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법안 재등장에 또 갈라진 의료계…간호사 vs 非간호사 2라운드

정심교 기자 2023. 11. 23.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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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간호협회(이하 간협) 창립 100주년 기념대회 /사진=임한별(머니S)

간호법 제정을 두고 간호사와 비(非)간호사로 쪼개졌던 의료계가 새 간호법안으로 다시 한번 맞붙었다. 고영인(보건복지위원회 간사) 의원이 간호법안을 발의하면서 의료계 직역간 갈등이 다시 점화된 것이다.

지난 22일 발의된 간호법안은 고영인 의원을 비롯해 강선우·권칠승·남인순·정춘숙 등 더불어민주당 의원 19명, 최연숙 국민의힘 의원, 강은미 정의당 의원 등 총 21명이 이름을 올렸다. 이번 재발의한 간호법 제정안은 지난 7월 27일 열린 더불어민주당 정책의총에서 결정된 간호법 재추진 방침에 따라 후속으로 추진됐고, 복지위 민주당 간사 자격으로 고 의원이 대표발의했다.

고 의원은 간호법안 제안 이유에 대해 "현행 의료법은 1951년 제정된 '국민의료법'에 기반한 의료인과 의료기관 규제 중심의 법률로서 고도로 발전된 현대 의료시스템에서 변화하고 전문화한 간호사의 역할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며 "이에 간호에 관한 사항을 규정한 독자적인 법률을 제정해 간호서비스의 질을 제고하고 국민 건강 증진에 이바지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간호법은 간호사와 간호조무사 등 간호인력의 자격, 업무 범위, 처우 개선 등의 내용을 담은 법안이다. 지난 4월 야당 주도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지만 윤 대통령이 거부권(재의요구권)을 행사했다. 이후 5월 본회의에서 재표결을 진행했으나 재적 인원 과반수 출석, 출석 의원 3분의 2 이상 찬성이라는 재표결 요건을 넘지 못했다. 당시 민주당은 여당과 합의할 수 있는 법안을 최대한 마련해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번에 새로 발의된 간호법안에 대해 간호사 이익단체인 대한간호협회는 환영의 뜻을 내비쳤다. 간호협회는 "앞서 2021년 3월 여야 3당이 함께 발의해 국회 본회의까지 통과했던 간호법안이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폐기됐지만 간호법안이 다시 발의된 데 대해 적극적으로 환영한다"며 "새롭게 발의된 간호법안은 지난 간호법안의 마지막 쟁점을 해소했다"고 말했다.

(수원=뉴스1) 김영운 기자 = 15일 오후 경기 수원시 영통구 아주대학교에서 열린 제25회 나이팅게일 선서식에서 내년 임상실습을 앞둔 간호대학 2학년 학생들이 촛불의식을 하고 있다. 2023.11.15/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이번 간호법안이 기존의 간호법안과 달라진 점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간호법안의 목적에 '지역사회' 문구를 삭제하고 간호사 등 인력이 종사하고 있는 분야를 열거했다. 지역사회 돌봄사업 독점 등 법안에 대한 불필요한 논쟁과 곡해를 원천적으로 방지하겠다는 취지에서다.

둘째, 간호조무사 자격인정 조항에 '고등학교 졸업 이상 학력 인정자'를 명시했다. 간호법이 간호조무사의 학력을 고졸로 제한하고 있다는 대한간호조무사협회 측의 반발을 불식시키겠다는 목적에서라는 게 고 의원 측의 설명이다.

셋째, 간호사의 권리에 무면허 의료행위 지시 거부권을 명시하고, 무면허 의료행위 지시 거부자에게 징계 등 부당한 처우를 하지 않도록 규정했다. 이는 간호법이 다른 보건의료 직역의 업무를 침해하려는 의도가 전혀 없다는 것을 명백히 하겠다는 의지가 담겼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비(非)간호사 측의 반발이 거세다. 대한의사협회를 필두로 한 14개 단체 연대인 14보건복지의료연대는 이번 간호법안 재발의에 대해 "결사반대한다"며 성명을 냈다. 이 연대는 "민주당은 폐기된 간호법안의 독소조항이었던 '지역사회', '간호조무사 학력제한', '의료기사, 보건의료정보관리사 및 응급구조사의 업무침해'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공언했지만, 지금 민주당이 재발의하려는 간호법안은 예전과 달라진 게 없다"며 "폐기된 간호법안과 똑같은 간호사 특혜법안"이라고 목소리를 모았다.

이 연대는 "새 간호법안대로라면 여전히 지역사회에서 간호사가 의사 지도없이 의료행위를 할 수 있고, 간호조무사 학력제한 차별도 그대로 남아 있다. 의료기사, 보건의료정보관리사 및 응급구조사 업무침해도 해결되지 않았다"며 "민주당의 간호법안 재발의 추진은 또다시 보건의료계의 혼란만을 가중시킬 뿐"이라고 언급했다.

