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농, 아이디어로 승부하다] “맨몸으로 맨땅에 부딪힌 덕…경영비 절감 효자 시스템 개발”

김다정 기자 2023. 11. 24.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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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Z농, 아이디어로 승부하다] (1) 정일민 연지농장 대표 <전남 순천>
농장, 자본·경험·인맥 없이 시작
단기간 소득 올리는 엽채류 주목
수경재배 배웠지만 비용 부담돼
천장에 ‘PVC’ 매달아 설비 제작
한 작기 만에 시설투자비 회수
생산성 늘고 병충해 전염 줄어

농업은 청년의 열정만으로 뛰어들기 어려운 분야다. 현실적으로는 집과 땅, 즉 거주지와 경작지 문제가 해결돼야 한다. 또 다른 커다란 문제는 ‘노하우’다. 기상·병충해 등 정밀하게 예측하기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는 데 ‘경험’이 절대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농업이 청년의 도전이 불가능한 분야란 얘기는 아니다. 오히려 자본과 경험의 부족을 메울 아이디어로 농업분야에 도전해 성과를 내고 있는 이들도 적지 않다. 이에 본지는 농업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찾은 MZ농들의 아이디어를 들어보는 연재를 마련했다. 농촌진흥청 ‘청년 농산업 아이디어 경진대회’ 수상을 통해 검증된 이들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농촌진흥청이 개최한 ‘2023 청년 농산업 아이디어 경진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한 정일민 연지농장 대표.

전남 순천에서 유럽형 엽채류를 재배하고 있는 정일민 연지농장 대표(38). 그는 최근 농진청이 개최한 ‘2023 청년 농산업 아이디어 경진대회’에서 대상을 거머쥐었다. 그가 자신의 시설하우스에서 시도하고 있는 ‘PVC 박막수경 유럽상추 재배 시스템’이 높은 평가를 받은 것이다.

정 대표는 661㎡(200평) 규모의 연동 하우스에서 로메인·버터헤드 등을 수경 재배하고 있다. 특이한 점은 흔한 엽채류 수경재배 하우스에서 볼 수 있는 고설베드 등의 장치 대신 커다란 파이프가 주렁주렁 천장에 매달려 있다는 것이다. 이 파이프의 소재가 바로 폴리염화비닐, 즉 PVC다.

PVC는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플라스틱으로, 실제로 그가 사용하는 자재 역시 일반적으로 배관시설에 쓰는 플라스틱 파이프다. 정 대표는 ‘어차피 물이 흐르는 장치니 배수관으로 많이 사용하는 PVC를 수경재배에 접목하면 어떨까’라는 호기심으로 해당 설비를 제작했다.

정일민 연지농장 대표가 제작한 PVC 박막수경 유럽상추 재배 시스템. 플라스틱 파이프에 구멍을 뚫어 로메인을 키우고 있다.

그는 플라스틱 파이프를 구해 일정 간격으로 동그란 구멍을 뚫었다. 이 구멍이 포트묘를 꽂는 위치가 된다. 파이프는 하우스 길이에 맞게 연결하고, 일정한 폭이 나오도록 6개의 관을 묶어 구획을 설정했다. 하우스 한동당 3개 구획, 즉 파이프관 18개를 설치했다.

정 대표는 “처음에는 5개를 한 구역으로 만들었는데 조금 더 생산성을 높여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어 하나를 더 이어 붙였다”며 “상황에 맞게 자유롭게 변형할 수 있다는 게 직접 만든 장비의 장점”이라고 설명했다.

소재뿐 아니라 운용 방식도 특이하다. 일반적으로 스탠드형으로 설치되는 수경재배 베드와 달리 정 대표 농장엔 파이프가 하우스 천장에 매달려 있다. 캠핑에 사용되는 스트링(줄)과 스토퍼(줄의 길이를 조절하는 장치)를 이용해 묶어놓은 것이다. 줄로 매달아놓기만 한 것이라 설치 비용을 크게 절감할 수 있었고, 하우스 앞쪽 파이프는 약간 높게 뒤쪽 파이프는 약간 낮게 매달아 높이차로 자연스럽게 물이 흐르도록 유도하는 효과까지 얻었다. 정 대표는 “높이 조절만 하면 양액이 흐르는 속도를 제어할 수 있다”며 “흐르는 물의 압력과 작은 어항용 펌프만으로 충분히 양액의 순환이 가능한 구조”라고 귀띔했다.

플라스틱 파이프에 어항용 펌프까지, 일반 수경재배 하우스에서 보기 어려운 장치들이 모여 있는 곳이지만 생산성에서 결코 뒤지지 않는다. 우선 천장에 파이프를 매달아놓은 덕분에 달팽이 피해가 없고, 토양으로 전염되는 병에서도 당연히 자유롭다. 환기가 잘되는 것도 장점이다. 병충해 전염도 확연히 줄었다. 양액이나 파이프 내부가 오염됐을 때, 혹은 하우스 내부의 생육 상황이 다를 때 해당 파이프에만 조치를 취해도 된다는 점 역시 경영비 절감 요인이 된다. 정 대표는 “배관시설에 들어간 70만원을 포함해 330㎡(100평)에 200만원이 채 들지 않았다”며 “양액조절기만 해도 1000만원이 넘는 제품이 많으니 시설투자·경영비를 10분의 1 이하로 줄인 것”이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한 작기 만에 시설투자비를 전액 회수할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사실 정 대표의 이런 톡톡 튀는 아이디어의 배경엔 고충이 있었다. 그는 2020년 아내의 고향인 순천으로 귀농해 후계농으로 선정됐다. 문제는 그가 농업에 대한 경험이나 인맥이 전무했다는 것이다. 처음엔 순천의 특용작물인 매실을 키워볼 생각이었지만 당시 매실 가격이 워낙 안 좋았던 데다 과실수는 열매를 맺기까지 초기 투자비가 많이 들고 몇년 동안 소득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게 고민이 됐다.

이 때문에 정 대표는 단기간에 작물을 키워 판매할 수 있는 엽채류에 주목했고, 수경재배 기술을 배웠다. 하지만 수경재배 하우스를 꾸미려니 자본금이 문제였다. 자본·인맥이 없는 청년농에게 초기 투자비가 적지 않게 들어가는 수경재배 시스템은 시도하기 어려운 벽처럼 느껴졌다. ‘궁하면 통한다’고 적은 돈으로 시설하우스를 꾸며보려는 정 대표 눈에 들어온 것이 바로 플라스틱 파이프였다.

정 대표는 “자본금이 넉넉해 투자를 충분히 할 수 있었거나, 농사를 알려줄 만한 친인척이 있어 설비 시공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면 오히려 내가 직접 만들어보자는 생각은 안했을 것”이라며 “맨몸으로 맨땅에 부딪힌 덕에 이런 특이한 하우스가 탄생했다”고 말했다. 이어 “비슷한 고민을 하는 청년농들을 위해 모든 아이디어를 공유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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