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만에 고수되기] 바람 가르는 활주 두려움, 짜릿함이 되다…스케이트보드

박준하 기자 2023. 11. 24.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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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만에 고수되기] (26)스케이트보드
초보는 110여㎝ 길이 롱보드 적합
지면 평평한 곳에서 연습해야 안전
겁난다고 움츠리면 다칠 위험 높아
한발로 땅 힘껏 차고 빠르게 덱으로
무게중심은 앞으로, 시선은 정면에
한쪽 무릎 살짝 굽히면 앞쪽에 무게
뒤꿈치 힘 주면 뒤쪽으로 몸 기울어

“치키치키차카차카초코초코초 / 치키치키차카차카초코초코초 / 나쁜 짓을 하면은~.”

1990년대 애니메이션을 봤다면 무조건 아는 ‘날아라 슈퍼보드’의 주제곡이다. 

‘날아라 슈퍼보드’는 중국 4대 기서인 ‘서유기’를 재해석한 만화로, 허영만 화백이 원작자다. 국내 제작 애니메이션 최초로 최고 시청률 42.8%를 기록하며 8090세대에게 꾸준한 사랑을 받았다. 이때 주인공인 손오공(미스터 손)이 타고 다닌 슈퍼보드는 ‘스케이트보드’다. 스케이트보드 타기는 1990년대를 지나서도 젊은 세대 사이에서 마니아층이 두껍게 형성된 취미다.

10년 경력의 유명 보더이자, 유튜브 채널 ‘롱보드 UZ’를 운영하고 스케이트보드 강사, 대회 심사위원로도 활동하고 있는 UZ(본명 석유진·32)씨에게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한강공원 인라인스케이트장에서 스케이트보드를 배워봤다.

“넘어지진 않을까요?”

서늘한 바람이 볼을 때리는 주말, 제대로 인사하기 전부터 불안해 하는 기자에게 UZ씨가 걱정하지 말라고 손사래를 친다.

“조심히 타면 괜찮아요. 스케이트보드를 탈 때 중요한 건 무게 중심을 앞쪽으로 해서 뒤로 넘어지지 않는 거죠. 뒤로 넘어지면 크게 다칠 수도 있거든요.”

스케이트보드에 처음 타보지만 마음만큼은 ‘날아라 슈퍼보드’의 주인공 손오공(미스터 손)이다.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한강공원 인라인스케이트장에서 기자가 롱 보드를 타고 있다.

하루 만에 미스터 손이 될 수 있을까. 스케이트보드는 여러 종류가 있다. 크게 스케이트보드, 롱 보드, 크루저 보드, 서프 보드 등으로 나뉜다. 스케이트보드는 일회용 반창고 모양으로, 주로 묘기를 부리는 ‘트릭’을 할 때 타기 알맞다. 롱 보드는 스케이트보드의 한 종류다. 스케이트보드의 발을 얹는 넓은 판을 ‘덱(deck)’이라고 하는데, 롱 보드는 일반적인 스케이트보다 덱 길이가 길다. 초보자는 보통 44∼46인치(112∼117㎝) 길이의 롱 보드를 탄다. 크루저 보드는 다른 보드보다 상대적으로 작고 가벼우며 일반적인 주행을 할 때 타기 알맞다. 서프 보드는 육지 위에서 서핑하듯 탈 수 있는 스케이트보드를 의미한다. 앞 코가 바다에서 타는 서프 보드처럼 뾰족하다.

초보자가 롱 보드를 탈 때는 무게중심을 앞쪽으로 두는 연습을 해야 한다.

오늘 배우는 스케이트보드는 롱 보드다. 롱 보드 가운데서도 묘기를 하는 ‘트릭’과, 덱 위에서 춤을 추듯 주행하는 ‘댄싱’이라는 장르가 있다. 또 내리막길을 빠르게 내려가는 ‘다운힐’도 빼놓을 수 없다.

“처음이니까 기술보다는 주행법을 먼저 배울 거예요. 두 발이 보드 위에 있어야 하니까 쉽지 않죠.”

널찍한 인라인스케이트장이 무대다. 스케이트보드는 타는 장소가 중요하다. 마음만은 계단이나 난간을 스케이트보드로 쉽게 오르내릴 것 같지만, 그런 묘기를 부리려면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지면이 평평한 인라인스케이트장은 스케이트보드를 타기 최적의 장소다. 기자보다 먼저 온 ‘보더’들이 삼삼오오 모여 기술을 뽐내고 있다. 한국인뿐만 아니라 외국인 보더들도 자리를 차지했다. UZ씨는 보더들끼리는 연습장에서 눈을 마주치면 모르는 사이라도 가벼운 인사를 한다고 알려준다.

