 교육을 받는다. 더휴에서 근무하는 유동희 실장(39)은 "출산 전 동료들과 매주 수요일마다 자애원에 미용 봉사를 하러 갔었다"며 "출산 후에 일을 잠시 쉬는 동안에도 제 능력이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더휴에 오게됐다"고 밝혔다.

동네 사랑방으로 기능하던 미용실의 장점을 살려 더휴 직원들은 이용 고객들의 일상도 살핀다. 유 실장은 "'어떻게 지내시냐' '아픈 곳 없으시냐' 같은 일상적인 안부로 대화를 시작해 고객들의 생활 여건이나 건강 상태 등을 파악하고 있다"며 "보호자가 동행하지 않는 경우에는 옷차림이나 행동 등을 보고 유추해 고객에게 필요한 복지 서비스도 안내한다"고 밝혔다.

지난 6~7월 2개월간 노원구청이 더휴 1호점 이용자 7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94.3%는 '더휴를 계속 이용하고 싶냐'는 질문에 매우 그렇다고 답했다. 장애인 고객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으면서 다른 지자체에서도 벤치마킹을 계획하고 있다.

최근 서초구는 한우리문화정보센터 공간을 활용해 장애인 친화 미용실을 마련했다. 다른 자치구도 미용실 도입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온유 기자 onyoo@mt.co.kr 최지은 기자 choiji@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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