이 연대엔 지난 간호법안 제정 추진 과정에서 반대 입장에 서온 △대한간호조무사협회 △대한방사선사협회 △대한병원협회 △대한보건의료정보관리사협회 △대한응급구조사협회 △대한의사협회 △대한임상병리사협회 △대한작업치료사협회 △대한치과의사협회 △한국노인복지중앙회 △한국노인장기요양기관협회 △한국요양보호사중앙회 △한국재가노인복지협회 △한국재가장기요양기관협회 등 14개 단체가 뭉쳐있다.

대한간호조무사협회와 국민의힘 조명희(맨 왼쪽) 의원은 23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간호법안 재발의에 대해 규탄의 목소리를 냈다. /서진=대한간호조무사협회

간호사와 긴밀히 협력해야 하는 직역인 간호조무사들 역시 별도의 목소리를 냈다. 대한간호조무사협회와 국민의힘 조명희 의원은 23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간호조무사 학력제한 폐지 없는 간호악법을 재발의하며 88만 간호조무사를 농락한 민주당에 대해 규탄한다"고 외쳤다.

이 협회는 "민주당은 간호조무사 시험응시자격 학력제한 폐지와 관련한 우리 협회의 요구를 잘 알고 있으며, 민주당이 재발의한 간호법안이 간호조무사 시험응시자격과 관련한 위헌성을 해결하지 못했다는 사실도 이미 알고 있다"면서 "그런데도 민주당은 간호조무사 요구를 '일부 수용했다'라고 말장난하면서 88만 간호조무사와 국민을 속이고 기만하며 농락하고 조롱했다"라고 날을 세웠다.

/표=대한간호조무사협회


이 협회는 '특성화고 간호관련학과 졸업자'로 시험 응시자격을 규정한 의료법 제80조 제1항 제1호를 '특성화고 간호관련학과 졸업자 또는 그 이상의 학력이 있다고 인정되는 자'로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곽지연 대한간호조무사협회장은 "민주당은 이 조항을 그대로 둔 채, 엉뚱하게 제4호를 '고등학교 졸업자로서 간호학원 수료자'에서 ''고등학교 졸업 이상 학력 인정자로서 간호학원 수료자'로 바꾸는 내용의 간호법안을 재발의했다"며 "결국 간호특성화고 졸업자 아니면 모두 간호학원을 수료해야 한다는 얘기다. 달라진 게 없다. 눈속임 꼼수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곽 회장은 "민주당의 법안대로라면 전문대 간호조무과 졸업생은 여전히 시험응시자격을 박탈당하고 간호학원에서 다시 공부해야 하는 위헌적인 차별을 받게 된다"며 "간호협회가 반대해서 우리 협회 요구를 수용하지 못했다고 핑계 대는 민주당에 묻고 싶다. 간호협회가 민주당의 상왕인가?"라고 지적했다.

곽 회장은 "지난 간호법 저지 투쟁 때 삭발도 하고 9일간 단식농성도 했다. 이번에도 88만 간호조무사를 대표해 언제든지 모든 것을 걸고 투쟁의 선두에 설 것"이라며, "다시 한번 민주당에 호소한다. 민주당은 지금이라도 재발의한 간호악법을 철회해 주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서울=뉴스1) 신웅수 기자 = 23일 오후 서울 중구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대한간호협회 100주년 기념대회에서 간호협회 회원들이 손피켓을 들고 있다. 2023.11.23/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대한간호협회(이하 간협) 창립 100주년 기념대회 /사진=임한별(머니S)

이런 가운데 대한간호협회는 23일 창립 100주년 기념행사를 열고 간호법 제정 재추진 결의를 다졌다. 이날 서울 중구 장충체육관과 장충교회에서 전국 간호사와 간호대학생 60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개최한 이번 행사의 '간호법 제정 추진 다짐대회'에서 신경림 간호법제정특별위원장은 "간호법은 세계 보건정책의 기준이며 간호법 제정의 정당성과 필요성이 충분하고, 초고령사회에 보편적 건강보장을 위한 필수정책"이라며 "정부가 의료기관에만 적용되는 현행 의료법으로 새로운 선진화 된 의료·요양·돌봄시스템을 구축한다는 것은 모래성을 쌓는 것처럼 불안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신 위원장은 "정책의 중심은 정부도 의료인도 아닌 국민과 환자다. 국민의 건강한 미래와 간호사와 간호대학생의 미래를 위해 간호법은 반드시 제정돼야 한다"면서 의사, 간호조무사 등 보건의료계에 간호법 제정 협력을 요청했다.

그러면서 " 간호사는 결코 다른 보건의료인들의 업무를 침해한 적이 없고 앞으로 그럴 계획도 없으며, 지역사회 돌봄사업을 독점하려는 것이 아니다"라며 "동료인 간호조무사, 간병사, 요양보호사 등 모든 간호돌봄인력을 존중하고 처우개선에 협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심교 기자 simkyo@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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