스케이트보드를 탈 때 땅을 힘껏 미는 동작을 푸시 오프라고 한다. ④ 보드에 올라탈 때 발 모습. 이후 앞발도 뒷발처럼 측면으로 옮긴다. 김병진 기자

롱 보드를 타려면 두 발로 보드 위에 올라서는 법을 배워야 한다. 덱 양쪽에는 나사가 있다. 나사 위에 한 발을 얹고, 다른 발로 땅을 힘껏 미는 연습을 한다. ‘덜덜덜’거리면서 롱 보드가 쫙 밀려간다. 이 동작을 ‘푸시 오프(Push off)’라고 한다. 초보자는 넘어질 수 있으므로 푸시 오프를 할 때 롱 보드에 올려놓은 발쪽 무릎을 두 손으로 짚는 게 좋다. 그러면 무게중심이 앞으로 쏠려 뒤로 넘어질 일이 없다. 시선은 정면을 향해야 한다. 출발하기 무섭게 보드가 비틀거렸다.

다리를 후들거리며 롱 보드를 타니 마치 처음 자전거를 타던 때가 떠올랐다. 누가 뒤에서 잡고 있다는 믿음 하나로 페달을 밟았던 순간 말이다. 어설픈 실력으로 몇번 왕복하니, 이번엔 두 발로 올라서라고 UZ씨가 주문했다. ‘벌써요?’라는 말이 목 끝까지 나왔다.

“스케이트보드를 탈 땐 겁먹지 않는 게 중요해요. 겁먹으면 나도 모르게 움츠려 들고, 다칠 위험이 커지죠. 지금도 허리가 구부정한데, 허리를 편안하게 펴고 시선은 앞을 향하는 게 좋아요.”

이제는 두 발 모두 보드 위에 올리는 데 도전해야한다. 한 발을 올리는 건 비교적 쉽지만, 이제부턴 용기의 영역이다. 더이상 지면에 닿는 발이 없기 때문이다. 발로 두세번 땅을 찬 후 빠르게 덱으로 올린다. 이때 다리는 어깨 정도로 벌리는 게 좋다. 차는 힘이 약했는지 롱 보드는 금세 추진력을 잃고 힘없이 멈춰 선다.

“제가 잡아줄 테니까 한번 힘껏 땅을 차볼래요?”

이번엔 UZ씨를 믿고 발을 힘차게 굴러 덱에 두 발을 올려놨다. 이때 롱 보드 위에 올린 모양은 ‘팔(八)’자에 가깝다. ‘날아라 슈퍼보드’ 만화책 표지를 보면 이해가 더 쉽다. 미스터 손도 스케이트보드를 탈 때 앞쪽 발은 정면, 뒤쪽 발은 측면을 향해 있다. 스케이트보드 출발 자세인 셈이다. 앞발을 천천히 옮겨 뒷발과 나란히 둔다. 이렇게 하면 보드 위에 탔는데 발이 나란해져 모두 측면을 향한 자세가 된다. 여기서 방향 전환은 어떻게 할까? 발가락에 힘을 주면 그쪽으로 몸이 기울고, 뒤꿈치에 힘을 주면 뒤쪽으로 몸이 기운다. 자신의 무게중심을 활용해 주행하는 셈이다.

“앞쪽으로 무게중심을 잡기 어려우면, 한쪽 무릎을 정말 살짝만 굽혀보세요. 그럼 자연스럽게 앞쪽에 무게가 실려요.”

롱 보드에서 내려오자 무릎·허벅지·어깨가 슬슬 아프기 시작했다. 아깐 서늘하던 바람이 이제는 시원하게 느껴진다. 롱 보드 때문에 땀이 나서다. 이미 다른 보더들은 겉옷을 벗어 두고 보드 삼매경에 빠져 있다. 바람이 분다고 생각했는데, 롱 보드를 타니 내가 바람을 가르는 모양새다.

“유튜브에서 본 멋진 기술 좀 보여주세요!”

기자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UZ씨가 롱 보드 위를 훌쩍 올라탄다. 발을 왔다 갔다 하고, 올라탄 상태에서 핑그르르 돈다. 마치 춤을 추는 듯 보드를 타는 ‘댄싱’이다. 곧이어 역동적으로 롱 보드를 타더니, 지면에 보드를 튕기듯이 잡고 공중에서 ‘나이키’ 마크 모양을 만들어 낸다. ‘트릭’이다. 어떻게 보면 예술가 같기도, 또 다르게 보면 운동선수 같기도 하다.

애니메이션 속 미스터 손은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하늘도 난다. 타는 곳은 분명 지면인데, 묘하게 몸이 둥실 뜨는 기분이라 이제야 그 장면이 이해가 된다. 자신감이 붙으니 이젠 하늘을 볼 여유도 생겼다.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하늘은 그야말로 청명하다. 최근에 이렇게 빠르게 바람을 가른 적이 있던가. 가슴속이 후련해진다.

QR코드를 스캔하면 기자가 스케이트보드 타는 영상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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