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량과잉으로 겨울배추값 ‘뚝’…“생산비도 못 건져 막막”

이상희 기자 2023. 11. 24.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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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지역 농가 ‘시름’
11월초 날씨 따뜻 … 생육 호조
준고랭지산 출하 아직 이어져
시세, 두달 전 대비 3분의 1 토막
김치공장, 추가 구매 여력 없어
“정부 가격지지 대책 마련해야”
주명규 NH농협 전남 진도군지부장(왼쪽)과 조한호 진도 선진농협 팀장이 배추 작황을 살펴보고 있다.

“지난해에도 농사를 망쳐 생산비도 못 건졌는데 올해 또 이 지경이니 한숨만 나옵니다.”

김장철 배추값이 폭락하면서 전남지역 겨울배추농가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 농가소득은 고사하고 생산비도 못 건질 처지에 놓이자 망연자실하는 모습이다.

서울 가락시장에서는 최근 배추 10㎏들이 상품 한망이 6000원 안팎에 거래됐다. 불과 두달여 전만 해도 2만원을 넘기며 언론으로부터 ‘金(금)배추’라는 말을 들었는데 최대 소비기간인 김장철이 다가오자 오히려 가격이 3분의 1 토막 나면서 폭락한 것이다.

값 하락의 가장 큰 원인은 물량과잉이다. 이달초까지 따뜻한 날씨가 이어지면서 생육이 좋아져 출하량이 늘었다. 여름철 잦은 비로 작황이 저조할 것이라 예상했던 충청권과 경북 등지의 배추 상태가 괜찮아 물량이 넘친다는 것이 주요 산지 관계자의 공통된 의견이다.

조한호 전남 진도 선진농협 팀장은 “준고랭지 배추 출하가 10월말경에 마무리되고 주 출하지가 전남으로 옮겨 와야 하는데 올해는 지금까지도 준고랭지 배추가 출하되고 있다”면서 “10월말쯤에 배추 사러 전남에 오려고 짐 싸던 상인들이 다 다시 짐을 풀고 주저앉았다는 말까지 돈다”고 전했다.

실제로 산지거래는 끊긴 지 오래다. 농가는 밭떼기거래를 한 상인의 얼굴조차 보기 어렵다고 하소연한다.

해남의 한 배추농가는 “강원도 배추가 망가질 때 상인이 와서 배추를 일찍 심어달라고 해서 그대로 했는데 수확 때가 돼도 코빼기도 보이질 않는다”면서 “10월초까지만 해도 평당 9000원에서 1만원 사이에 밭떼기거래가 이뤄졌지만 지금은 파리만 날린다”고 말했다.

배추 최대 소비처인 김치공장도 기존에 사놓은 배추가 창고마다 가득 쌓여 있어 추가로 구매할 여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이유로 진도·해남 등 겨울배추 주산지에서는 11월말이 다가오는 지금까지도 출하작업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작업이 늦어지면서 무름병이 번지거나 일찍 정식한 일부 밭에서는 추대가 발생하는 등 품질도 갈수록 떨어지는 양상이다.

배추농가 박영철씨(68·진도군 고군면)는 “지난해 밭을 다 갈아엎었는데 올해까지 이 지경이니 하늘이 무너지는 심경”이라면서 “매년 생산비도 못 건지는 농사를 지어야 한다면 어느 누가 농촌을 지키겠느냐”고 말했다.

따뜻한 겨울 날씨도 변수다. 기온이 올라가면 자연스레 단수도 늘게 돼 산지 출하대기량이 급증하며 악순환이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조 팀장은 “더 늦기 전에 수확해 시장에 출하해야 하는데 그야말로 진퇴양난”이라면서 “김치공장으로 출하가 어려우니 가락시장으로 방향을 돌려 물량을 소화해볼까도 생각했지만 자칫 시장으로 물량이 몰려 배추값이 떨어질 우려도 있어 참으로 난감하다”고 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일부 대형 유통업체가 ‘배추보다 싼 절임배추’ 같은 자극적인 광고문구를 내걸고 절임배추를 저가 판매하는 바람에 농가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는 비판이 거세다.

김철규 전국무배추생산자연합회장(해남 문내농협 조합장)은 “농가가 단골손님에게 ‘다른 데서는 3만원도 안하는 가격에 절임배추(20㎏ 한상자)를 파는데 여긴 왜 이렇게 비싸냐’며 항의를 듣기 일쑤고, 전체 주문량도 큰 폭으로 줄었다”면서 “지역에선 이맘때 절임배추를 팔아서 농가소득에 보태곤 하는데 올해는 일손을 놓게 생겼다”고 안타까워했다.

실제로 조합원이 생산한 절임배추를 위탁받아 판매하는 해남 북평농협은 하루에 20㎏들이 절임배추를 5000∼6000개씩 판매했지만 올해는 그 절반 수준에 그치고 있고 인근 문내농협도 비슷한 상황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 조합장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까지 배추농가들의 손해가 커 생산기반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면서 “지금이라도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해 배추 가격을 지지할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진도·해남=이상희 기 montes@nong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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