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를 뒤흔든 서양 선교사의 ‘우정론’ [책&생각]
서양 우정론 전파한 ‘교우론’·‘구우편’
연암 등 조선 지식인 열렬히 환호
“동시대 함께 살아가는 존재” 의식
서양 선비, 우정을 논하다
마테오 리치의 ‘교우론’과 마르티노 마르티니의 ‘구우편’
마테오 리치·마르티노 마르티니 지음, 정민 역주 l 김영사 l 2만5000원
이탈리아 출신 예수회 선교사 마테오 리치(1552~1610)는 본격적인 문명 교류의 물꼬를 튼 인물이다. 유클리드 기하학을 번역한 ‘기하원본’(1607), 세계지도에 해설을 덧붙인 ‘곤여만국전도’(1602), 천주교 교리를 설명한 ‘천주실의’(1603) 등 한문으로 된 저작들이 그의 활동을 대표하는데, 그가 중국에서 가장 먼저 출간했던 것은 ‘교우론’(交友論·1599)이다. 서양 고전 가운데 우정에 관한 대목들을 골라내어 한문으로 집필된 이 책은 중국 지식인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었고, 그 인기는 조선과 일본에까지 닿았다. 60여년 뒤 리치의 후배격인 예수회 선교사 마르티노 마르티니(1614~1661)는 서양의 우정 담론을 좀 더 본격적이고 체계적으로 정리한 ‘구우편’(求友篇·1661)을 펴냈다.
‘서양 선비, 우정을 논하다’는 고전학자 정민 한양대 교수가 ‘교우론’과 ‘구우편’을 우리말로 옮기고 역주한 책이다. 예수회 신부 판토하의 천주교서 ‘칠극’(1614) 번역, 조선의 초기 교회사를 집대성한 ‘서학, 조선을 관통하다’ 집필 등 서학 연구에 몰두하고 있는 지은이는 이 두 책을 통해 문명 교류의 첫 번째 경로가 어떤 배경으로 형성됐는지 그려내는 한편, 그것이 조선 사회에 준 영향에 대해 흥미로운 가설을 제시한다.
‘교우론’은 별다른 체계 없이 잠언들을 모은 책이다. 애초 중국 선교를 위해 불교를 모방했던 선교사들은 유교를 모방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는 것을 깨닫고 보유론(補儒論)을 전략으로 삼았고, 리치는 그 선봉에 있었다. ‘사서’를 라틴어로 옮겼던 리치는 중국의 정신문화 속에 우정의 문제가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는 것을 깨닫고 “중국과 서양의 문화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음을 알려 저들의 경계심과 거부감을 줄이는 촉매로 삼고자” 했다. 따라서 ‘교우론’은 “의도적으로 우정의 주제에만 집중”하고 있으며, 체계와 작법은 ‘논어’를 연상시킨다. 예컨대 “나의 벗은 남이 아니라 나의 절반이니, 바로 제2의 나이다”라는 첫 문장부터, ‘논어’의 “벗이 먼 곳에서 찾아오면 즐겁지 아니한가”를 연상시키며 ‘참된 우정’에 대한 보편적인 갈급을 겨냥했다.
반면 ‘구우편’은 첫 문장부터 “벗의 명부에 들어온 사람이 모두 한 분이신 지극히 존귀한 참주인임을 알아 우리의 큰 부모로 삼고, 삼가 잘 섬겨서 훗날 마침내 편안히 머물게 될 땅으로 삼기를 바랄 뿐”이라 썼다. “저술의 목적이 (…) 우정 자체가 아니라 천주의 가르침을 전파하는 데 있음을 분명히 밝힌 것이다.” 분량이 많고 더 정돈된 체계를 갖추었는데도 ‘구우편’은 ‘교우론’만큼 큰 인기를 끌지 못했다.
흥미로운 것은, ‘오륜’에 ‘붕우유신’이 포함되는 등 중국 정신문화 속에도 우정의 자리가 있었다곤 하나 실제로 중국에서 우정이란 가치가 그리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고 있었다는 현실이다. 중국 지식인들이 ‘교우론’에 대해 쓴 서문·제사에서 이에 대한 성찰이 발견된다. 주정책은 “‘오교삼흔’(五交三釁)을 고집하면서 (오륜 가운데) 네 가지 도리만 말한다면 끝내 세상에 가까워질 수 없을 것”이라 썼고, 진계유는 “사람의 정신은 군신과 부자, 부부와 형제에게는 굽히고, 붕우에게는 편다. (…) 네 가지 윤리는 붕우가 아니면 능히 힘써 유지할 수가 없다”며 이를 지적해준 마테오 리치에게 감탄했다. 위진남북조 시대의 지식인 유준은 ‘광절교론’이란 글에서 타락한 우정의 다섯 가지 형태(오교)와 그로 인해 덕과 의리가 무너진 세 가지 세태(삼흔)를 이야기한 바 있다. 이는 서양에서 온 ‘우정론’이 중국에서 열렬히 환영받은 데에는 어떤 공백이 있었다는 것을 짐작하게 해준다.
정 교수는 해제에서 ‘교우론’과 ‘구우편’이 조선에 유입되어 읽힌 자취에 대해 상세히 연구해 밝혔다. “조선에서 ‘교우론’을 가장 꼼꼼히 읽고 실천에 옮긴 것은 단연 박지원과 그의 동인들”이었는데, ‘우정론’에 대한 18세기 조선 지식인들의 환호는 특기할 만한 일이었다. 얼굴도 모르는 중국인 친구 곽집환을 건너건너 소개받았던 박지원과 이덕무, 박제가 등은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외국 벗과의 우정의 길이 열린 것에 환호”했고, 박지원은 곽집환의 시집에 발문을 써주며 “옛날에 벗을 말하는 자가 혹 ‘제2의 나’라고 일컫고, ‘주선인’(周旋人)이라 일컬었다”며 ‘교우론’을 인용했다. 이밖에도 여러 지식인들이 ‘교우론’에서 받은 영향을 드러냈는데, 정 교수는 그 배경에서 “당색과 적서(嫡庶)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조선 지식인의 안타까운 신음”을 짚어낸다.
더 나아가, 정 교수는 “국경을 넘어선 우정을 예찬하는 ‘천애지기론’(天涯知己論)의 등장과, 이것이 동시대를 함께 살고 있다는 ‘병세의식’(幷世意識)으로 확장”되었다는 가설을 제시한다. 조선에서 벗은 “오륜의 구색을 위해 마지못해 끼워넣은 잊힌 개념”이었고, 신분제도와 당색, 적서 등 여러 장벽에 갇힌 사람들은 당대의 현실 속이 아닌 옛 성현들 속에서 벗을 찾으려(상우천고·尙友千古) 했다. 그러나 ‘교우론’의 영향 아래 조선과 중국 지식인들 사이의 교류가 이뤄지며, 조선 지식인들은 “한 시대의 공기를 함께 호흡하고, 서신과 시문을 통해 마음이 오갈 수 있는 쌍방적이고 대등한 관계”(천애지기)를 경험하게 됐다는 것이다. 이는 “상우천고로 대변되던 수직적 사고가 당대성과 동시대성에 바탕을 둔 수평적 사고로 전환된 것이요, 문자를 통한 일방적이고 선형적인 사고가 쌍방향 소통을 전제한 교감적 사고로 바뀐 것을 뜻한다.”
천애지기론은 “동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존재임을 공유하는 의식”, 곧 ‘병세의식’으로 이어졌다. 이규상의 ‘병세재언록’, 윤광심의 ‘병세집’, 유득공의 ‘병세집’ 등 당대의 각계각층과 외국까지 망라한 글들을 담은 선집들의 잇딴 간행은 “내부에서는 신분의 경계를 넘는 수평적 확장이 이루어지고 외부로는 타자에 대한 변모된 인식과 대응”을 보여준다. 푸른 눈의 서양 선교사가 전파한 우정론이 “단절 일로에 있던 동아시아가 개방의 길로 접어들고, 국수주의의 울타리에 갇혀 있던 폐쇄적 사유가 열린 사고로 전환되는 변화”를 노정했다는 풀이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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